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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주차(말4). 원칙을 회복하라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11.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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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주차(말4). 원칙을 회복하라


 

 

(본문) 2:10~17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하는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시리라”(10~12)


 

 

1. 두 가지 죄악


 

 

말라기 선지자의 세 번째 설교의 내용을 가지고 강해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기서 가정생활의 타락을 개탄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진노를 대언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파탄이 어디에서 시작하느냐 하면 바로 이방족과 결혼을 하면서부터라는 것입니다.

 

 

역사상 인류는 크게 두 가지 문제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는 우상숭배요, 하나는 살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한 사건이 노아홍수입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에 인류는 크게 두 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 이 두 가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먼저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 6:2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아내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자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씀에 따라 결혼을 하지 않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결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우상숭배의 문화를 수입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 대표적인 인물이 솔로몬입니다. 아가서에는 이스라엘에 필요한 가장 이상적인 왕후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후는 검은 피부의 술람미 여인입니다. 겉보기에는 비록 얼굴도 검고 피부도 거칠고 미모도 없어 보이지만 술람미 여인은 지혜롭고 믿음이 깊은 여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솔로몬이 그와 같은 믿음이 좋은 여인과 결혼하여 그녀를 왕후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미모가 뛰어난 바로의 공주를 왕후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당시 최고 강대국인 이집트 바로의 딸과의 정략결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바로의 딸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다른 여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외국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외모를 자랑했습니다. 솔로몬은 미녀들의 늪에 빠져 세월을 축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는 것처럼 솔로몬도 늙어갔습니다. 마음은 여전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자 솔로몬은 젊은 여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랑을 구걸해야 했습니다. 여인들은 솔로몬에게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수입되었고, 그것들을 위해 산당이 지어졌고, 나중엔 이방 신전까지 지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당에서 버젓이 우상 제사가 공개적으로 드려지는 참담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방족과의 결혼이 국가를 무너뜨리는 주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결혼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죄악은 살인이었습니다.

- 64절에 네피림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거인이요 용사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과 이방 여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경건한 셋의 자손들이 가인의 딸들의 외적인 미모에 반해 그녀들과 결혼을 해 새로운 혼혈족인 네피림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힘 있는 장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력으로 지배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숱한 피 뿌림이 있었습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을 간단히 죽여 버리는 독재자였습니다. 13:33에서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은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보고합니다. 네피림은 살인의 대명사입니다.


 

 

2. 결혼의 바른 기준


 

 

