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8년 7월 6일 장소: 튤립 교육 선교회 본문: 요한일서 4:1-6 제목: 영을 분별하자 설교: 김명도 목사 길이: 45분 녹음: C-60
서론: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로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외에도 요한일서, 이서, 삼서 그리고 성경의 맨끝 책인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순교했습니다. 심지어 도마 같은 사람도 요 20: 28절에 나의 주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신앙고백을 한 다음 인도로 건너가서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Madras에서 순교하여 지금 그곳에 가면 큰 <도마 기념 교회>가 서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와의 대화 과정에서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라고 세 번 묻고 나서 앞으로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을 예언했는데 이 말을 듣고 있던 베드로는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옆에 있던 요한을 가르켜 물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21:21 절 이하에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1-22) 라고 말씀하신대로 요한은 과연 순교를 맛보지 않고 끝까지 오래 살면서 성경기록을 완성했고 자연사했습니다.
오늘 그 요한이 본문 요한일서 4: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영이 하나님에게 속했나 시험하라” 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서 “영을 분별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도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서 말씀 하겠습니다.
I 영분별의 필요성 II 그릇된 교훈들 III 영을 분별하는 표준
I 영분별의 필요성 오늘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으리만큼 이상한 비기독교적 비성경적 가르침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신학교의 수는 해마다 중가하고 따라서 신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신학교는 개혁주의 신학과 거리가 멀고, 명목상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친다고 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종교다원주의 를 가르치는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한국의 개신교 중에서 가장 크다고 숫자를 자랑하는 모 교회의 목사는 “불교와 기독교와 다를 것이 없고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어느 종교를 믿어도 모두 구원을 얻는다” 고 가르치는 사이비 목사도 있는 실정이고,
과거에 세계를 주름 잡으면서 전도 집회를 하던 Billy Graham (빌리 그래함) 목사도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말을 Schuller (로버트 슐러) 의 <Hour of Power> 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방송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세상의 존경을 받고 가장 대표적 개신교 지도자라고 자처하며 다른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기독교의 실정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 보아도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부터 이단들이 많이 출몰한 것은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서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신흥종교가 일어나고 새로운 교리가 나타나는 때는 교회사 2,000년을 통해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는 신학교가 많고 바로 배우지 못한 신학생들이 나와서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스스로 고안해 놓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어 백성들을 우롱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런 사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되지 않으면 생의 의미가 없다고 믿는 분, 성경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전할 사람만 신학교에 가서 책을 많이 읽으며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좋은 하나님의 종들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신학교는 누구나 와서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신분을 보장 받거나 다른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서, 아니면 남에게 존경을 받기위해서 신학교에 들어와서는 공부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적당히 졸업장을 받고 졸업하자마자 안수를 받고 자기 나름대로 목회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학이란 어려운 학문입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하고 정독함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을 독서에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신학생들은 책 읽기를 싫어합니다. 모든 것을 “속성으로” 마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할 때도 비성경적인 죄를 두려움 없이 자행합니다. 옛날 제가 어느 신학교 학감을 하고 있을 때 학생 하나가 병자를 치유한다면서 안찰 기도하다가 환자를 때려 죽였습니다. 살인사건이 생기자 신학교는 낭패를 당했습니다. 전화 벨이 매일같이 울려왔습니다.
지방 방송에서 연일 <신학생 살인사건> 을 보도하기에 바빴던 그 무렵 관할 경찰이 찾아와서 저에게 학생의 석방을 원하는 탄원서를 쓰라고 권고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신학교에 와서는 안 될 사람이며 다시 우리 학교에 돌아올 필요도 없고 목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이유를 밝히고 탄원서 쓰기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생이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제대로 배우기를 원치 않고 자기 멋대로 사역하기를 원합니다. 한번은 학교 강의실에서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의 말씀을 설명하니 학생 하나가 나의 가르침에 반대하며 “그 구절의 뜻은 목사 중에서 몹쓸 도덕적 범법행위를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주님의 뜻대로 목회하지 아니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고 반박했습니다. 지금 그 학생은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할까 눈을 감아도 뻔한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잘못된 교리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자자들이 출현한다는 것은 첫째 신학교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요한이 이 글을 쓸 때의 상황을 설명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당시 풍미하고 있던 “영지주의” 때문입니다.
