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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

손재익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6. 5. 5. 00:54

본문

<2016 5 1일 주일 한길교회 오전설교>

 

창세기 강해(37)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

( 10:32 ~ 12:3)

 

설교본문낭독: 창세기 10 32 ~ 12 3

설교: (창세기 강해 37)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

 

 

서론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의 주제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키워드가 몇 가지 있습니다.[1] 언약, 메시아 사상(여자의 후손)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2]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내용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어떻게 세워나가시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있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가득한 나라,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세워나가시는데 이 일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삭이라는 후손을 허락하시고, 그 후손을 통해 야곱을 태어나게 하셨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으며,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나라)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은 다윗의 때에 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니 다윗 왕국이요, 그 다윗 왕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나라는 때가 차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정 부분 완성되었으니 바로 신약교회입니다. 신약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일정 부분 완성된 것이기에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스라엘-신약교회-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그림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읽어나갈 때에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까? 쉬운 대답은 하나님께서 원하셔서입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라는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쉬운 답은 되겠습니다만, 너무 뻔한 대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성경 본문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계획하셨는가?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인 바벨을 세우자, 하나님께서 바벨에 대항할 하나님의 도시를 세우셨다입니다.

 

 

본론

 

. 바벨 이라는 성읍

 

바벨이라는 도시

 

             11:1-9에 나오는 이름 바벨(9)은 사람들이 흔히 바벨탑이라고 하니까 에 초점을 두는데, 사실 바벨의 이름은 이 아니라 성읍의 이름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도시입니다.

             11:4을 보면 ...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라고 말씀합니다. NIV 성경에서는 Come, let us build ourselves a city, with a tower that reaches to the heavens,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읍을 건설하면서 탑을 함께 만든 것입니다. 성읍이 핵심이고, 은 그와 함께 수반되는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11:8에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라고 말씀합니다. 탑 이야기는 하지 않고 도시라는 말로 성읍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바벨이라는 성읍(도시)을 세운 것입니다.

             도시라는 말의 의미를 오늘날의 도시로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의 일입니다. 인구규모가 오늘날에 비해서 매우 적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도시나라입니다. 역사 교과서에 보면 도시 국가라고 하지요? 바로 그런 형태입니다. 그래서 10:10에 보면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라고 말합니다. 성읍, 도시, 나라 모두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의 특성

 

             이 바벨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도시를 세운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절과 4절에 ~라는 표현은 NIV NASB성경에 잘 나오는 것처럼 Come, let us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란노 우리말 성경에는 , 우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으면 ~!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3). ~! 우리가 성읍과 탑을 건설하자(4).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자(4).입니다. 도시 건설의 주체가 철저히 사람입니다.

             시날 평지를 발견한 것도 사람이요 건설을 위해 동원된 힘과 노력과 모든 자원도 사람의 것입니다. 바벨이라는 도시는 made by man, 즉 사람에 의해 세워진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사람들이 건설했습니다만, 그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10:10을 보시면 바벨이라는 나라가 언급되고 있고, 10:10 10:6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가나안의 아버지인 함의 족보입니다. 그리고 10:8을 보면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바벨을 쌓는 일을 한 주체입니다. 그는 8절의 표현대로 세상의 용사입니다. 이 때의 용사 라는 말은 정복과 전쟁에 능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도시 건설의 목적이 사람의 이름을 내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세우고자 한 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내고, 사람의 흩어짐을 면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 지려고 하는 것이 이 도시 건설의 목적입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힘을 통해서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에까지 높아지려는 교만한 모습을 여실히 풍기고 있습니다.

 

             바벨이라는 도시의 모습은 가인이 건설한 도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창세기 4:17에 보면 가인이 에녹이라는 아들을 낳은 뒤에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 하여 에녹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인이 쌓은 에녹성은 도시입니다. 나라입니다. 가인은 자기만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이름을 자기의 아들의 이름으로 지음으로써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없고 자신이 다스리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3]

             바벨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자 라고 하는 사람들은 마치 성을 쌓고 자기 아들 에녹의 이름을 지은 가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바벨은 사람들이 세운 도시오, 사람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주권도, 하나님의 영광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이름을 드러내고 사람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 나라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입니다.

