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8년 6월 15일 (아버지 주일) 장소: 튤립 선교회 본문: 여호수아 24: 14-18 제묙: 나와 나의 집은 설교: 김명도 목사 길이: 40분 녹음: C-30 cassette
서론 오늘은 미국에서 아버지 날로 지키는 날입니다. 한구에서는 어버이 날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날과 어머님의 날을 겸해서 한 날에 지키지만 미국에서는 어머니의 날이 5월 둘째 주일에 있고 아버지의 날이 6월 셋째 주일에 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호수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인 것과 같이 여호수아는 한 민족을 이끌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라는 면에서 둘다 남의 지도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려면 적어도 여호수아 같은 시명과 인격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특히 오늘 가정이 파탄되어가는 패역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14-18 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생각 하고 저 하여 “나와 나의 집은”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저 합니다. 오늘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I 여호수아 의 인격 II 여호수아 의 사명 III. 여호수아를 본받아
I 여호수아 의 인격 여호수아란 말은 예수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입니다. 구약에 보면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던 야곱이 변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창 32:28). 여호수아도 본래 이름은 “호세” 아였으나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 를 “여호수아‘ 라고 개명 했습니다 (민 13:16). 그는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그렇게 부르지만 원래 히브리어로는 “예수아” 이니 헬라어식으로 발음하면 “예수스” 가 되면 “구원하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나 예수 나 그 의미가 같습니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이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함과 같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예수님의 구원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호수아의 인격이 어떠했는가를 봅시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인격이 온전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인격을 자세히 더듬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여러 고을을 정복하고 땅을 모든 지파에게 분배하고 이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모두 세겜에 모으고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땅에 들어와 풍요한 음식과 풍요로운 생활을 하니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 두려워서 다짐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오늘 봉독한 24:14 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우선 24장 1절서부터 13절까지 설교를 합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상기시킵니다. 어떻게 애급에서 홍해가 육지가 되어 바다를 건너 애급에서 탈출했으며 어떻게 가나안 땅에서 적을 몰아내고 승리하도록 하였는가를 말해 줍니다. 여호수아의 말은 구구 절절이 거기 세겜에 모여서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결단의 시간을 갖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설교입니까? 과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을 정복한 지도자다운 말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말에 감히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되는 이는 이런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 세가지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가정, 국가, 교회 등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가정에는 가장을 두시어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가정을 다스리도록 가장에게 권세를 주시며 가족을 위임했습니다. 가정은 가장이 다스리며 가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로 가족을 다스려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과 국가 교회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위에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위정자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백성들을 억압하며 독재하면 이는 그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한 권세를 포기한 것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고 백성은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운 종으로 복종할 필요도 공경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교회의 성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성직자” 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위임한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어가지 않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자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며 성도는 그런 사람을 성직자로 인정할 수도 없고 존경하거나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들 중에도 “거짓”을 가르치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예배의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십시오. 성경대로 예배하는 교회는 극히 드믑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어느 집에나 가장이 있습니다. 그 가장은 제 멋대로 가족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가장은 한 가정을 책임지도록 하나님에게서 권세를 위임 받는 사람입니다. 고로 그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일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 같은 훌륭한 신앙 인격자가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훌륭한 가장은 돈 많이 벌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가족에게 낭비의 벽을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가난해도 하나님의 법도를 가족에게 가르치면서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둘러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1620년대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바른 목사 만나는 것” 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습니다. 이리같은 목사, 무식한 목사를 만나면 영혼에 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의 인격을 보십시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격을 가진 자가 바른 가장입니다. 현실 세상에서 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합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아버지가 하루에 세 끼니를 걱정하는 분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가난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입니다.
성경은 빌립보 4: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절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고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가르치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궁핍으로 인하여 천대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시며 천상천하의 대주재가 되시며 공중의 새을 먹이시며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사다이 하나님이 십니다. 엘 사다이 야웨 하는 말은 전능하신 자, 궁핍이 없으신 자, 초능력을 가진 자 등 뜻이 많은 말인데 야웨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물결이 흉흉해도 두려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은 어려울 때 신앙을 저버립니다. 우리가 즐거울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괴롭고 억울한 일 당할 때, 어려운 일이 바다처럼 엄습할 때도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시편 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라고 시편기자는 신앙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Daniel Defoe 라는 영국의 목사이며 소설가가 Robinson Crusoe 라는 작품 속에서 배가 파선되었을 때 인용한 말씀입니다. 아무리 가정이 가난해도 가장되는 아버지의 신앙인격만 훌륭하면 문제는 해결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야웨 하나님이 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고아처럼 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난당할 때에 피할 길을 반드시 열어 주시는 분입니다 (고전 10:13). 여호수아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겠습니까? 20살 미만의 장정 60만을 인솔하고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얼마나 낙심되는 일들이 많았을까요? 특히 여리고성을 정복하고도 하잘 것 없는 <아이성> 을 점령하지 못할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부정을 저절러 이스라엘 진영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아간>을 <아골 골짜기> 에서 돌로 처야 하는 아픔을 참는 일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러나 여호수아의 인격을 보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그의 신앙인격 참으로 홈모 할 만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여호와만 섬기고 따라가는 그 신앙을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언약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그의 신앙인격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과연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자식들을 위해서 무슨 기념비를 세웠습니까? 아버지들이여, 가장으로서 여호수아 같은 신앙의 인격자가 됩시다.
