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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기

박동근목사(안양)

by 김경호 진실 2017. 1. 7. 21:28

본문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기

창세기 26:12-25

본문에서는 이삭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복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삭의 이와 같은 번영에 대하여 몇 가지 사안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합니다.

첫째, 구약은 현세적인 축복을 통해 영원한 축복을 예표했고, 현세적인 저주를 통해 영원한 저주를 예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형통을 단지 기복신학 혹은 육적인 번영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이를 신약의 교회에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구약의 시대라하더라도 이삭은 단지 육적 번영을 한 없이 누린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총을 내리셨습니다. 그가 거하는 땅에서 농사하니 그 해에 백 배나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삭은 그런 큰 결실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 계속 유랑 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가 백 배나 얻은 땅은 그저 잠시 빌려 사용한 것일 뿐입니다. 즉, 그는 그의 소유로 땅 한 평 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되 그는 나그네라는 신분을 벗어날 정도로 축복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번영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에게 그 필요한 것을 적절히 베푸시는 그런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백 배나 얻은 결실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명령과 섭리 속에서 그는 번영을 뒤로 하고 나그네로서 유랑해야 했습니다. 이삭에게 베푼 축복은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위해 그의 가정과 식솔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베푸신 배려입니다. 그가 누린 축복은 언약을 맺으시고 진정한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그들에게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그네의 불편한 삶을 벗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영원하고 진정한 본향은 하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용할 양식과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려할 때 필요한 것을 적절히 내려 받는 삶은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받으며 살지라도, 우리는 이삭처럼 이 땅에서 나그네 됨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은 주의 나라와 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고, 그 삶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적절히 하나님의 손으로 공급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자원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진정 하늘 시민의 순례의 길에 적합한 용도로 활용하여 하나님 앞에 덕을 세우고 영광을 돌리는데 선용하도록 사용하는 생활, 이것이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사는 시대에 그가 나그네로서 이방인의 땅에서 생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 적절한 배려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삭은 언약 안에서 그런 복을 받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우리도 이런 이치를 잘 깨달으면 더욱 세상에서 위로를 받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삭은 그 본토인보다 더 큰 복을 받아 재산이 불어나고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땅에서는 나그네요, 본향을 하늘에 둔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인생지마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써서 인생을 말하지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더 적용하기에 적합하고 합당합니다. 인생이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된다는 이치를 표현하려 이 고사성어를 사용합니다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도 본연의 신분과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이 땅에서의 번영은 적절한 선에서 베푸신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절대로 우리의 본향이 이 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적절히 다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간혹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그런 어려움마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삶이 붕괴되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때때로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때로 그런 달콤한 축복에 소금을 음식에 넣으시듯, 약간의 고난을 병행케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자원들을 누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번영만을 무한대로 허락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시든지 우리의 영혼에 해가 되지 않도록, 생명에 유익이 되도록, 경건에 유익이 되도록, 진정한 축복을 망각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내려 주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본토인들보다 더 크게 번영하도록 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가 파종을 하면 백 배나 결실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번영 속에 그의 부가 증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그네의 신분을 벗어나 그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이삭이 번영 중에 당한 시련은 번영만큼이나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부자가 되자 본토의 주인 아비멜렉과 블레셋인들이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추방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기꺼이 나그네답게 거처를 옮기지만, 시련은 계속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물의 근원, 우물을 상실하게 됩니다. 블레셋인들이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매웠던 것입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이 자손을 위해 파 놓은 우물까지 매워져 버렸던 것입니다. 이제 나그네로서 위협을 받을 만큼 본토인들은 적대적이었고, 그들의 노력으로 파 놓은 우물도 매워졌습니다.

이삭은 경건은 이러한 시련에서 돋보입니다. 그는 그랄 골짜기 땅으로 옮긴 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에섹(다툼), 싯나(증오), 르호봇(넓은 곳)에 이르기까지 계속 우물을 파고 매우고 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르호봇이란 우물을 판 후 다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지신 자녀를 향한 사랑과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마저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바른 마음과 신앙으로 받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줄 아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아는 성도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함께 하는 축복의 길에서 그들은 인내하고 계속하여 우물을 팔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나그네로 부름을 인식하기에, 자신에게 블레셋을 대적할 만한 군사가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에 순응합니다. 그리고 저항하지 않고 가능하면 나그네 답게 아브라함이 확보했던 우물들을 선용하려 애씁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열악한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도우시길 의지하며 우물이 매워질 때마다 다시 우물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평화적으로 계속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은 이러해야 합니다. 이삭은 본토인처럼 행하지 않았고 나그네답게 땅의 사용권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력을 사용하여 부당한 처사를 대항하지 않았고, 아브라함이 정당하게 확보한 우물들을 재사용하려 했지만, 그것마저 다툼과 증오 속에서 매워졌습니다. 이삭은 인간적인 모든 알력을 내려놓았지만, 우물 확보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삭은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모든 것을 맡기고 평화롭고 겸손한 자세로 우물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해 생존을 위한 노력을 놓치 않았습니다. 은혜에 의지해 겸손히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치를 본문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번영 가운데도 나그네의 고난이 멈추지 않는 인생 속에서 신앙인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 성실히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세파가 결코 멈추지 않는 인생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 나그네로서의 순례의 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삭이 우물을 확보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24절에서 그에게 현현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삭에게 많은 번영도 있었고, 고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시련을 딛고 이삭은 우물을 얻습니다. 그는 몹시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베푸신 은혜 중에 은혜는 하나님 자신을 이삭에게 자신을 현현하시고 친히 이삭을 향해 생명의 말씀과 약속을 들려주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현현과 말씀을 들려주심은 이삭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가장 큰 능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물질적 축복을 넘어선 진정한 축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진정한 약속을 위해 이삭의 생활을 지켜 주신 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생활을 위한 자원이 그의 본분을 잃게 하지 않으려 잠시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련을 잘 이기고 난 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가장 본질적인 복이 무엇임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이삭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고 말씀으로 그에게 약속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궁극적인 복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음식과 의복, 건강 등 많은 현세적인 필요들을 내려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며 우리의 영혼에 성령으로 그 말씀을 허락해 주시는 은혜를 가장 만족스러운 은혜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모든 축복과 고난의 의미들이 오로지 아브리함에게 맺으신 언약 안에 약속 안에서 복된 것임을 다시 확증하십니다. 이삭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보존하실 이유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안에 약속에 대한 신앙 위에 토대함을 다시 일깨우십니다. 성도는 우리의 신앙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신앙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 안에서 성도들을 지키실 것이니, 성도들의 신앙은 두려움을 내어 쫓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언약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처럼 보여도 죽지 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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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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