당시 헬라의 이교도적 철학 사상인 영지주의는 널리 만연되어 있어서 교회에도 침투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오늘 교회에 세대주의나 신비주의. 기복신앙 같은 교리가 침투해 들어오는 것과 꼭 같은 사정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이단에 대해서 철저했습니다,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었습니다. 특히 Justin Martyr 같은 속사도나 Irenaeus 같은 교부는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변증가들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단 사상을 철저히 막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이 대부분의 목사들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목사나 전도자는 교회에 이단 사상이 들어와도 교인들의 숫자만 불어나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이단 신학에 대해서는 무관합니다.
얼마 전 <Korean Life> 라는 시사 잡지에는 미국 남가주에 있는 어느 대형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단 침투 이야기> 를 증거를 제시하면서 비중있게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 주님의 양 무리를 치는 목자들은 양이 독초를 먹어도 눈을 감아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사들에게 주님의양을 목양하도록 위임 헀는데 그 양을 돌보지 않고 월급봉투가 커지는 것만 바란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오늘 Justin Martyr 나 Irenaeus 처럼 목숨을 내 걸고 진리를 사수하는 목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그런 사명감으로 사역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얼마나 다른 목회자들이 핍박하고 비난합니까? 세상이 뒤집혀 버렸습니다. 이래서 미혹의 영은 늘어만 갑니다.
성경은 갈라디아 1:8-9에 두 번씩이나 힘주어 경고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성경에서 경고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지나가는 농담으로 한번 해 본 소리가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무도 만휼히 여길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 신앙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떨며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빌립보 2:12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룩하라” 고 가르쳐 줍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만,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울어도, 힘써도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성화의 과정, 즉 구원 받은 성도가 신앙생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절대 거룩하심을 깨닫고 그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그분에게 순종하며 날마다 우리 안에 주님이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힘쓰며 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하지 아니한 복음, 다시 말하면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저주를 받는 다는 “anathema"라는 원어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게 받쳐졌으므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으니 만일 그의 결점이 입증되면 죽는 다는 말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육신이 죽는 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 형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을 분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무엇을 가르쳐도 비판 없이 받아 드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양의 가죽을 쓰고 나오는 이리” 라서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했고, 미혹을 받지 않도록 여러 번 제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 보아도 거짓 선지자들이 대거 일어났음을 가르쳐 주고 있고 실제 우리들 주위에서 일상 이런 사실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이단의 무리들이 많이 자유자재로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무식한 교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교회에 성행합니까?
II 그릇된 교훈들 영을 분별하라고 했는데 오늘 전파되는 복음이 모두 건전한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신학을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성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전체의 흐름을 알거나 신학을 깊이 연구한 분들은 강대상에서 힘주어 말하는 목사의 설교가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그래서 뵈레아 사람들은 바울이 설교하면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하여 금방 성경을 찾으면서 설교를 들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고 성경은 사도행전 17:11절 이하에 가르쳐 줍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은 이적이나 기적이나 천당에 갔다 왔다는 황당무궤한 거짓말이 아니라 성경을 바로 깨닫고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는 “헬라의 귀부인 중에 믿는 분들이 많았다“고 가르쳐 주는데 헬라의 귀부인들은 부유하고 교만하고 신앙심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경연구를 통해서 회개하고 주님에게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그릇된 신앙이란 비성경적인 교리를 말하는데 요한 당시에 어떤 그릇된 교리가 있었습니까? 본문에 보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자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는 예수님이 성육신한 교리 즉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교리“ 를 믿지 않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하기를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면 영적 존재 인데 거룩하신 영적 존재이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천한 물질인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실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의 교리는 허구이고 믿을 수 없다“ 라고 주장 합니다.
