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생각(2)
- ‘어떤 사람이냐’보다 ‘어떤 내용이냐’가 관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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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의 1차 수신자인 ‘무명의 로마 기독교인들’은 당대 가장 강력했던 로마 제국으로부터 복음을 사수하는 것 때문에 혹독한 핍박과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신앙 공동체 가운데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복음을 끝까지 붙잡을 것인지, 아니면 세상 문화속에 편승해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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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로마의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심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던 로마 기독교인들은 ‘복음이 누구로부터, 누구를 위해 시작되었는지’, ‘과연 복음은 어디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복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가복음을 통해서 거룩한 도전과 위로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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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가복음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요한 마가’라는 점이다. 그는 사도로서의 영적 권위가 없었다. 예수님의 12제자에 속한 자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인지는 몰라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중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채 도중에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행 13:5절;행 13:13절). 이런 자가 과연 복음의 위력을 운운한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모순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의 당시 수신자들인 로마의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강력한 로마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으며, 순교까지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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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목사다운 자는 누구일까?
사실 감히 이 질문에 이렇다, 저렇다 단정하기란 어렵다. 물론 끊임없이 목사로서 몸부림치고,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목사로서 충분한 자격과 기준이 된다’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조언을 한다거나 설교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요한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할만한 자격과 수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복음 때문에 바울만큼이나 고생한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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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하나님은 ‘요한 마가’를 통해서 마가복음을 기록하셨다. 그리고 그 책으로 하여금 수많은 믿음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도전하기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으셨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라 여겨진다.
사람의 인생 과정과 그의 노력과 성실성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누구를 통해서든 복음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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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시중에 나오는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설교자이든, 어떤 저자이든, 어떤 생각과 의도로 전하든 드러나는 초점은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절). 이 사실만으로도 그리스도인은 충분히 함께 신앙적 공감을 이룰 수 있고, 동역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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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는 요한마가의 실수, 그의 부족함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고, 능력이다.
물론 그 사람이 무엇을 행하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그 사람을 검증하는데 중요한 참고와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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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예수님과 3년간 제자훈련을 받았다는 스펙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지는 않으신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많은 사역을 하고 기적도 행하며, 카리스마 있는 권세만 있다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전부라 단정할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마 7: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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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력인지’, ‘어떤 환경인지’, ‘어떤 조건인지’는 ‘어떤 내용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통로와 수단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대적 비교 기준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의 경험과 기준으로 성급히 단정하거나 제한해서는 안된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울러 비교적으로 뒤쳐진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 모두 하나님께 초점을 두지 않은 교만함의 이중적 모습일 뿐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감사와 성실성이지 않을까 싶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애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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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가복음 생각(2) - 어떤 사람이냐보다 어떤 내용이냐가 관건이다. |작성자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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