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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됨, 하나님을 봄/박동근목사

박동근목사(안양)

by 김경호 진실 2016. 5. 20. 06:07

본문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됨, 하나님을 봄

 

마태복음 5:8

서론

오늘은 팔복에 관한 설교, 여섯 번째 복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에 대해서
둘째는, 청결한 마음에 대해서
셋째는,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에 대해서
깨달아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a.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청결해야 해야 복이 있다고 선언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청결해야 할 곳을 마음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척 첫 예배를 드린 후, 팔복을 설교하면서, 그리고 수요일 “언약과 구원”이란 주제로 구원론을 강설하면서, 그리고 수요일 오전의 “기독교 강요” 해설을 하면서,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여하신 분들은 자주 “마음”에 대해 듣게 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번 여러분에게 마음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독교적 인간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마음’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가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문제가 마음에서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지으시고, 그 마음을 통해 인간과 교제하시며, 또 그 마음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은 인간 존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인간 인격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원리를 인간의 마음에 심기워 사람이 산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거듭남도 성령께서 생명을 마음에 심기우실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십니다. 신앙과 경건의 좌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그곳은 마음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말씀이 들려지고, 성령께서 귀먹은 마음의 인식 능력을 되살리시고 재생시키실 때, 비로소 하나님을 보기 시작합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발생합니다. 믿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부패한 마음에 생명을 불어 넣으실 때 믿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육체는 잠시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사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하며 노화가 시작되고, 사실 인간의 육체도 죽음의 족쇄에 묶여 그 생명이 시작됨과 동시에 또한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되어 사실 죽은 영혼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인식하고, 느끼고, 그것들을 바라고 선택하며 행동할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할 수도, 느낄 수도, 바라고 선택할 수도 없는, 하나님에 대해 죽은 존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본다. 바라본다. 붙든다. 등등의 비유적 표현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이 모든 표현들은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를 표현하기 위한 말들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이와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생명이 없기에,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며, 심지어 죄인들 앞에, 심지어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시기까지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도무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과 연합과 교제를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세상을 보는 육적인 눈은 소유했지만, 하나님을 보는 마음의 영안은 부패하여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니, 우리 존재의 중심이니, 그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마음은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곳에는 부패와 더러움이 넘쳐나니, 이런 마음은 생명에 속한 것을 깨달을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바랄 수 없고, 선택할 수 없고, 그러므로 그 삶의 열매가 맺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좌소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 좌소를 삼아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인간과 연합하시며, 교제하기 위해 지으신 장소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셔야만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이 떠나가실 때, 마음은 사망의 장소가 되고, 어둠의 장소가 되고, 죄악을 만드는 죄악 공장이요, 우상 공장이 됩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의 이성도, 의지도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청결함이 복되다 할 때, 그 청결함은 외면이 아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인격의 중심이며, 마음이 하나님의 좌소이니, 마음이 불결하고, 부패할 때, 영안이 어두워져 하나님도 잊고, 하나님의 뜻도 보지 못하며, 오직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며, 마음은 어둠의 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결하여 진 자들은 그 영안이 멀어 영원을 버리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 그 영혼을 팔아 먹은 에서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마음이 부패해지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센터가 파괴되면, 우리의 전 삶속에 참된 평안과 안정감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유리하는 자가 되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상실한 가인의 자취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창 4:14).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면,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지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면, 성령께서 우리의 어둔 마음을 비추시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뜻이 보이기 시작하고, 생명의 빛을 보고 경험케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많은 것에 목말라 하지만, 앞선 설교들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부패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의와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거룩과 그분의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진정한 영생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구정물을 들이키며, 잠시 시원함은 곧 불쾌감과 더 큰 갈증으로 영혼은 괴로워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죄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아담의 타락 안에서 부패해졌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결코 청결할 수 없습니다. 아담 이후로, 자연적인 생식의 원리를 따라 이 땅에 숨 쉬게 된 인생은 모두 마음에 원죄를 품고 태어나, 마음의 어둠 속에 하나님의 뜻과는 역행된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용서받고, 그들은 씻겨 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뿌려진 마음마다 마음이 청결케 되어, 하나님을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과 연합되어 그분과 사귐, 교제를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격의 중심 마음이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느끼고, 그분의 뜻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만 있는 그 생명의 맛을 맛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b.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실 때,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를 세 가지 교훈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의미로 우리의 삶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지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죄를 따르지 않고, 거룩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둘째,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순수하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하다는 것은 흰 것에 검은 것이 섞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순수하다는 말의 반대는 혼합되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두 마음을 품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마음이 표리부동한 마음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의미의 정결을 가르치려 하시기도 하셨지만, 사실 두 번째 의미의 청결을 강조하여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지 청결하라는 교훈에 마음을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외적으로만, 겉보기에만 청결해 보이는 경건이 아니라 속이 청결하고, 겉과 속이 일관된 경건을 예수님께서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말씀은 표리부동한 외식으로 가득 찬 바리새인의 경건과 대조된 의미로 말씀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거룩은 마음과 말이,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청결을 추구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사 의식이나, 정결 의식과 같은 외적 경건에 있어 몹시 열심을 품었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을 청결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속은 무덤처럼 온갖 부패한 시체들로 가득했지만, 겉은 화려한 의식과 의복으로 회칠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식사 전 손을 씻는 정결의식이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7-20). 바리새인들은 식사 전 손을 씻는 정결의식을 행하기만 하면, 스스로를 정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내적인 부패를 외적인 의식으로 가리려 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청결은 육신의 손을 씻는데 있지 않고,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 밖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반대로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밖이 아닌 마음, 곧 속사람의 청결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죄 많은 우리들이 어떻게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청결한 마음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청결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며, 어떻게 이런 청결한 마음을 지녀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요?