 

 

. 하나님이 세운 성읍

 

바벨 건설을 멈추시는 하나님

 

             사람들이 자신을 대적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11:6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그리고는 그 일을 멈추어야겠다고 작정하시고 내려오셨습니다(7).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더 이상 사람의 나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를 세우지 못하게 하십니다(8-9).

 

도시를 세우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심

 

             그들을 흩으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십니다.[4]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을 세우십니다. 이 일을 위해 셈의 후손을 준비하고 계시니 11:10에서부터 26절까지 셈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셈의 후손 중 한 사람인 데라의 아들 아브람이라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성읍을 세울 작정을 이루어 가십니다.

             창세기 12:1-3을 봅시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성읍을 세울 계획을 아브람에게 알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이 도시 혹은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이라는 증거는 12:1-3에 나오는 3가지 중요한 요소 때문입니다. 12:1의 땅, 12:2의 민족, 12:3너는 복이 될지라.[5] 이 세 요소들은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라는 말은 아브람의 이름으로 불리는 민족과 국가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6]

             이 말씀에서 특히 집중해야 할 단어는 2절에 나오는 큰 민족입니다.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민족이라고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로 고이인데 민족으로도 번역될 수 있고 나라(nation)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7] 그러므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는 말씀은 내가 너를 통해 큰 나라를 세울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2:1-3의 말씀이 나라를 세우실 것에 대한 계획이라는 사실은 다른 성경구절들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 집니다. 창세기 18:18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창세기 12:2-3의 반복입니다.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이 곧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1:10을 보면 이 말씀은 히브리서 11:8에서 이어지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바로 , 성읍, 도시, 나라였음을 잘 보여줍니다.[8]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한, 자신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이제 아브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의 특성

 

             이 나라는 앞서 살펴본 바벨과 대조해서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이 성은 바벨과 달리 하나님이 세우시는 성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2:1 하반부에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라고 말씀합니다. 12:2 초반부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2:2에 계속되는 말에 나오는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은 번역을 생략했습니다만, 엄밀하게 번역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입니다. 내가라는 말을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어서 생략한 것입니다. 그리고 12:3.....내가 복을 내리고.... 내가 저주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땅을 정하고 아브람에게 지시하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나라를 복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땅의 모든 족속으로 아브람을 통해 복 받게 하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12:4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라고 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에 반응할 뿐입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세워지는 나라이니 말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9]

             앞서 사람들이 바벨을 건설한 이유는 본문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호를 받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성을 건설합니다. 가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12:3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람을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나라를 세웁니다.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스스로가 보호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나라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호할 성을 세우십니다. 사람인 아브람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운 자

 

             바벨이라는 나라는 사람들 중 특히 함의 후손이 세웠습니다. 반면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만 사람을 사용하시니 아브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한 아브람은 누구의 후손입니까? 셈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12:1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성읍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11:10-27에는 아브람의 조상인 셈의 족보가 나옵니다. 11:10에서 11:26까지 셈에게서부터 아브람으로까지 이어지는 족보가 나옵니다.[10] 그리고 셈의 족보의 끝에 나오는 11:26에는 데라가 낳은 3명의 아들이 언급됩니다. 아브람, 나홀, 하란. 10-25절까지 1명의 자녀만 나오는데 왜 26절에는 3명의 아들이 언급될까요?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데라가 낳은 세 아들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이루실 것을 보여줍니다. 바벨이 세워지는 중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존하셨습니다. 함의 후손들이 바벨을 쌓는 동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셨으니 셈의 족보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족보는 특히 이전에 나오던 족보와는 조금 다릅니다. 5장에 나오는 족보와 비교해 보면 5장의 족보는 A가 몇 세에 B를 낳고, B를 낳은 후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몇 세에 죽었더라라고 되어 있는데,[11] 11:10-26의 족보는 A가 몇 세에 B를 낳고, B를 낳은 후 몇 세를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해서 그는 몇 세에 죽었더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전의 족보가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제 나오는 족보는 그 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11:27은 아브람에 대해 소개하면서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12] 이렇게 소개된 아브람 일가의 특성을 자세히 보시면, 3가지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28절에 보면 아브람의 형제인 하란이 그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그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자식이 죽은 것이 핵심입니다. 마치 아담의 아들 아벨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것과 같은 슬픔입니다. 게다가 .....데라보다 먼저....라고 번역된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데라의 얼굴 앞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 앞에서 아들이 죽은 슬픔이 있는 데라의 집안입니다.

