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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2:28-31. 사랑받음 그리고 사랑함

사랑

by 김경호 진실 2016. 10.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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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2:28-31. 사랑받음 그리고 사랑함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 율법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범위이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조차도 다 지킬 수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 혹은 규례는 최소한도의 범위이다. 유대인들은 이 최소한도의 범위를 놓고 수천 년을 논쟁했고, 자기들의 삶과 상황에 맞추어 해석함으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태복음23:23)라는 평가를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다. 유대인들이 놓친 것은 율법의 바탕을 깔고 있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 즉 사랑이라는 말이다. ,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원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과정 역시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에베소서2:8).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사건의 바탕이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택하셨고, 부르셨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 기적 중에서도 가장 큰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아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의 현재 삶에 적용되는 것이 바로 기적이고, 이 기적을 깨달을 때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율법의 한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수 있다.

 

2. 율법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심을 아는 일이다. 우리는 욥기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말씀을 묵상했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 때의 일을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베헤못라는 엄청난 동물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리워야단을 말씀하신다.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창조사역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언제 산양이 새끼를 낳는지 알지 못하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공중에 별을 달아놓으셨는지 알수 없다. 바다에 놓여있는 물길도 알 수 없는 무지한 존재가 인간이고, 베헤못이나 리워야단 앞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에 쌓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고,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부른다. 자신의 처지를 재판해 달라고 하나님을 재판정에 불러 세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인 욥의 말을 듣고 나를 부르는 자 너는 누구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온 세상을 만드시고 온 땅의 기이한 일들을 이룩하신 그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듣고 나에게 나타나 주신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19:5-6)라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특별히 하나님은 나를 보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물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그 보물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온 세상을 만드신 그 하나님께서 내가 부를 때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스바냐3:17)라고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3. 이 사랑을 전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율법의 문제에 매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에 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다른 신들을 세우면 안된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출발이다. 이것이 세상과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기준점이다.‘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애굽기20:3)는 말씀을 비롯해 1-4계명을 긍정적으로 요약한 것이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명기6:4)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5-10계명의 내용을 역시 긍정적으로 요약한 것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6:5)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복음12:29-31)라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충성하는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 충성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애통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애통하는 자를 사랑하심으로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복으로 받는다. ‘애통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마음의 아픔이다. 하나님은 그런 애통함을 받아주신다. 그 애통함을 받아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탄원에 혹은 하나님을 부르며 말좀하자는 우리의 호소에 응답하신다. 마치 욥에게 나를 부르는 자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시면서 욥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과 나의 구별은 여기에 있다. 나는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 세울 수 있는 하나님과의 친근함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언제나 율법에 매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고,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율법을 초월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문자적인 율법지킴이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을 순종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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