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예배가 성경적이다 (2)
Daniel R. Hyde / 강문진 역
말씀에 의한 예배
두 번째로, 우리의 예배는 우리가 예배 순서를 결정하는 방식 때문에 성경적이다. 우리가 예배에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운 것인지 아닌지 또는 우리가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예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하여 규정된 것이다. 그것은 ‘규례대로’이다. 이것을 예증하기 위하여 우리의 고백서 중의 하나를 사용해보자. 개혁교회로서 우리는 ‘고백적 교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믿음의 고백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개혁교회가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하나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를 사용하든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예배순서를 갖는가에 대한 가르침은 같다. 개혁교회로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다음의 내용을 믿고,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예배원칙을 지도하는가를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것은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서 대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벨직 고백서 7조).
본성의 빛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하나님은 만물에 대하여 통치권과 주권을 행사하신다. 그는 선하시며, 만물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를 경외하며, 사랑하며, 찬양하며, 부르며, 신뢰하며, 그리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 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한 사탄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1)
그래서 개혁주의적인 예배는 우리가 하는 특별한 일들 때문에 성경적이다. 즉, 공적 예배에서 예배의 요소는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배의 규정적인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또는 축약해서 RPW라고 부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그를 어떻게 예배해야하는지를 규정해 주셨다는 것이다. 예배는 견해나 기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경외함을 받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출20:7, 마6:9).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에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게 될 것이다(히12:28).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르쳐지는 이러한 원리를 우리는 어디서 발견하는가? 성경의 여러 곳에서이다. 예를 들면 십계명의 제1,2계명인데, 제1계명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반면에 제2계명에서는 그가 요구하는 유일한 방식에 대하여 배운다(‘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1563년 독일 하이델베르그 지역에 있는 신실한 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첫 출판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우리는 제2계명의 개혁주의적인 해석을 배운다. 그것은 이렇게 말한다.
문: 제 2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어떠한 형태로든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그 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섬기는 교단의 교회 예식은 교회의 장로는 공적예배를 감독해야만하며 그 공적예배는 하나님 말씀에서 가르쳐지는 원리에 따라 행해져야만 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방식으로만 예배한다.
‘규례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본질이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그의 아우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창4:2).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창4:3,4).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참조:창4:4-5). 왜 그러하셨는가? 그들 모두는 예배의 희생제사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신실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이것이 예배를 규정할 유일한 원리인가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가인의 것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아벨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생각에 최상이라고 여겨지는 이상한 것을 드리지 않았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것의 기름을 드렸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예배의 자세한 내용을 주실 때에 레위기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아담과 하와가 동물가죽으로 덮여졌을 때에 용서받았던 것같이 아벨의 예배 역시 그의 죄를 위한 다른 것을 통하여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아벨은 이해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한 그대로 정확하게 예배해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진리의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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