오늘 말라기 선지자는 결혼의 바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10절입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아버지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모든 믿는 자는 한 아버지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되십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는 사단입니다. 사단이 곧 마귀요,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그러나 여기서 한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기보다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지칭합니다. , 참 이스라엘은 혈육의 자손들이 아니라 믿음의 약속을 따라 난 자손들이므로 당연히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가 됩니다. 이것이 한 아버지를 가졌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하고 결혼을 해도 믿음의 원칙을 따라 해야 합니다. 한 아버지의 자식들은 같은 원칙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유다 백성들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일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절대로 자신의 정욕에 따라 결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랑, 신부감을 만나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한 아버지의 믿음 안에서 짝을 기다리고 만나야 합니다. 짝이 나타나지 않으면 혼자 살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이런 결혼의 원칙을 깨고 결혼을 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바로 아브라함의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만 믿음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언제라도 하갈을 취하고 싶었는데 마침 마누라가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핑계로 하갈과의 동침을 허락하자 얼씨구나 하고 여종을 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떠났습니다. 무려 13년간이나 아브라함의 기도와 간구에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할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때는 없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86세에 얻은 장자 이스마엘과 하갈을 집에서 내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 머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게도 12부족이 생겼고, 이들은 오늘날 아랍민족의 조상들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적이 되어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혼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말라기 시대의 유다 백성들은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법칙을 깨트린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에서 다른 민족들과 섞여 살다보니 유다 여자들보다 이방 여자들이 더 예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유다 여자들은 비록 믿음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촌스럽고 못나 보였습니다. 요즘에 이런 여자들을 속칭 교회언니라고 부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언니는 유행도 모르고, 미모도 가꿀 줄 모르고 오직 주님만 섬긴다며 교회에만 매달려 있는 지극히 시대에 뒤떨어진 여자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세상 여자들을 보면 영적으로는 믿음이 없는 여자들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아주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모든 남자들이 한 눈에 반할만한 미모들(인공미인까지 포함)을 자랑합니다. 바벨론에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자들만 보다가 고국에 있는 유다 여자들을 보니 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정욕에 갇힌 이들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조건을 보고 판단하도록 눈이 타락한 것입니다. 눈이 타락하면 진짜를 보지 못합니다.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니까 조건이 변하면 결혼도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언니 편이십니다. 언제나 교회언니를 돌보고 그를 세상 어떤 여자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관으로 명예를 높이십니다. 소로몬의 술람미 여인이 바로 교회언니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남자들은 어릴 때 어른들이 정해 준 짝과 정혼을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인 요셉과 마리아도 어릴 때에 이미 정혼을 한 사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정혼을 깨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는 일로 생각해 매우 심각한 범죄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정혼한 여자와 결혼서약을 깨고 다른 이방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눈이 달라지자 이런 결혼서약들은 휴지처럼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결혼 문화는 삽시간에 대세가 되어 이제는 당연시된 것입니다. 14절을 보세요. 선지자는 어려서 맞이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여자와 결혼을 한 유대 남자들이 하나님에게 거짓을 행하였다고 고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범죄입니다.

 

 

3. 두 종류의 인간


 

 

하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경건한 백성입니다.

- 이들이 이 땅에 남은 자들이요 그루터기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욕을 말씀에 붙들어 매고 삽니다. 정욕이 일 때 마다 모든 인내와 절제의 능력으로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다른 것에 별반 관심을 두거나 흥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세상의 재미있는 일들이 마치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세상 노래가 아무리 순간적으로 감동을 준다 해도 성령의 노래가 주는 영원한 감동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만나 술 한 잔 하는 일이 다반사처럼 되었지만 성령의 사람은 그렇게 술 먹고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깝고 한심스럽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믿는 자에게는 거룩한 마음을 주시기에 세상의 흥밋거리를 하찮게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이 추락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우리 마음은 늘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전쟁터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일들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마저 하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모든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오직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소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곧장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참으시는 이유는 바로 경건한 백성이 있기 때문이고 더 많은 경건한 백성을 얻고자 함입니다.(15)

 

 


두 번째 종류는 육체의 정욕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 이들은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보기에 더 예뻐 보이는 여자들을 언제든지 품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좀 더 매력적인 여자와 살기 위해 이혼도 불사하고 간음도 불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동성애도 불사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부정한 자라고 부르십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정결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 인생은 깨끗함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안도 깨끗해야 하듯이 우리 마음도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다는 것은 더러움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거실을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갔더니 온 거리와 골목과 공원 등에 쓰레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잠시 앉아 쉴 만한 공간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더럽고 추악한 생각들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쓰레기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쓰레기이고 부정한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한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이 가장 더러운 범죄입니다. 그것은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동시에 남편으로 삼고 있는 것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입니다. 이처럼 정욕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더럽고 추악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더러운 정욕에 내 자신이 끌려가지 않았는지 경계하고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만 지으셨습니다. 15절을 보세요. 충분히 마음대로 여럿을 지으실 수 있었음에도 하나만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서 맞이한 아내는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오직 하나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가 싫어서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짓을 행하는 일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리는 일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이것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정욕을 위해, 쾌락을 위해 결혼의 언약을 위반한 이런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엄중한 심판을 행하십니다. 12~13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어떤 봉헌물도, 어떤 간구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없을 것입니다.