             둘째, 26절에 보면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500세에 세 아들을 낳은 노아에 비할 바 아닙니다만, 데라의 이야기가 포함된 11:10-26을 보면 12절에 아르박삿은 35세에, 14절에 셀라는 30세에, 16절에 에벨은 34세에, 18절 벨렉은 30세에 자녀를 낳습니다. 셈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로 30세 전후로 자녀를 낳았는데 데라는 70세가 돼서야 비로소 낳았습니다.[13]

             셋째, 아브람은 어떻습니까? 30절에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은 아예 큰 민족을 이룰 가능성 조차 없습니다.

             데라의 족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14] 이렇게 불행하고 어두움이 가득한 가족에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일하십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 지를 우리로 하여금 보도록 만듭니다. 씨 없는 자를 통해 씨의 약속( 3:15)을 이루시는 하나님만을 소망하게 만듭니다. 무언가를 이룰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 한 가족을 통해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택자의 평범성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의 특성은 뭔가를 이룰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 자를 통해 세우셨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이 그에게 대단한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4:2-3을 봅시다. (2)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버지인 데라는 우상을 섬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데라만이 아닙니다. 너희의 조상들이라고 되어 있고, 섬겼으나라는 말이 히브리어상으로는 3인칭 남성 복수형입니다. 그러므로 데라, 아브라함, 나홀이 우상을 섬겼다는 말입니다.[15]

             아브람과 데라가 떠나온 갈대아 우르는 매우 번창한 도시로, 달의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고, 드라빔과 같은 우상을 만드는 우상 제조업도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는 그 이름의 뜻이 왕비입니다. 그런데, 우르(Ur)의 달(, Moon)의 신인 씬(Sin)의 아내 이름이 사라투(Saratu)입니다. 그리고 11:29에 나오는 나홀의 아내가 되는 하란의 딸 이름이 밀가는 그 뜻이 여왕인데, 달 신인 씬(Sin)의 딸의 이름이 말카투(Malkatu)입니다. 이와 같이 사래와 밀가의 이름은 달 신의 아내와 딸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이런 점들은 그들이 달 신을 섬기던 곳 출신인 것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16]

             이처럼 아브람에게 특별한 자질이나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상을 섬기던 자입니다. 슬픔이 가득 차 있는 집안입니다. 민족을 이룰 수 없는 조건에 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한 백성 셈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노아가 예언하였던 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 교회; 하나님의 나라

 

아브람을 통해 세워지는 나라의 결국 = 교회

 

             이렇게 세우신 하나님 나라가 아브람을 거쳐 점점 구체화됩니다. 이삭과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고( 26:5), 모세를 통해 국가를 세웁니다. 출애굽기 19:5-6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나라(참조. 32:10; 14:12; 9:14)는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 시대가 되어 이스라엘 왕국이 됩니다(삼하 7:9; 72:17).[17]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1:1).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아브람을 부르셔서 세우고자 한 하나님 나라는 결국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성읍입니다.

 

아무 조건 없는 우리를 부르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에게 아무런 조건을 찾을 수 없듯 우리에게도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죄 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예정하시고 부르셨으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1:3-23).

 

교회;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아무 조건 없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지금도 당신의 거룩한 성읍을 세워 나가십니다. 이 성읍은 바벨을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나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속한 한길교회는 그 나라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요,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입니다.

 

 

. 적용

 

바벨을 대항하자

 

             교회의 회원된 여러분~! 서울시 강동구 길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여러분~!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벨을 대항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람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람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가득 채워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명예를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고 우리의 흩어짐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에 닿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바벨의 시도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적개심(敵愾心)은 첫 사람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계속 반복됩니다. 가인과 아벨,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노아와 네피림, 방주 안에 있던 노아 가족과 방주 밖에서 쓸어버림을 당한 사람들, 그리고 바벨을 지은 사람들과 아브람. 그리고 그 이후 이삭과 이스마엘, 에서와 야곱, 이스라엘과 애굽, 북이스라엘과 앗수르, 남유다와 바벨론, 예수님과 헤롯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성읍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세상이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노래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때에 여전히 사람의 이름을 내는 세상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으로 우뚝 서야 할 것입니다.

