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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주차(말3). 제사장이 타락할 때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11. 10. 17:26

본문

45주차. 제사장이 타락할 때

 

 

 

(본문) 1:6~2:9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그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1:6~8)

 

 

 

1. 말라기서의 주요점


 

 

말라기서의 내용을 논하면서 몇 가지 빠트린 주요점들이 있어 다시 소개합니다.

 

 

먼저, 말라기서는 선지자 말라기의 여섯 개의 설교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구분하자면, 1:1~5, 1:6~2:9, 2:10~16, 2:17~3:6, 3:7~12, 3:13~4:6(히브리 성경은 3:24)로 나눕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설교의 내용을 알아봅니다.


 

 

다음으로 말라기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서 다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부분이며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인간적인 이해의 선을 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칼빈은 말라기서 강해에서 네 단계에 걸친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하면서 선택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일축합니다.

- 첫 단계는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계시하기 위해 개 혹은 당나귀를 택하지 않고 인간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짐승들도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몸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택하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짐승을 택하시어 당신의 듯을 계시할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택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영혼의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특별한 선택의 선물입니다. 과연 이것을 두고 개나 당나귀가 왜 우리를 택하지 않고 인간을 택하였느냐 하고 반문할 수 있습니까?

- 두 번째 단계는 모든 인류 중에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택하심의 선물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 세 번째 단계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하신 것입니다. 에서의 후손은 에돔이 되고 야곱의 후손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어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다는 약속입니다.

- 네 번째 단계는 모든 이스라엘 중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하였지만 바울은 유대인이라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 마지막 선택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택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최종적인 선택의 선물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구원과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사는 것이 모두 선택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구원 받은 인생은 어찌됐든 목적지에 이르겠지만 어떤 길을 가느냐는 자신의 의지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던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친구와 만나고, 어떤 사람을 애인으로 삼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수준만큼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좋든 나쁘든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믿음의조상인 아브라함도 숱한 선택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런 실패를 통해 아브라함은 성장하고 교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위대한 선택으로 위대한 결과를 열매 맺은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을 기원합니다.

 

 

2. 레위지파와 제사장


, 이제 오늘 본문 이야기를 펼쳐 가겠습니다. 구약시대에 레위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야곱의 첫 번째 부인인 레아가 낳은 셋째 아들로 젊었을 때 한 성질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이동생 디나를 세겜 족장의 아들이 강간을 하고 결혼을 제의하자 할례를 시킨 다음 불시에 습격을 해 전 부족을 살육하는 일에 앞장 설만큼 혈기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레위는 완전히 개관천선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아마 나이를 먹자 자신의 행위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하고 회개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레위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지킬 때 이스라엘 전체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레위 지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되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파에서 제사장이 선출되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공식적인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에게 맡기어졌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반드시 아론의 후손이어야 하고(28:1),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하며(21:17~23), 결혼과 의식 등 순결의무를 지켜야 했습니다(21-22). 또 제사장 중에서 최고의 자리는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최고의 직위로서 더욱 까다로운 규칙들을 이행해야 했습니다((21:10~15).


 

 

3. 이스라엘과 제사장


 

 

1)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매우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 백성들은 제사장이 없이는 하나님에게 나아와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운명공동체였기에 무엇보다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제사장은 한 마디로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담당하는 특수한 직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늘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축복하기를 원했지만 원죄를 지은 인간은 늘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죄를 짓는 일에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 이스라엘이 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 죄를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고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짐승의 피로 덮어서 하나님이 보시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죄를 지었지만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로 인해 하나님은 죄를 보시지 않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진노를 축복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죄로 시커멓게 물든 백성들의 마음을 희생제물의 피를 이용해 하얗게 바꾸어 놓는 마술사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사장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죄인의 죄를 사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제사장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3) 제사장의 고충

