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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자를 위한 심방 사역의 중요성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16. 7. 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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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환자들을 위한 사역

   
▲ 손덕식 목사(전 아주대병원 원목실장/ 현 한국목회자 건강연구소 소장)

결혼 초기 아내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6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가 대수술 후 완쾌된 적이 있다. 필자 역시 장 폐쇄증으로 약 10여 년간 119에 실려 다녔던 때가 있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온통 눈물과 상처로 가득한 삶이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시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병원사역을 시작하면서 지난 날 시련의 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주대병원은 직원 3,500여 명, 1,100개의 침상을 갖춘 초대형 종합병원이다. 원목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새벽예배, 주일 낮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수요 예배 등 빠짐없이 병원 지하의 기독교실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루 24시간, 환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역을 하다 보니 안타까운 사례도 자주 접하지만 암이나 희귀병, 교통사고의 우울감과 상실감에서 회복되는 사례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초대형 병원이다 보니 입원한 환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는 경우도 많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환자를 상담하는 법, 병실을 심방하는 요령 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목회자들이 병원심방을 다년간 후 환자들이 더 큰 아픔을 하소연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은 몸이 아픈 것이다. 날마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 다른 어떤 심방사역보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환자들을 만나러 오는 병원심방은 더 조심스럽고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병원심방이 가능할 것이다.

 

병원심방의 중요성

근본적으로 심방에 대한 한국 교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반드시 영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입원을 하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를 하고 간다. 그런데 목회자 역시 환자를 심방할 때 그렇게 위로하는 정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의 병원심방은 단순히 환자를 위로하는 정도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의사가 청진기를 가지고 환자의 신체를 찬찬히 살펴보고 진단하듯이 목회자는 환자의 신체 너머에 존재한 그들의 심리와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제시해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사람은 육신이 약해지면 정신까지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병원은 약과 수술 등으로 환자의 육신만을 치료한다. 따라서 환자들의 병든 영을 치료해주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역할이다.

과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신체, 사회, 정신 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적인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온전한 건강에 신체나 사회, 심리 뿐 아니라 영적인 부분도 포함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병원에서 수술과 약을 가지고 치료를 하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결코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가 잘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가 할 일은 심신이 지쳐있는 환자들이 영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의사는 드러나는 증상을 진단하고 약물과 수술로 치료해주지만, 목회자들은 영적으로 환자를 치료해주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교회가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병원심방을 위한 지침: 환자의 특수성을 이해하라

사람은 튼튼하게 지음 받았다. 그렇게 지음 받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와 아픔, 상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환자를 대할 때는 먼저 그 상처를 씻어주고 열등감이나 비교의식을 벗어버리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자신감을 회복하고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사실 환자는 도와줘도 끝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와줘도 끝이 없는 그 사람들을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환자가 되면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말을 삐딱하게 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도 그들의 모습을 비판하거나 이상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인의 기준과 잣대로 환자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몸이 약해지면서 생각과 말도 함께 약해지고 부정적으로 변하는 그들의 상황과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환자를 대할 때 중요한 포인트다.

오랜 시간동안 몸이 약해지면, 마음은 그보다 더 심하게 병들어 가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생각이 흘러들어오고, 그 부정적인 생각이 환자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든다. 환자들을 만나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내가 잘 살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다 왔는데, 지금은 계속 몸도 아프고 돈도 없으니까 무시해서 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신앙의 위기까지 겪는다. 환자가 되고 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교회와 목회자는 몸이 아파 마음까지 병들어가는 환자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힘든 일들이 많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외로움과 소외감일 것이다. 특히 환자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극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는 것을 자주 본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환자들을 위로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어지면서 환자들에게는 외로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외로움으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심방, 환자심방은 매우 중요한 목회 사역 중 하나이다.

그런데 단순히 심방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심방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히어떤 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는 영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각각의 환자들의 상황에 맞게 영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 라는 이슈는 심방의 중요한 요소이다.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