 

 

. 본문에 대한 재설명

 

             오늘 살펴본 말씀은 교회를 제법 다닌 분이라면 누구나 듣고 읽어온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진정한 의미, 본문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는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약속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창세기 11:1-9과 창세기 12:1-3은 서로 아무런 관련 없는 본문이 아닙니다.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두 본문 모두 동일하게 어떤 도시, 혹은 나라 건설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의 성격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나라는 사람들이 세운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요,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시작될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함으로 세우려 했던 바벨이라고 하는 나라를 허무시고, 친히 당신의 성읍 당신의 도시 당신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아브람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아브람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평화가 가득한 나라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바벨과 같은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이 교회는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도로 세워지며, 사람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입니다( 5:14).

 

 

결론

 

             창세기 3장에서부터 11장까지에 나오는 큰 사건들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 가인의 살인, 노아 시대의 범죄, 바벨의 범죄가 나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을 심판하셨고 계속해서 그 범죄들이 일어나는 중에도 일하시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좀 더 근본적인 일을 계획하십니다. 아브람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십니다.[18]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사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시작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를 통해 바벨을 대항할 하나님의 성읍이 세워지게 됩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셈의 후손인 아브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브람을 통해 세우신 큰 민족인 이스라엘, 그것을 통해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왕국은 세상의 왕국과 맞서 싸웁니다. 바벨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성읍입니다. 이 싸움을 이기게 해 주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9:26).

 

 




[1] 구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통일된 주제가 있지만, 또한 동시에 다양한 해석방법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다음을 참조하라. John Goldingay, Approaches to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Downers Grove: IVP, 1981), 김의원, 정용성 공역, 『구약 해석의 접근 방법』(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2). 구약에 하나의 중심주제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구약이 사상적인 통일성이 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와 직결된다. 신득일, 구약 중심주제의 논쟁점과 신학적 주석관점으로서의 구속사, 『고신신학』, 통권 4 (부산: 고신신학회, 2002), 39-64. 폰 라트는 구약을 어떤 특정한 하나의 신학으로 보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Gerhard von Rad,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München: Kaiser Verlag, 1975), 446f.

[2]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천국(天國), 하늘 나라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3계명의 영향으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부르기보다는 하늘이라고( 15:18,21; 20:4; 21:25; 3:27; 4:26)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나라 라는 말 대신에 하늘 나라 라고 사용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한자어로 번역하니까 천국(天國)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에서 출발해 신약의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성경 역사의 다른 곳에서도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축물을 짓는 예를 찾을 수 있다( 18:28; 삼하 18:18; 56:5).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al Worldview (Kansas: Two age Press, 2000), 김구원 역, 『하나님 나라의 서막』(서울: P&R, 2007), 345; Kenneth Mathews, Genesis 1-11:26,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 1996), 478-47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서울: 생명의 양식, 2009), 338.

[4]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는 사건은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김의원, 『창세기 연구: 문예접근법에 따른 창세기 연구』(서울: CLC, 2004, 20132), 220;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0), 36.

[5]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31.

[6] 기동연, 『아브라함아!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주석 시리즈 (서울: 생명의 양식, 2013), 32.

[7] 민족이라는 뜻과 함께 백성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31, n.13.

[8]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35.

[9]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35.

[10] 이 족보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BC 1 (Waco: Word, 1987), 박영호 역, 『창세기 1-15(서울: 솔로몬, 2006), 451.

[11] Wenham, 『창세기 1-15, 26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198.

[12] 이 족보는 데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는 아브람을 중심으로 기술한 내용이다.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27, 30; 기동연, 『아브라함아!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주석 시리즈 , 22.

[13] 기동연, 『아브라함아!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15.

[1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347.

[15] 참조. 위경인 희년서 12

[16] Wenham, 『창세기 1-15, 485.

[17] Kenneth Mathews, Genesis 11:27-50:26,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 2005), 114.

[18] Wenham, 『창세기 1-15, 44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34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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