- 이처럼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책임지는 특별한 사역자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습니다. 백성들은 제사장을 잘 섬기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사장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직은 알고 보면 가장 힘들고 괴로운 직분입니다. 제사장은 매일같이 백성들의 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치 같은 죄를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통곡해야 했습니다. 통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자의 죄를 사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 제사장이 하는 일이 제사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중요한 재판을 하기도 하고, 문둥병자 같은 환자의 정결여부를 판단해야 했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우림과 둠밈을 이용해 제비뽑기도 해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에봇을 입고 거룩하고 고상해 보이지만 실상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정말 힘들고 괴로운 직업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에 의해 레위지파로 태어난 이상 평생을 운명으로 알고 성소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 아무튼 제사장은 죄와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죄 이야기가 어찌 즐거울 수 있습니까? 이런 제사장을 보면 마치 의사와 같아 보입니다. 의사도 고상한 직업인 것 같지만 허구헌날 환자와 씨름하는 일이 결코 유쾌한 일이 못됩니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아야 하고, 아픈 비명소리, 신음소리, 짜증내는 소리, 욕지거리와 고함과 삿대질과 손찌검까지 당하기도 합니다. 편히 쉬지도 못합니다. 급한 환자가 병원에 실려 오면 자다가도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 와야 합니다. 그럼에도 의사와 제사장은 묵묵히 맡겨진 일에 충성을 합니다. 의사가 피를 무서워하면 안 되는 것처럼 제사장도 짐승의 피를 무서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죄를 가리기 때문에 싫든 좋든 제사장은 피를 만지며 살아야 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다루는 직분자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제사장이 무너지면 이스라엘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오늘날 목사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그러므로 목사가 혼자의 몸이 아니듯이 제사장은 혼자의 몸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올바르냐 아니냐에 따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늘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누구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직분을 수행한다고 해서 제사장도 한 사람의 죄인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면서 죄인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죄인은 죄인을 위해 중보자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사장의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은 누구보다 죄인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제사장으로 삼지 않고 레위지파를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천사는 죄를 지은 적이 없어서 죄인의 마음을 모릅니다. 죄인의 심정은 죄인이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자신 또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백성들의 죄를 다루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범죄행위에 대해선 엄중히 경고하고 징계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동정심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4. 그럼에도 왜 진노 대신에 축복을 내리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레위지파와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세요.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 하나님이 레위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레위 지파의 중재, 즉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때문에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계속 은혜를 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언약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평강의 언약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조금도 실수 없이, 변개치 아니하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약속을 믿고 감옥의 간수를 향해 힘차게 소리쳤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5. 제사장의 타락


 

 

1) 구약시대의 타락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아무리 죄를 짓고 살아도 올바른 제사장들이 중간에서 맡은 직임을 성실히 수행할 때엔 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늘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수많은 제사장들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침노를 당하고 핍박을 받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 아론의 계통으로 이어지던 제사장 가문은 다윗 왕 이후부터 엘리 제사장의 가계를 이은 사독에게 주어졌습니다(삼하8:17, 15:24-29). 사독 가문은 성전에서 봉사하며 충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함께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 북쪽 이스라엘의 큰 지파인 에브라임지파에 속한 미가라는 사람은 신상을 만들고 베들레헴 출신의 한 청년을 데려다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이를 본 단 지파가 미가의 집을 쳐들어가서 재산과 청년 제사장을 빼앗아 가서는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세웁니다(17-18).

- 유다의 마지막 때에는 성전 총감독이자 제사장인 바스훌이라는 사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성전 다락방에 나무고랑으로 채운 채 가두어 버립니다(20:1-2). 이때의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23:11)


 

 

2) 말라기 시대

 

 

오늘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도 제사장들이 타락한 모습으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 6절에 보니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 7절에 보니 더러운 떡을 단에 바치고,

- 8절에 보니 눈먼 희생제물, 즉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고,

- 12절에 보니 여호와의 상이 더러워졌고,

- 13절에 보니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헌물을 드렸습니다.

-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으면 14절에서 흠 있는 것으로 하나님에게 드리는 자를 사기꾼이라 하시고,

- 22절에서 저주를 내리신다 하시고,

- 23절에서는 제사장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너희를 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Q. 왜 제사장들이 이렇게 타락한 것입니까?

- 백성들이 총독의 눈치는 살피면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을 때 제사장들이 꾸짖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꾸짖으면 십일조를 얻지 못할까 하여 사람의 눈치를 살핀 것입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매를 들고 다스리는 총독에겐 굽신 거리며 모든 좋은 것을 다 갖다 바친 것이나 제사장들이 그런 백성들의 눈치를 살핀 것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괜히 백성들의 심기를 거스렸다가 그나마 형식적인 제사라도 드리지 않을까 조심조심 하다 보니 백성들이 죄를 지어도 말을 못하고 방관하고 만 것입니다.