심방을 가면 주로 목회자가 말을 많이 하고, 심방 대상자들은 그저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병원심방을 할 때는 목회자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환자들의 고민과 형편이 어떤지 듣고 기록하는 것이 좋다. 환자들은 대부분 외로움에 목말라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아픔이다. 누군가 나를 좀 알아달라고 그들은 매일 속으로 소리치고 있다. 따라서 환자를 심방할 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심방을 통해 목회자는 성도들의 형편이 어떤지 아픔이 무엇인지 듣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필자는 암 환자를 심방하거나 상담할 때, 2시간 동안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30분 정도를 환자에게 이야기를 한다. 효과적인 병원심방의 노하우는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말을 들어준 뒤, 환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한 가지를 명확히 가르쳐줘야 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영적, 육적으로 진정 회복되는 길은 하나님이 당신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도록 깨우쳐 주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다. 목회자로서 병원심방을 준비하고 있다면 무조건 환자를 고쳐 달라, 살려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을 회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암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픈 몸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에 기인한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고쳐달라고만 무조건 외친다. 따라서 목회자로서 환자를 심방할 때 하나님이 나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알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외된 자들을 직접 찾아가라

31년 전 아내가 임신했을 때에야 비로소 길거리에 임신부가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임산부를 거리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밖에 나가면 임산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리에서 임산부보다는 청년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심사가 있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 내적인 관심사만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 아파하는 자들까지 관심 있게 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교회 행정의 범위 안에 있는 분들을 위한 심방은 그래도 잘 진행되는데, 감추어진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는 감춰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잘 찾아서 심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대부분 교회가 부흥하면 건축을 하고 외적으로 확장하는 수순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그런 외적 확장보다 교회 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 교회는 ‘OO장로교회, OO침례교회라는 이름 대신 ‘OO커뮤니티 처치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불신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을 교회 이름으로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통 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에 대해 담이 매우 높은 것 같다. 동네사람 중에 춥고 굶주리고 아프고 못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가 기꺼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낮은 곳을 먼저 찾아 갈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울어주는 병원심방

오래 전 어떤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목회를 꽤 잘하시는 분이었는데, 몇 년 전에 여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집사님은 그 목사님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목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쁘기도 해서 타박을 주어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님이 짐을 싸 가출을 했고 남편은 그 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목사님이 충격을 받아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목회자가 성도들의 고난과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상담에 임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보면 병문안을 오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원망하는 경우가 있다. 심한 경우 환자들은 그동안 내가 헛살았다생각하게 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새 억울해하고 괘씸하다는 생각만 하다가 내가 왜 병에 걸렸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타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타인을 원망하게 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에는 부부관계가 깨지고 가족관계가 깨지고 급기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오래 입원하는 암 환자들의 경우 심지어 혼자 어떻게 조용히 죽을까 연구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을 찾는 목회자들이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병원심방을 마치고 봉투 하나를 건네고 자신만만하게 돌아가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러나 표정 하나부터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목회자가 환자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자들은 상대방의 표정, 마음까지도 정확하게 읽는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그냥 형식상 왔다 가는 것인지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것이 바로 당사자들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병원심방을 갈 때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함께 울어줄 때, 환자들은 그 어떤 위로나 격려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다. 그 어떤 선물을 가져오느냐, 봉투에 얼마가 들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외로운 환자들은 함께 있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병원심방 시 지켜야 할 에티켓과 주의사항

아직도 일부 교회에서는 병원심방을 갈 때 아무개 집사님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가실 분은 예배 후에 주차장으로 모이십시오!”라고 광고한다. 그렇게 무리 지어 병원을 찾아가 부흥회를 하고 오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불쾌해하며 화를 내는 것이다. 병원심방에서 무례한 일부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습은 불신자의 눈에 잘 띤다.

응급실 출입요령이나 환자를 대하는 예의를 숙지하고 오는 사람보다는 무턱대고 병원심방을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병원심방을 할 때는 목회자나 심방대원 모두 주의사항들을 미리 숙지하고 오는 것이 필요하다.

병원심방의 경우 심방요원은 2-3명 정도가 적당하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방문하는 것은 오히려 쉼과 휴식이 필요한 환자를 방해하게 될 수도 있다. 병원심방을 가기 전에 환자의 병명이나 주의사항들을 미리 알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의 경우는 시간과 조건에 제약이 있으므로 사전에 병원의 지침을 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들을 향한 섬세한 배려이다. 사람마다 병과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 지수가 다르다. 특히 유방암을 앓는 여성 성도들의 상실감은 하늘을 찌른다. 실례로 한 목사님은 여성 집사님을 심방하면서 악의 없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며 돈 봉투를 전해주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격려를 했는데 환자 남편이 욕을 했다고 한다. “안녕 못한 줄 뻔히 알면서, 안녕하냐고 말을 하냐라고 악에 받친 말을 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나 말도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는 환자보다 의사가 많은 나라라고 한다. 무심코 어떤 것이 좋다더라, 무엇을 먹으면 낫는다더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흔들리기 쉬운 것이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한국 교회의 특성상 성도들은 고민이 있으면 목사님들에게 먼저 물어본다. 그런데 목사님들 중에는 한약을 먹어라. 대체의학을 해라라고 말을 쉽게 하는 분들이 있다. 그저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듣고 병원을 나가 무작정 기도원을 가기도 하고, 약을 지으러 다른 병원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병은 전문의와 목회자의 진단과 치료가 함께 이뤄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병원을 찾았다면 복도에서 많은 인원들이 가서 떠드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병원은 항시 긴급 상황 속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바쁜 의료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심방을 해야 한다. 회진 중일 때는 병실에 들어가지 말고 다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예의이다.