이들이 믿는 "영지주의”에서는 “영”과 “물질‘을 엄격히 구분해 놓고 ”영“ 은 선하며 ”물질“은 악하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Demiurge (디미어즈) 라는 악한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은 악하고 따라서 구약도 악하며 유대교적인 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가장 비유대교적인 성경책만 신빙성이 있다하여 비유대적인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기록이 적힌 1-3장은 제외하고 4-24 장만 인정하고 이방인의 선교사였던 바울의 편지 13개 중에서 목회서신 3개를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편지만을 성경으로 인정했으니 영지주의 (Gnosticism) 의 대표자인 기원 150년경의 Marcion 에 의하면 누가복음의 일부 즉 4-24장과 목회서신을 제외한 바울의 다른 10개의 편지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여 이를 Marcionite Canon (마르시온 정경) 이라고 신학에서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 의 가르침으로는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시고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니 영이 물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였고 그래서 요한은 요일 4:2절에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자유주의 신학자 중에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며 그것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영” 이 하나님에게 속했나 시험하라는 말입니다.
그릇된 교리가 어찌 이런 동정녀탄생 교리에 국한하겠습니까?
근자에는 기독교의 목사들이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른 이방 종교의 요소들을 기독교에 도입하려는 거짓 선지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고 미국에서는 더 심합니다.
소위 “관상기도” 혹은 “명상영성훈련”이라고 하는 것인데 영어로는 Contemplative Spirituality 혹은 Contemplative Formation 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기도를 힌두교나 불교에서의 기도 형태를 모방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약 시편에 나오는 말씀 “잠잠할지어댜” 라는 말을 기도할 때 “머리를 비우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침묵을 지키며 앉아서 하나님과 교통하라” 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시편 1편의 말씀, ”복있는 자는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머리를 비우며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반대로 머리를 말씀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배우고 순종할 뜻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위배되는 잘못된 기도가 지금 세계를 누비고 있어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침묵만 지키며 관망하고 있을 뿐 무슨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무리들이 독약을 먹고 죽어갑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어떤 책망을 받으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을 방문하시면 “신학강의” 란에 왜 이런 운동인지 자세히 설명해 두었으니 자유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운동으로 요즘 교회를 파괴하는 운동은 소위 “Emergent Church Movement ” (이머징 교회 운동) 라는 교회 혁신 운동입니다.
이것도 어느 신학교 출신인지는 몰라도 자칭 기독교 목사라는 Brian McLaren (브라이언 맥클라렌) 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비기독교적 신앙형태인데 상당히 널리 보급되어 가고 있고 미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기독교의 전통성을 부인하고 기독교 전반을 “재해석” 하자는 것인데 이들에 의하면 교회에서 교리를 말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니 금해야 하고, 예배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요즘 New Age 운동에서 말하는 <paradigm shift> 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요즘 정치판에서도 상당히 많이 논쟁 꺼리가 되어 있는 말입니다. “변화되어야 한다” 고 그들은 외칩니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Emergent Church Movement에서 말하는 “변화”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을 지워버리고 세계의 종교를 모두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재해석>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사들은 모두 정상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양의 가죽을 쓴 이리“ 들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극성을 부리며 교회를 공격합니다.
참으로 지금은 <영 분별> (Spiritual Discernment)이 어느 때 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영이 하나님에게 속했는가 분명히 시험해 보라“ 고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단 사상이 난무합니까? 성도여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내가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짓 복음은 구원이 없습니다. 이런 교리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사이비 목사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엄한 문책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마태복음 7장 22 절 이하에서 경고합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를 도모지 안 적이 없으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우리는 이런 말을 듲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영들을 시험해야 합니다.
III 영을 분별하는 표준 그렇다면 악령과 성령을 무엇으로 분별하는가요? <진리의 영> 과 <미혹의 영> 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이 말하듯,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기징히고 의의 일꾼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탄이나 사탄의 사주를 받는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로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거나, 빨간 외투를 입고 있다거나, 꼬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장 유명한 부흥강사나 가장 이름있는 신학교 교수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말은 청산유수이고, 천당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다고 하고, 특별히 신앙이 좋아서 천사가 자주 찾아와서 미래에 되어 질 일들을 예고해주고 간다고도 합니다. 이들은 용모도 단정하고 옷도 최고급을 입고 다닙니다.