II 여호수아 의 사명 여호수아의 사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도하는 것이 었습니다. 성경에서 애급은 아직 구원 얻지 못한 상태, 죄악의 상태를 말하고 광야는 현세를 말하고 가나안 땅은 구원 얻은 상태, 천국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얻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가나안의 세속적인 문화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간으로서 도저히 당하기 어려운 수 없는 강성한 백성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에 앞서, 정탐꾼들을 보냈을 때,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온 정탐꾼들은 모두 떨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 이하에 보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겠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니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민 14: 6-9) 라고 다른 정탐꾼들과는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왜 이들의 보고는 낙관적이고 다른 정탐꾼들의 보고는 비관적인가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약속이 그래도 이루어 질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 같은 믿음 말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가장인 아버지는 이런 여호수아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사명은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가나안에서 육척장신의 강성한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없는 눈으로 보았을 때 가졌던 생각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주를 온전히 따랐으므로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저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신 땅이니 신앙으로 그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아버지의 역할이 그러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빵을 구하여 하루 세끼 식구들의 식생활을 책임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적인 책임을 진 사람입니다. 가족들의 영혼을 책임질 의무와 그런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자녀들은 세상이 두려워서 마치 가나안을 두려워했던 정탐꾼들처럼 가나안을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만일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어떻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 되는 이들은 여호수아가 가젔던 사명감으로 가족을 구원으로 인도할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의 기쁘신 뜻대로 택해 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tu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이룩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구원을 이룩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 고 로마인서 10:17절에 말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는 본인이 훌륭한 신앙인격을 가지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거느리고 있는 가족에게 신앙을 심어주고 가나안 땅 즉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불신자들은 몰라서 못하는 것뿐입니다. <십계명> 은 비단 이스라엘백성이나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입니다.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만 아니라 영의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에게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두령들을 모아놓고 언약을 다짐한 이유가 무어일까요? 왜 그렇게 했을까요? 나중에 백성의 맹서를 받고나서 언약의 비석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III. 여호수아를 본받아 우리 모두가 여호수아를 본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를 본받을 수 있는가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큰 일에는 좋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큰 배를 운항하는 선장은 남달라야 합니다. 항해술이 뛰어나야 하고 위험할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가정은 제일 중요합니다. 아내와 자식 모두 귀합니다. 아마 세상 적으로 말하면 제일 귀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암초에 걸리지 않고 잘 항해 하려면 선장이 똑똑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우리 주변에서 암초에 부딛처 침몰하고 있습니까?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이혼률 제1위이고 한국은 제3위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가장이 바로 서지 못한 탓입니다. 여호수아 같은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정이 파탄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항합니다. 가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배가 바람 따라 표류하니 세상 풍파에 배가 파선됩니다. 그래서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이 모두 익사합니다. 가장을 잘 못 만나면 온 식구가 고생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기도한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고 자녀들이 말한다면, “우리 아버지가 성경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 말한다면 그 아버지는 무엇인가 잘 못된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성경공부는 위선입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청종하고 그대로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을 따라 청종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며 그에게 맡겨주신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며 보호하며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버지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여호수아 같은 그런 신앙인격에 그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의 뜻대로 준행하는 그런 인물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로서 과연 가족에게 어떤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남에게 그가 믿는 믿음의 도를 자신 있게 부끄럼 없이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그 신성한 사명을 능히 감당했습니다.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처럼 주를 온전히 따르는 가장들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가족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행복한 가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도달하자 하나님의 기적으로 육지가 된 요단강에서 주어온 돌 12개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멋 훗날 자손들이 이것이 무슨 비석인가 하고 물으면 El Shaddai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 5:22-2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능하신 팔로 요단강을 육지가 되어 건너게 하셨다는 교훈을 주어 여호와만 섬길 신앙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손들에게 무슨 기념비를 세워 주렵니까?
결론 오늘 “아버지 날” 을 맞이하여 여호수아 같은 가장들이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그는 신앙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께 받은 사명감, 즉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일을 충실히 이행한 책임감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말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치 않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간 인물로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으로 한 가정을 책임진 모든 아버지들에게 본을 보여 준 분입니다. 여호수아는 그가 거느리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라고 신앙고백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촉구한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변치 않도록 기념비를 세운 분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여호수아의 이 신앙고백이 가정을 거느리신 가장으로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어 온 가정이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그런 아버지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나와 나의 집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