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본교회 마가복음 강해 2(막1장21절 - 2장12절)
1. 귀신을 쫓아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막1장 21-28절)
예수님은 당시 유대 북쪽 큰 도시였던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그의 교훈과 그의 권위에 놀랐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심판자이시에 때문에 권세가 다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른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메시야의 호칭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의 증거를 원치 않는다. 오직 복음의 증거로 그의 이름이 선포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이 나라는 영적인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에 세워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귀신들을 내 쫓고,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귀신을 쫓는다는 것은 메시야의 나라, 만왕의 왕의 임재를 알리는 의식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실제적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가 있는 새 교훈이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은 그 안에 생명과 능력이 있다.
2.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그리스도 예수(29-31절)
시몬은 장모를 모시고 산 것 같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
3. 온 동네의 모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신 그리스도 예수(32-34절)
예수님은 갈릴리 온 동네의 모든 병자와 귀신들을 자들을 다 고치셨다. 오늘날 자칭 신유 은사자들은 모든 병을 고치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 죄와 병과 귀신을 쫓아내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하시는 세상의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그의 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4. 온 갈릴리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신 그리스도 예수(35-39절)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시는 삶을 사셨다. 새벽에 기도를 하셨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장7절)”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심각하고 매우 위험한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전도하러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날마다 기도하며, 전도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5. 불치병인 나병환자를 고치신 그리스도 예수(40-45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한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즉시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꿇어 엎드려 간구한 것이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으로 저주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와 저주와 병과 귀신이 떠나가고 고쳐지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계셨다. 그러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병고침 보다 복음 선포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의 병만을 고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병인 죄를 고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가 육체의 질병을 고치신 것은 그가 영적인 병인 죄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다. 이 땅의 질병은 죄의 상징이다. 특히 나병은 죄인이 걸리는 병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 질병을 고치시므로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직 병만을 고치시는 선지자 정도로 알고 그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주님은 절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유익한 것도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절제하신 것이다. 질병의 치료는 이 땅에만 효과가 있으나 복음은 이 땅뿐만 아니라 영원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는 말씀은 당시의 나병환자가 사회로 복귀하는 데 필요한 율법 규정을 지키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6.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 예수(2장 1-12절)
가버나움에 있는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문 앞까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고 계셨다. 여기서 도는 진리, 복음을 의미한다.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그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한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여기서 그들 안에는 중풍병자도 포함된 것이다.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죄를 사할 수 없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왕도, 이 땅의 어느 누구도죄를 용서할 수 없다. 오직 죄는 하나님만이 사하신다. 그래서 어떤 서기관들이 마음에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은 의도적이다. 단순히 예수님이 선지자들도 할 수 있는 병을 고치시는 분 정도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고쳐주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시에 그들은 메시야를 정치적인 것으로 여겼고, 구속주로는 생각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닌 죄사함을 위한 메시야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는 죄사함이다.
http://cafe.daum.net/bangbaebon-church/TB2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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