어떤 사이비 교단의 교주는 비디오 강의를 하면서 “나는 가장 유명한 목사이고 하는 일이 하도 중요하니까 먹는 것도 최고급으로 먹어야 하고, 자동차도 항상 가장 좋은 것을 타야 합니다" 라고 뻔뻔스런 말을 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저런 사람도 목사인가? 라고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앉아 있던 청중은 모두 ”아멘“ 하며 열호했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가 타락하고 거짓 선지자가 활보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교인들이 목사보다 똑똑하지 못하면 속아 넘어가기 일수 입니다. 똑똑해지는 법은 <성경에 통달하고 교리에 밝아야> 합니다.
교리에 밝을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나 “베르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 등을 통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런 경건 운동을 기피하면 언젠가는 성난 사자에게 잡아먹히고 말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어떻게 구별하는가요? 본문을 보면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세상에 속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가 거기에 따라서 미혹의 영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영이면, 즉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전하는 사람이면 그는 진리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전하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하는 사람의 진지함으로나 열성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갈멜 산에서 아세라 선지 바알의 선지 도합 850명은 홀로 서 있는 엘리야보다 수도 많았고 열심히 대단했지만 그들의 영은 진리의 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엘레아의 제단에 불이 내려와서 엘리야가 진리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니 진리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리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리도 교단에 따라서, 목사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역사적 신앙고백서> 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나 “베르기 신앙고백서” 는 세월이 흐른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제정되던 때나 지금이나 같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신조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력있는 교인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처럼 교회마다 교리 공부를 등한히 여기는 상황에서는 혼자서 기도하며 성경을 펴놓고 신조를 연구하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 선교회에서도 금년 9월부터 신학연구원을 개원하여 교리 공부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마귀와 대적할 전신 갑주를 입힐 준비를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악한 세대에 살아남을 길은 자신이 목사보다 똑똑해 지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가 미혹의 영인가 아니면 진리의 영인가 하는 시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니 진리의 영인 것을 알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복음, 세상적인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 강대상마다 세상적인 복음. 이를테면 번영신학, 적극적 사고방식, 잠재능력개발, 기복신학,
후기근대주의 신학, 뉴에이지 신학, 노스틱주의 신학 등이 여과 없이 강대상에서 뻐젓이 흘러나오는 것은 이들이 진리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미혹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영지주의 의 부활>로 말미암아 직통계시를 본다든지 금욕주의를 주장한다든지 의식주의를 주장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오늘 교회의 다반사 가 아닙니까?
모두 영지주의 의 형상들입니다. 영지주의 의 특징 들이 교회에 고스란히 자연스럽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영을 변별하는 방법은 영이 하나님에게 속했는가 아니면 세상에 속해 있는가를 보면 알 수 가 있는데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말은 주님을 사랑하는 참 목자가 하나님의 말씀만 순수하게전하는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목자, 교인들의 귓맛을 즐겁게 하려는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수선을 떨지만 결국 전파되는 것은 거짓 복음이니 이런 사람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적그리스도 antichristos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지 여부를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되 개혁주의 신학에 정통한 분에게서 배우던지 아니면 혼자서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요한일서 4:1-6 까지 말씀을 통해서 <영을 분별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영을 분별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유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왜곡하거나 성경적인 진리를 그대로 믿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고 저주를 받기 때문이고 그런 거짓 선지자들이 이미 우리들 주위에 많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단들이 창궐하고 있는데 특히 기독교의 특성을 말살하고 세계의 종교들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악한 무리들을 대적하려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실력배양이 필요한데 그것은 성경지식에 익숙하고 개혁주의 신앙체계에 익숙해 져서 설교하는 목사보다 신학 지식이 월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목사의 말을 모두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이상한 교리를 전파하는가 를 눈여거 보십시오. 저들을 모두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어려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로 믿으려고 하면 핍박이 오고 사이비 신자들로부터 조롱을 받습니다. 그러나 Latin 어에 이런 속담이 있는데 여러분의 책상머리에 써서 붙여 놓고 진리 운동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 늘 명상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즉 "Magna est veritas et praevalebit" (진리는 위대함으로 반드시 승리한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헤와 은혜를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을 분별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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