-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매우 닮았습니다. 목사가 한 번 꾸중하면 그날로 교회를 뛰쳐나가기 다반사입니다. 권징이라도 내리면 목사가 사랑이 없다느니 하며 조롱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만 교회냐 하고 다른 교회로 이명을 밥 먹듯이 합니다. 참 교회와 진리를 찾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내 입에 맞는 교회를 찾아 떠돌아다닙니다. 참 교회를 찾기 위해서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가 어떤 것인지 교회론이라도 공부하고 먼저 알고 찾아야 하는데 무엇이 참 교회인 줄도 모르고 그냥 보기에 좋고 다니기에 편하고 설교가 괜찮다 싶으면 자리에 앉았다가 이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훌쩍 철새처럼 떠납니다. 정치인들만 철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철새 교인들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 하면 바로 제사장에게 있고, 목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목사가 백성들과 성도들의 죄를 방관하고, 잘못을 꾸짖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할 때 이스라엘과 교회가 함께 타락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입니다.


6. 결론- 제사장의 사명


 

 

제사장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6~7절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1) 제사장은 자나 깨나 입에다 진리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 진리가 아니면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진리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철저히 공부하고 성경에 대해 박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박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철저히 익히고 자기의 학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늘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책 공부 뿐 아니라 사람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람 사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은 이런 경험에서 축적됩니다.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행복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진리를 깨달을 때 생깁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돈이 떨어지면 날아갑니다. 그러나 한 번 얻어진 지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 그래서 7절에서 대저 제사장은 지식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지식을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에 관한 지식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이 가지도록 가르치고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녀를 잘 키우고, 건강하게 사는 법과 좋은 대학에 가는 법, 돈을 잘 버는 법, 성공하는 법, 출세하는 법 등에 관심을 가질 때, 제사장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만이 죄인을 의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의롭다 하는 것은 모든 일에 떳떳하다는 뜻과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의로움을 얻으면 항상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면 바로 그런 힘을 얻는 것입니다.


 

 

2) 또한 제사장은 화평과 정직함 중에서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 죄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숨기려는 타락한 본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겉으로는 숨길 수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늘 갈등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하고 화평을 누리지 못합니다. 화평이 없으면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합니다.

- 제사장의 사명은 죄를 지은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도록 인도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잘 가르쳐야 합니다.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인들은 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합니다.(일본의 아베를 보고 경고를 삼아야 합니다)

 

 

3) 제사장은 죄인의 죄를 지적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 죄를 지적 받는 일이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에게, 목사에게 항의하고 반항합니다. 그러나 죄는 치료 받아야합니다. 치료의 순간에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죄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늘 죄는 자신을 괴롭힙니다. 순간의 아픔을 극복해야 합니다. 어떤 때엔 자신의 죄의 고백으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조롱의 대상이 되고 외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잠시도 속일 수 없는 분이십니다. 특히 개혁교회는 죄의 문제를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빨이 아프면 땜질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경 치료까지 완벽히 치료하라고 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몸의 암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어야 완치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완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죄를 완치시키신 분이십니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만이 완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완치를 경험한 사람이 다시 새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 제사장은 사람 편에 서면 안 됩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언제나 코람 데오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의 입맛에 맞는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배는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이 드린 거짓 제사요 형식적인 제사요 거짓 헌물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린 책임은 모두 목회자의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족보도 없는 가짜 예배를 멈추고 예배의 개혁을 해야 합니다. 개혁교회가 먼저 예배의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리엘개혁교회가 주도가 되어 개혁교회 예배의 일치를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4) 제사장은 죄인의 죄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 죄는 더러운 것입니다. 죄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런 죄를 끌어안고 사는 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누구보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매를 들어 징계를 할 때에도 사랑의 채찍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죄인의 영혼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죄들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통곡하며 그 죄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런 죄들을 이길 수 없으니 제발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 물론 오늘날 목회자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직분에 주어진 사명의식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죄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시려던 손을 거두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제사장은 백성들의 등대여야 합니다.

- 등대의 임무는 오직 불빛을 켜서 바다를 향해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멀리서 배들이 등대를 보고 집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등대지기입니다. 제사장의 이 역할이 오늘날 교회의 역할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대여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의 빛을 발할 때 세상이 교회로 향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심심하다 하여 모여서 즐기는 곳이 아닙니다. 파티장도 아니고 회의장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고 사회봉사기관도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전당입니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멸망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고 진리를 얻고 살라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그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진리이시고 구원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십니다.

- 지금은 만인 제사장의 시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살피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시고 회개하시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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