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는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3:9-10)’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3:11)’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80이었고, 그는 이제 양치는 노인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오는 것 같이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태를 예수님은 ‘가난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한’ 모세에게 하나님은‘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애굽기3:12)’라고 약속하심으로 천국이 이루어짐을 약속하신다. 천국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모세는 천국을 소유했다는 말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 동안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출애굽기32:7-18)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멈추어 달라고 기도했고, 이스라엘의 범죄 앞에서는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32:31-32)’라고 애통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세의 삶을 민수기에서는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12:3)’라고 특징 지워 말한다.
2. 하나님을 만남에서 온유하다는 평가를 받기 까지 모세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스스로에게 있는 부족함에 대한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함께하심’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살았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불러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부담이 그의 삶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 부담을 잊었을 때,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었을 때 모세는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부담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에 대하여 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걸어주시는 것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한다. ‘거룩한 부담’이라고 할까? 모세의 삶이 그랬고, 바울의 삶이 그랬다.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해‘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로마서1:14)’라고 말했던 이유도 역시 이런 ‘거룩한 부담’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런 부담을 느끼며 살았던 바울이기에 예루살렘에서 갇힌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그에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사도행전23:1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로마까지 가서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부담을 예수님이 아셨다는 말이다.
3.예수하는 자들의 특징을 예수님은 마태복음6:33에서‘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부담을 항상 마음 가운데 가짐으로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젼에 대하여 고민하며 사는 것이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의 삶의 바탕이고, 바울은 이런 ‘하나님께 대한 부담’을 가진 삶을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10:31)’고 말한다. 바울의 말은 먹고 마시는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삶 가운데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혹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하나님께 대한 부담스러움’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부담스러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를 이야기하시면서 그런 부담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께 대한 부담’은 스스로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닫고,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3:11)’라고 말했던 모세와 같이 스스로 낮아지게 한다. 그래서‘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지 못하는 ‘나’를 보기 때문에 아프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온유함을 유지하게 된다. 이 부담스러움을 사람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시면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으신 그 길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었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지난 주에 이야기한 것 같이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아진 삶을 감당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도‘하나님께 대한 부담스러움’, 즉 ‘거룩한 부담’으로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