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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행26장)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1. 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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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계속해서 로마 총독과 유대 임금 앞에서 자신이 왜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입을 열어 아그립바 왕에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총독 베스드와 모든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바울이 무엇을 지금 말하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면 먼저 바울은 유대인들과 자신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차이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 성경에서 약속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은 여전히 메시야는 오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는 오지 않았는데 바울은 메시야가 오셨다고 하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로마의 식민지아래에서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종교의 핵심인 율법을 지키며 살면서 자신들만 거룩한 백성들이며 이방인들인 개들과 함께 섞여 살지 않아야 하는데 여전히 개처럼 여기는 이방인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메시야가 오셨다면 이런 비극적인 삶은 더 이상 계속 되지 않고 다윗의 영광이 회복되는 그런 찬란한 이스라엘이 이루어진다고 여기고 있는데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니 그들이 바울의 말을 거짓으로 여긴 것입니다. 거짓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그 거짓을 따르라고 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마땅히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메시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이스라엘 조상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다시 말해 구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6절에서 자신이 심문을 받는 것은 죄를 지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것 때문에 고소를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그 약속을 소망하면서 모든 이스라엘 조상들 때부터 지금까지 메시야를 기다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이나 고소를 당한 바울 모두는 이 소망, 메시야를 기다리는 소망 때문에 이렇게 서로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이 소망의 차이 때문에 유대인들과 바울이 서로 원수가 되어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이 차이를 설명하면서 메시야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은 틀렸고 바울 자신이 말하고 있는 주장이 맞다고 하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에게 말해주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메시야가 왔다고 하는 것을 증거로 제시합니까? 그것은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바울은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율법에 엄한 바리새파에서 자라며 학문적인 지위도 상당하게 뛰어났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자신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는 그런 환경에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으로는 도저히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해 권한을 받고 그렇게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행동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으로 여겼으며 당연히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해 외국에까지 가서 그들을 잡아 예수를 모독하게 하는 말을 하게 하는 일을 하면서 예수 믿는 신앙에서 떠날 것을 강요한 사람이 바로 바울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은 예수를 메시아로 단 한 번도 생각하거나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야가 예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따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람들 앞에서 계속 변호할 때 이 다메섹 사건을 말하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사건은 단지 인간들이 생각하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부른 사건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인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은 오직 신적인 존재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자신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불렀으며 이 땅에 오신 메시야로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구약성경에서 메시야가 어떻게 오셔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역을 하게 되는지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엠마오로 가시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구약성경을 다시 말씀하여 주신 것으로 인해 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자신들 옆에 계신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렇게 바울이 구약성경의 말씀대로 메시야가 이 세상에 이미 오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8절에서 아그립바 왕에게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것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자신을 부르신 그 음성뿐만 아니라 모세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예수님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치 신의 부르심에 거부하면 인간은 항상 불행과 고난 밖에 없다는 당시 그 속담을 바울에게 말씀하시면서 바울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 의미였습니다.

 

 

바울이 이런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빌라도가 죽인 예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그립바 왕에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각성시켜 주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면 바울 자신이 그것을 전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너희들이 죽인 사람을, 너희들의 눈으로 그것을 직접 보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이 세계각처에서 이상한 일들 가운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예수의 죽음은 별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의학적으로 판단하여 일시적으로 심장이 멈춰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다릅니다. 병사로 인한 심정지는 간혹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은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까지 찔러 다시 한 번 확인된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죽음에 있는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일은 인류 역사상 없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이것을 상기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 분이 메시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자 총독 베스도가 크게 분노하여 바울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바울 네가 미쳤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이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하였다고 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총독은 로마인입니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은 없었습니다. 살아난다고 해도 다른 세계에서 살거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은 있다고 해도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하지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난당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위해 죽은 신은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신을 위해 죽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스도는 바울이 너무 학문을 많이 배워서 미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총독은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도 바울이 베스도의 말처럼 미쳤다고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미쳤다고 하는 것은 정신이 이상하여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그 이야기를, 십자가에서 죽어서 부활하였다고 하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 베스도를 향해 바울은, 자신은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고 있다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되고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 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이 사도바울을 이렇게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하여 살아계시며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 조상들이 기다렸던 메시야였다고 하는 것을 바울이 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신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말했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라는 그 말속에 사도 바울만큼 구약성경에 뛰어난 인물이 과연 있었겠습니까? 그 위대한 어거스틴과 칼빈과 그 많았던 교부들과 종교개혁가들이 바울의 학문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문에 있어서만큼은 바울을 능가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바울이 자신이 가진 학문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참되고 정신을 차린 사람이 전하고 있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여전히 그 분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리고 더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고 하는 것을 전해야 하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학문을 하면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미친 사람처럼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다. 믿어도 인간 예수로만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베스도에게 하는 말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헬라어 원어로 바울은 베스도에게 나는 지금 진리의 말과 신중한 말로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신학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신중한 것도 아닙니다. 거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학문을 배우면 배울수록 분명하게 진리가 더 선명한 말과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을 섬기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에는 진리의 밝은 빛이 드러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기업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성도가 복음을 듣고 배우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온전한 정신으로 사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을 전해도 진리가 없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가르치는 복음이란 사도 바울이 베스도와 아그립바왕 앞에서 전하고 있는 그런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을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하늘에서 부르신 그 이후부터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합니다. 또한 자신의 삶속에서 율법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을 단지 문자적인 의미로만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받기 때문에 교회에 단 한번이라도 가서 헌금하고 등록하면 마치 그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내가 교회를 가서 무엇을 하면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고 하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시려고 했던 그 모든 사역들을 다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이 나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유익(예배, 기도, 교제, 용서, 구제 등)을 계속 주시려고 하시는 그 말씀에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믿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우리의 순종도 있습니다. 믿음따로 순종따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와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성도들이라면 오늘 사도 바울이 온전한 정신으로 하는 그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 가운데 있습니다. 학문을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복음을 잘 전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미 기독교의 신학은 세속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훌륭한 학문이란 성경과 관련이 없는 학문이 최고의 학문입니다. 성경과 관련이 있어도 사도들이 증거하고 가르쳤던 그런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서 만들어낸 그런 학문이 교회에서 전해지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것이 복음이라고 여깁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지 않아도 인간은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절대 변화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죄인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복음을 듣고,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이 진리이므로 아그립바 왕에게 선지자를 믿으면 자신의 말이 다시 한 번 거짓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그립바는 바울이 자신을 적은 말로, 또는 짧은 연설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여기면서 바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습니다. 아그립바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구약 선지자들의 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구약성경을 제대로 알면 예수를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 그리스도만을 더 사랑하고 만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도 바울이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메사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으며 그래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모두가 자신처럼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마지막까지 증거한 것입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는 이렇게 예수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바울만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그리고 복음 안에서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베스도가 미쳤다고 하는 그 말에 전혀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바울의 용기 있는 그 모습처럼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래야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134&msection=2&ssection=5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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