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14년 예수의 소년시절에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식 없이 76세의 생을 마감했다. 임종시 아내의 팔을 의지해 생을 마감한 옥타비아누스 즉 성경의 가이사 아구스도로 기록된 제정 로마의 초대 황제는 다음의 말을 남기고 영면했다. “만약 인생의 연극에서 내가 맡은 배역을 잘했고 즐거웠다면 당신의 갈채로 무대를 내려가게 해주시오.” 리비아. 이제 안녕이고 우리의 결혼을 기억해주오. 바로 이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이었던 예수시대의 황제 티베리우스(AD 14~37)는 말 그대로 늙은 학살자였다. 냉혈독재자 티베리우스는 1세기 로마 황제들 중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물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은 몰래 남들의 얘기를 엿듣고 밤새 분노를 삭인 다음 날 처형 명단을 제시했다. 이 사람 티베리우스에게 살인은 하나의 즐기는 유희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살인에는 정적은 물론이고 무고한 시민들과 심지어는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들까지 무참하게 죽여 테베르강으로 던졌다. 공포 속에 살던 당시 로마 시민들은 이 늙은 학살자가 테베르강에 던져질 날만을 고대한 채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다. 황제 티베리우스는 물욕에 미친 자였다. 제국의 민초들은 수확물을 구매하여 로마의 주화로 세금을 내야 했다. 로마인들은 주피터의 아내 주노 여신이 제국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주노의 신전은 ‘돌본다’의 뜻을 지닌 모네타(Moneta)로 불렸는데 당시 주화들은 바로 주노 신전 모네타에서 주조되었다. 여기에서 생긴 용어가 돈이라는 말 ‘머니’의 탄생이었다.
예수님 당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 속의 동전 주화에는 바로 이 늙은 학살자 티베리우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한 면에는 황제 티베리우스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고 새겨졌고 그 반대편에는 최고 사제 칭호가 쓰여 있었다. 티베리우스의 통치 23년 로마는 참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티베리우스의 충복이었던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했을 당시 황제 티베리우스는 70이 넘은 노인이었다. 말년에 티베리우스는 그동안의 학살극으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보복에 떨고 있었다. 심신이 허약했던 티베리우스는 로마를 떠나 나폴리 아래 카프리 섬으로 떠난다. 섬이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포악함을 그대로 빼닮은 후계자 카리큘라에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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