또한 환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녀야 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환자가 우선적으로 탈 수 있게 배려해야 하며,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의료진이나 어르신 등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다. 엘리베이터가 만원일 경우에는 심방자들이 우선순위를 살펴 양보하는 것이 다른 환자나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좋다. 특히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옆을 지날 때에는 심각하게 대기하고 있는 보호자들이 많으므로 그들의 신경을 거스를 우려가 있는 언행을 삼가고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좋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 환자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으므로 반드시 노크를 하거나 인기척을 내어 환자가 당황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병실 문 앞에 소독 발판이 있는 것은 감염 우려가 있어 방문객을 제한하고 있다는 표시이니 반드시 간호사의 허락을 받고 소독한 후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만나야 한다. 또 병실 앞에 그래프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병실 안의 환자가 변화를 심하게 겪고 있거나 검사를 통해 주의 깊게 관찰하는 중이거나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는 표시이므로 반드시 병원 측의 허락과 지시를 받은 뒤에 들어가야 한다.

병실 안에 들어갔다면 환자의 허락 없이 침대에 함부로 앉아서는 안 된다. 또한 주사를 맞고 있는 손에 악수를 하거나 힘을 주어 기도를 하는 것도 금물이다. 특히 심방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의사나 간호사의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주사의 흐름을 조절하거나 침대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제한하는 환자를 심방하는 경우, 환자 곁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좋지 않다. 또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1인실이 아닌 다인실에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병실 내의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불신자들과의 접촉점, 병원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재정적, 심리적 고통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희귀병의 경우는 약을 쓸 수도 없거나 치료 가능성이 낮은 약을 먹는데 그마저도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환자들에게 부담을 지운다. 교회는 이러한 환자들의 현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아주대병원의 원목실장으로 섬기며 일주일 내내 예배드리는 사역을 해왔다. 원목실장이라고 해도 직원 한 명 없고 별도의 사례비를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18년간 목회를 했다. 진짜 성공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큰 대형 종합병원은 목회자들에게 황금어장이다. 그러나 교회들은 해외선교나 군대선교를 위해 후원은 많이 하지만 병원선교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이야말로 세상의 끝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곳이다. 오늘, 아니면 내일 당장 영안실로 갈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세상에서 아무리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마음이 약해진다. 이럴 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가 양적인 교회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본다. 특히 이단들의 활발한 활동이 문제다. 통일교, 전도관, 이슬람교까지 이들은 병원을 다니면서 환자들의 약해진 마음을 건드린다. “기도해보니까 병원에 있는 것보다 기도원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고 조금씩 돈을 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접근해 환자들에게 환심을 산 다음에 가족들의 등골을 빼먹기까지 한다. 병원에 있다 보면 이런 이단들의 접근에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뻔히 보이는 것 같은 이단들의 활동에 환자들이 넘어가는 이유가 다름 아닌 관심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눈물 흘리는 그들의 노력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렇게 이단들이 환자들의 연약해진 마음을 열고 공략하기 전에 우리 교회가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줘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 수십만 명을 제자훈련 시키고 시스템화 시키는데 집중하지 말고, 주님이 제자들을 키우셨던 것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의 마음을 품도록 하자.

병원을 목회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1만 명 목회 현장과 맞먹는다.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에 큰 기회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병원을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나가는 말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란 스스로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을 가리키는 것이다.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삶이 아닐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고아와 과부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적용하자면 가장 불쌍한 사람,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무 조건 없이 돌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점점 화려해지기만 한다. 한국 교회가 할 역할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전략과 비법을 보다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교회만 키우려 하지 말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할 때이다. 교회가 다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과 기댈 언덕이 되고 방패막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병원과 환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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