 

 


4. 오늘의 교훈


 

 

첫째, 결혼의 원칙을 회복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심으로 결혼의 대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원칙은 절대적 가치입니다. 유대인들이 타락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진리의 원칙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율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더 넓은 세계를 접하자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은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삶의 방식들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갑자기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여겨지면서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새로운 가치체계를 만들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가치체계들을 부정하고 시대의 조류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계화가 필요했습니다. 세계화는 국제결혼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버리고 바벨론에 정착한 신유대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감동시키어 다시 유대민족을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을 때 신유대민족은 바벨론에 남아 족보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율법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버렸습니다. 그에 따라 당연히 안식일 규정도 사라졌습니다.

- 역사적으로 원칙을 버린 모든 조직, 단체, 기업이나 국가들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적 원칙으로 세우시는 나라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원칙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원칙은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성경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 사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실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은 영혼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회개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은 두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건한 예배를 회복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원리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백성들이 이 두 가지를 행할 때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에 대해서 절대로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바른 원칙대로 설기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 또 하나님은 과거를 따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결혼의 언약을 어겼다 해도 그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녀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과거를 덮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요즘엔 이혼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한쪽에서 요구하면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이혼한 사람이라 하여 저간의 사정도 모르고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정죄하는 일은 잘못된 처사입니다. 하나님은 이혼이라는 과거를 낙인찍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때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정의를 회복한다는 미명하에 과거를 전부 캐내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캐낸다고 다 캐낼 수 없음에도 과거사위원회같은 단체를 만들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였습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과거를 가지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형편이 없었음에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축복하셨기에 이렇게 건장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과거가 없다 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는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감히 죄인이 다른 죄인을 평가하려는 시도 자체가 하나님을 경멸하고 대적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값없이 용서를 받은 것처럼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합니다. 일부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려거든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용서하십시오. 용서의 그릇에 조그마한 복수의 흔적마저 남겨두지 마셔야 합니다.

- 나아가 우리는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결혼을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결혼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을 수술해야 합니다. 눈이 달라져야 바르게 봅니다. 눈이 달라지기 위해선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선 마음이 거듭나야 하고 거듭나야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는 것입니다. 드디어 믿음이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으나 영혼은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영혼이 죽은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허상을 볼 뿐입니다.


 

 

셋째, 결혼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결혼의 언약을 너무나 쉽게 깨트리고 이방 여자들을 선택한 것에 대해 책망하고 계십니다. 11절과 14절을 보세요.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성결을 욕되게 했으며, 여호와의 증거를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결혼을 통해 그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또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갈비뼈를 하나 꺼내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 남자와 여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못 박아야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부부는 주장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부부는 깨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의지로는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자기 속에 있는 두 마음을 하나로 잡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정욕의 마음, 자신이 원하는 마음이 불거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오직 기도함으로 하나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다음에 믿으면 되지 않느냐하는 자기 합리화의 범죄입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전혀 몰랐을 때 결혼을 했다가 나중에 주님을 영접한 경우, 한 쪽이 계속 불신자로 남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끝내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부할 경우엔 이혼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남자 집사님의 경우엔 부인이 절에 가서 비구니가 되어 할 수 없이 이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 번 결혼을 했다가 실패 한 후에 믿음으로 일어나 다시 출발하는 부부가 수없이 많습니다. 반대로 위험한 경우는 알고서도 불신자와 결혼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고범죄에 속합니다. 이 죄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타락하고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결혼을 지금의 환경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로 본다면 그 결혼의 시한은 매우 짧을 것입니다.

-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짝을 맺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바울은 결혼한 사람들은 마음이 나뉘기 쉽지만 독신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결혼을 시키거나, 결혼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결혼이든 독신이든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혼을 해서 오히려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결혼한 일이 오히려 손해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독신으로 지내야 주님을 더 많이 섬길 수 있고 자신이 낳은 자녀를 넘어 많은 영적인 자녀들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유다 백성들은 말씀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다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새기고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고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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