a. 아담 이후, 모든 인류의 청결이란 높은 신앙적, 도덕적 이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의 죄의 깊이와 심각성을 깨닫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 청결의 시작은 우리가 부패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회개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청결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앞서 나가는 생각자체가 무엇인가 근본적인 착각 속에 빠져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청결한 마음을 지니기 전에 청결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몇 몇 의식을 지키며 이런 오만한 생각을 가졌기에 실제로 그 부패를 고침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본다 하니 여전히 맹인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맹인이 그 맹인됨을 인정하지 않을 때, 고침의 손길을 피하는 이치대로, 그들은 부패한 영혼을 고침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죄인됨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도 전적으로 부패하여 스스로 볼 수 없고,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청결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가 우리를 씻어 내야만 우리는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기에, 그분의 속죄의 열매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속죄로 인해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혜사로 모실 수 있는 은혜를 허락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성령은 우리에게 내주하실 수 있었고, 우리를 거룩하게 고칠 수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죄 덕분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자백해야 하고, 예수님의 용서와 거룩하게 하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청결은 청결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부터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애통하며,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앞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게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결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진정한 청결은 자기 의를 버리고, 혹은 위선을 버리고, 외식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벌거벗은 존재처럼, 우리의 정체와 실상을 정직하게 아뢰고 고침을 구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이처럼 마음의 모든 숨은 불결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그의 용서와 구원에 맡기는 것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지 않는 곳에 깨끗게 하시는 은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해 지는 방법은,
먼저 우리의 죄를 정직하게 하나님께 토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죄를 유일하게 깨끗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청결한 마음은 자연에 속한 청결이 아닙니다. 이 땅에 속한 청결이 아닙니다. 자연인들의 도덕 생활, 자연인들의 수련 생활로 성취되는 청결이 아닙니다. 영혼의 뿌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의 사망의 암덩어리를 그리스도의 피로만 씻어낼 수 있는 것이며, 성령의 정결케 하시는 능력으로만 고침받아 깨끗해 질 수 있는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청결은 믿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 한 길뿐입니다.



3.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용서받고, 새롭게 된 성도들에게 임하는 복은 무엇입니까? 그 복은 하나님을 보는 복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마음이 청결하게 된 자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주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a. 연합과 교제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의 열매와 결과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봄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표현을 vision of God, beholding of God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라 봄은 관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바라보고 산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vision이란 말이 현대 교회에서 많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vision을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사용할 때, 개인이 되고 푼 개인적 야망이나 목표 혹은 꿈과 같은 말로 사용되는데, 이는 매우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표현들입니다. 성경에서 vision이라는 말은 우리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용어입니다. vision of God이란 beholding of God이란 말과 동의어인데, 하나님 자신을 말씀과 성령의 조명 아래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봄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믿음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봄이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과 행위 자체를 의미합니다. 봄이란 하나님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씀의 빛으로 계시하실 때,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과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과 같고, 하나님을 응시할 수 있는 시력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은 믿음으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과 교제하게 됩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향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들, 그 마음이 중생한 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을 성경은 여러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하나님을 붙든다. 하나님을 따른다. 등등 여러 비유적 표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 속에서 그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분을 확신케 하고, 그분을 붙들게 만듭니다.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은 말씀을 지향하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 그리고 믿음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보는 복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을 믿음 안에 주신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분을 바라볼 수 없다면, 그분을 붙들 수 없다면, 우리는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내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그분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영안을 주신 것은 복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물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응시할 수 있는 믿음의 눈 때문이었습니다. 이 눈은 그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 회개하고 믿을 때, 청결해진 마음속에 주어졌던 은혜였습니다. 그는 그 눈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발 밑에 풍랑을 바라볼 때, 그는 빠져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용서도, 우리의 거룩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의 공급도 다 예수님 안에만 존재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봄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해져,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거룩하여져서 그가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시력을 얻을 때, 그는 최고의 선 자체, 복 중의 복 자체, 그 근원 하나님과 교제케 되기에, 가장 복된 복을 받은 것입니다.

b. 우리 안에 죄성으로 믿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시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때까지 죄와의 투쟁 속에 있습니다. 죄가 하는 일은, 원수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 믿음의 시야를 가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 볼수록 더욱 선명한 시력을 갖게 됩니다. 독수리가 천리안을 가졌다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잠들면, 근시안이 됩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육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만을 따라 살게 됩니다. 믿음의 시력은 언제 약화됩니까? 거듭났지만, 잠들어 마음에 죄를 받아들일 때, 성도는 병들게 됩니다. 성도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깨끗게 하신 마음의 청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도가 다시 결신의 믿음을 고백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에 파고든 죄들을 회개할 필요는 있습니다. 즉, 성화를 위한 회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때부터 청결한 마음이 천국에 이르도록 더욱 더 청결해 지도록 말씀을 바라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되었다 생각말고, 오히려 마음이 부패해져 하나님을 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마음을 지키는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능력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믿음 안에 갖고 살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할 때,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에, 우리의 도움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게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깨끗한 그릇에 가치 있고 선한 것을 담으십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0-22). 큰 그릇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금과 은으로 도금된 화려한 그릇이 되려고도 마십시오. 다만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릇도, 화려한 그릇도 아닌 깨끗한 그릇을 선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믿음과 회개를 통해 용서받고 거듭나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아, 그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 속에 그분의 영광과 사랑의 빛을 받고 살아가는 복된 한길 교회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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