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2017년 1월 1일입니다. 그리고 첫 주일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목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새해 첫 날에 어떤 말씀을 듣기를 원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난날 저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새해 첫 주일에 설교한 말씀의 내용을 기억해 보니깐 다름 아닌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 충성하라고 하는 말씀의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그런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보다는 늘 사람들은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통해 무엇인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신 그 말씀처럼 우리는 늘 새롭지만 그렇게 새롭지만은 않은 한해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대감을 가집니다. 당연히 저도 그런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혹시 제가 2016년 첫 주일에 여러분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있으신지요? 눅9장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을 부인하는 신앙을 가질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도 당연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요구하는 누가의 의도를 통해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든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어지 간 한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이야기하고 충성하고 헌신하면 은혜를 받는다고 해도 그렇게 잘못하는 목회가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저는 여러분들에게 전하지 않는 것입니까? 먼저 제 자신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있었는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숫자 때문에 제가 과연 목회를 바르게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습니다. 특히 루터의 평전을 지난 한 주간 읽어 보면서 종교개혁자 루터가 살았던 당시 로마교회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그 내용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루터 당시 교회가 수많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 때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고 아예 성전에서 제사가 드려지지 않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성경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루터시대를 보면 교황의 권세가 얼마나 높았는지 황제를 임명하는 권한까지 교황이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자군 전쟁도 결국 교황의 권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말았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모든 성직을 임명하는 것에 교황이 관여하여 교황의 도움이 없이는 좋은 교구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았던 성당들의 높은 종탑과 화려한 예배당의 모습들은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아닌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가장 타락한 부분은 바로 성경의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거짓 가르침이 마치 바른 것인 양 가르쳐 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고 하는 것을 사도들과 교부들이 가르쳤는데 이제 인간의 구원은 공덕을 어느 정도 쌓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행위구원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중세교회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거의 다 믿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인간의 공덕이 들어가는 그런 예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성경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폄하시키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가 아니라 마리아도 중보자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은혜 공덕이 있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서도 은혜를 받는다고 믿은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이러한 인간의 공덕을 가지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믿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축복을 받고 형통한 길로 가는 것은 인간의 공덕이 쌓여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세상에서 잘되고 만사형통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 뜻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목적이 우리의 행복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복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기복주의란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를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복주의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습니다. 인간이 목적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표이고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뜻하는 것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그분의 도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교회이며 바른 신앙입니다.
루터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김용주 목사는 자신이 글을 쓰면서 로마교회의 부패가운데 면죄부가 가장 큰 부패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건축이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당을 건축하면서 교황은 일반 성도들의 양심을 유린하였다고 합니다. 돈을 수탈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교황은 돈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양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할 때 돈을 많이 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놀랍게 부어진다고 하는 거짓을 말하였습니다. 돈을 많이 내는 자들은 하늘에 공덕을 많이 쌓는 자들이 된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어디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어제 병원에서 물리치료좀 받으러 갔는데 그곳에서 근무하는 교회집사님께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하는 교인들이 목에 힘을 주고 자기들끼리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헌금을 적게 내거나 못내는 분들에게 신앙생활 똑바로 하라고 한다고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제는 교인들이 다 돈으로 보이고 돈으로 계산되고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고 사는 목사들이 교인 한 사람에 얼마 하는 식으로 거래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을 가증하게 보시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들 가운데 위선자들을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선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위선자들이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가면으로 가려진 그 속은 서로 다른 것처럼 겉으로는 아주 겸손하고 열매 있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만 보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뿌리를 다 보시고 아십니다. 그러니 아무리 겉으로 거룩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로 정죄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대부분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는 거룩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은 탐심과 정욕과 자랑과 거짓으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일반 백성들에게는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인내하며 신앙을 지킬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을 정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제가 지금 루터와 그 시대를 말하고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단지 그래 ‘타락한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당하게 가르치고 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들에게 성경은 단지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말씀을 마음대로 말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양 성도들을 업박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오늘날 현대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고 그럴싸하게 설교하면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오직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 한 구절 읽고 목사 마음대로 이야기 하는 것을 설교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가르친 것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만 가르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교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2017년 새해 첫 주일 이 예배시간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여깁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성도 여러분들 또한 들어야 할 메시지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주는 어떤 헛된 위로나 거짓 안식과 평안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새해가 되었다 고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기분과 감정만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분과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심령가운데 심어주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목사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성도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성경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요3:10절을 보면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으로부터 사람이 거듭나는, 중생하는 것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이 짧은 한 절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것, 다시 말해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그것은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선생이 알고 있어야 일반 백성들에게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고 그 믿음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런 것들을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것을 주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목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선생으로 이런 것들을 모른다면 말이 안 됩니다. 선생 된 목사들이 중생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책망하시는 것처럼 그런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당연히 목사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그 백성들이 배우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 된 니고데모가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있으니 일반백성들이 어떻게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하는 그 놀라운 구원 경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도 모르는데 어떻게 백성들이 알 수 있느냐 말입니다. 목사가 모르는데 어떻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다 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배우려고 합니다. 알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배우고 연구해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직 한해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배우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왔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새해라고 해서 각자에게 올해 한 해 동안 놀라운 축복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속주의에 물든 현대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세상의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새해라고 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여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한다고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기 위해서는 바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구원의 은혜들이 무엇인지 바르게 계속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목회를 계속 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계속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그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나의 생명을 드린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이 믿음이 결코 헛되거나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저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 백성들은 바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 앞에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예배자로 나온 사람들 안에 온통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 드리는 예배만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나오는 자들만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찬송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세상의 온갖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찾고 예배해야 합니다. 인간의 어떤 작은 이익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의지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해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의 중심을 다 아십니다. 뿌리까지 아시는 분께서 마음도 모르겠습니까? 우리의 기도, 우리의 기대, 우리의 소망을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두고 2017년 이 한 해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120&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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