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루신다(11:1-19)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7. 17. 09:20

본문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루신다(11:1-19)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우리는 지난번 예수님께서 강력한 천사의 모습으로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복음을 이방에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아주 분명하게 지체되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파멸에 이를 것을 요한에게 자세하게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심판 받지 않는 자들이 또한 있다고 하는 것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라고 하시면서 지팡이와 같은 갈대를 주시고 있습니다. 성전을 측량하되 마당 바깥은 측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측량하는 것과 측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이미지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것과 유사합니다. 40-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상 중에 성전을 보여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늘 성소였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상에 있었던 성전은 하늘 성소의 모형입니다. 성전의 원형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에 있는 모형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헤롯성전)이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또한 죽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복음이 더 이상 증거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는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할 뿐만 아니라 마귀적인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붙잡고 있는 껍데기인 성전을 파괴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도 42달 동안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의 군대가 A.D. 67년 봄부터 708월까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공격하면서 짓밟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요한에게 성전을 측량하라고 하시면서 보호할 것과 보호하지 말 것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측량한다고 하는 것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것은 보호를 받고, 그러나 부정하게 여기는 것은 심판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전과 그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는 것은 심판으로부터 보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거룩하고 정결한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그들은 오히려 부정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백성이고 정한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씻은 받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거룩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지만 유대인들은 결국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는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전 마당 바깥은 측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보호하지 않고 파괴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로마인이 그 거룩한 성이라고 말했던 예루살렘 성을 파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신다고 하는 예언을 수차례 계속하시는 것은 그만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과 그 안에 있는 성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타국에서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합니다. 이슬람만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니엘서를 보면 유대 포로들이 늘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상에 성전이 있는 한 유대인들은 그곳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의 아들의 피로 구원하시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더 이상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파괴시키고 흔적조차 없애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무너뜨리신다고 하신 주님의 그 말씀대로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대인들은 그 성전 터 앞에서 여전히 통곡하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만큼 인간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이는 그 어떤 종교적 형태에 여전히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종교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도 눈에 보이는 것에 매여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마교회가 타락하자 그들이 추구한 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성전이었고 의식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현상은 개신교라고 하는 우리들 안에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마치 성도들에게 어떤 종교적인 영향을 주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들이 눈으로 보는 신앙을 양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제공하신 신앙은 오직 세례와 성찬뿐입니다. 성전은 더 이상 눈으로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여러분들의 가정에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하면서 붙여놓은 그림이 있다면 모조리 가져다가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 열풍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우리의 눈에, 그리고 어떤 뜨거움이나 체험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슬람에 대한 자료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주후 7c 경에 발생한 이슬람은 그들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구약성경과 신약의 복음서 일부와 그리고 자신이 받은 계시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꾸란을 알라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오늘날 모슬렘들이 그렇게 꾸란을 신성시하고 생명을 바쳐 따르는 것을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성경이라고 하는 이 계시의 책을 어떻게 읽고 순종하는지를 새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짜집기한 꾸란을 마치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모슬렘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 결 같이 구약성경에서 계시된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친히 오셔서 말씀하여 가르쳐 주신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시고, 교회가 거룩한 곳입니다. 이제는 땅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곳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비록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라고 하는 것을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 계시록을 읽으면서 위로와 소망을 가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고 죄를 사함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모여 이룬 이 교회가 하나님님께서 임재하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계십니다할렐루야!!!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 의해 매일 조롱당하고 회유당하면서 핍박과 죽음에 이르는 성도들이 유일하게 가진 소망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시면서 하늘성전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중보사역을 하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면서 자신도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그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늘 승천은 지상의 성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지 않았다면 지상에서 계속 동물의 피의 제사가 시행될 것이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지금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시면서 자신의 몸으로 단 번에 그 모든 피의 제사를 다 이루셨고 완성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동물의 피로 죄 용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과 그 성을 파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최소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위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들은 1,260일 동안 베옷을 입고 예언할 것입니다. 1,260일은 42달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인 로마가 예루살렘을 짓밟는 기간과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두 증인은 예루살렘을 향해 베옷을 입고 회개하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을 하실 때 계속 말씀하셨던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심판의 예언을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두 증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4-6절을 보면 두 증인에게 주신 권세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보여주신 권세와 동일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배교한 이스라엘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증인은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교하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하라고 하였던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소환하여 증인으로 세운 것은 지금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두 증인은 결국 구약 교회의 사역자들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감당했던 지도자들입니다. 이제는 신약교회가 그 복음으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가장 더러운 곳이 되었고, 짐승의 처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짐승이 증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을 유대인들이 무참히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예루살렘 길거리에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1세기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그들이 장사되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팽겨 졌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죽음과 그 시체를 보고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증인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서 장사지내지 못하고 길 가에 버려둠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부활시켜 하늘로 올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두 증인이 단지 두 명의 증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증인을 죽이고 그 시체를 모든 이방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죽은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나라 중에서 죽임을 당하는 증인들은 결국 신약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이들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시체를 저주 가운데 두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죄인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장사지내지 않고 그냥 나둡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여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저주 받아 죽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대인들은 성도들의 시체를 길가에 그냥 방치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반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당신의 신실한 증인들, 즉 성도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11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이 말씀을 통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성도들과 죽어가고 있는 자들에게 우리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고 또한 저주 받은 것도 아니며 그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 의해 죽으셨던 것과 같이 죽었지만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영원히 왕으로 계신다고 하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할 때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제자들만 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사실이 유대지역에 다 퍼졌습니다. 원수들은 믿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일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 날 것입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이 보고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r 성의 사람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피를 신원하여 복수하여 주십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를 믿고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이러한 것을 보여주시고 유대인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회개하라고 하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최종적으로 불타기 전에 다시 한 번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이 어떻게 심판을 당할 것인지를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제 두 번째 화가 지나가고 세 번째 화가 이를 것입니다. 일곱 째 천사가 마지막 나팔을 부를 때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하나님 앞에 서 있는 24장로들 즉 신구약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새로운 성전도 만드셨습니다.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며 예루살렘 성에 있는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들이 누구 입니까? 바로 예수를 자신들의 구주로 고백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그 모습이 바로 19절 마지막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주 놀랍고 경이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통해 언약을 말씀하여 주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을 때 어떤 일이 구약 백성들 앞에 나타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0: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을 때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에서 연기가 났습니다. 지금 하늘 성전에서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연약궤는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한 언약의 상징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이루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성과 그 안에 있었던 성전의 파괴는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새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계시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교회를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계획하는 대로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전부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은 심판을 받고 그 성전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히 거할 하늘 성전에서 아들의 피를 통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워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약속은 여전히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행할 순종의 모습입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394&msection=2&ssection=5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