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신 삶의 질서와 ‘지혜’
1. ‘솔로몬의 잠언’이 지시하는 의미
일반적으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은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무력보다는 지혜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왕의 주변에는 왕의 통치를 보좌하는 지혜자들이 있어 지혜로운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스라엘 왕궁에도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삼하 15:12; 대상 27:33)과 같은 지혜자들이 있어 왕의 통치를 보좌하였다. 아울러 지혜자들은 지혜 문헌의 수집에도 관여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지혜 문헌은 왕궁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수집, 출판되었다. 이스라엘 왕궁에서도 히스기야가 솔로몬의 지혜를 편찬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잠 25:1).
이런 점에서 외국의 경우처럼 이스라엘 왕궁에도 모사(謀士) 집단이 있어 국정에 관여하고 그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잠언이 수집, 편찬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이스라엘의 잠언을 주변 나라들의 지혜 문서와 동일하게 취급하게 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즉 보편적인 세속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잠언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잠언이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졌다는 특수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잠언은 처음부터 보편적인 세속 지혜와의 차별을 선포하고 있다. 즉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잠 1:1)고 선포하는 것에서 그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잠언이 여러 지혜 문집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The Proverbs of Solomon the son of David, king of Israel)이라고 선포하는 것에는 이스라엘의 잠언이 타민족의 지혜 문헌과 차별되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아들’(the son of David)이란 말은 영원한 왕권을 이어받은 왕위 계승자임을 의미한다. 특히 ‘다윗 왕의 언약’(삼하 7:6-16)을 계승한 통치자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이스라엘 왕’(king of Israel)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자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기름부음 받은 왕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세속적인 지혜 문헌과 차별된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메시아적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잠언은 메시아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솔로몬’이 잠언의 대표적인 저작 인물로 등장하는 것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다윗 왕의 언약 계승자인 영원한 왕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자 그리스도이신 메시아를 예표하는 위치에 서 있는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책이며 보편적인 인류의 지혜에 대한 책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잠언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잠언이 일반적인 지혜와 차별되며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계시적 성격을 강하게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말은 잠언이 단순한 지혜 문서가 아니라 메시아의 가르침을 포함하는 계시 차원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의 이름을 솔로몬의 잠언(???שׁ ??שׁ? : 미쉘래 쉘로모)이라고 한 것에서도 이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שׁ?(마샬)이 ‘통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이름은 ‘솔로몬의 다스림’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선지자적 예언(민 23:7-8), 교훈(시 49:3; 78:2), 지혜자들의 변론(욥 27:1; 29:1) 등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 것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솔로몬의 잠언’이라 함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메시아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선포된 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실천적 지혜를 얻기 위한 잠언의 목적
?שׁ?(마샬 : 잠언)은 ‘통치하다’는 의미 외에 동음이의(同音異意)로서 ‘본질과 의미를 비교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후자의 의미로 볼 때 ?שׁ?은 독일어 Gleichnis(비유, 격언)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즉 ?שׁ?은 유사한 두 사건을 나란히 비교, 비유함으로써 본질을 찾도록 하기 위한 격언이다. 따라서 잠언은 문자적 의미의 사건만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 속에 포함된 근본 원리를 말하기 위한 것이며 격언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당대 최고의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할 때 이 잠언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주어졌다는 점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잠언의 특수한 성격, 즉 잠언의 저자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고 메시아를 예표하는 솔로몬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 잠언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계시와 같다는 점에서 볼 때 잠언의 기록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을 훈계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하기 위한 것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 사실은 잠언이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을 깨닫게 하고, 지혜와 정의와 공의와 공평의 훈계를 받게 하며, 우매한 자에게는 슬기를, 청년에게는 지식과 분별력을 주는 것”(KJV)이라고 밝히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 잠언 기자는 잠언의 1차적 목적이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는 것’(????? ???? ????)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혜와 훈계’(????? ????)라는 말은 두 말이 합쳐 한 뜻을 이루는 어법(hendyadis : 二思一意) 중 하나로 지혜(????) 속에 훈계(????)가 포함되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일종의 지식을 얻는 지혜가 아닌 ????(훈계, 교훈, 교정)가 포함된 ????(지혜)를 알게 하는 것이 잠언(?שׁ?)이다. 이런 점에서 잠언은 백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실천적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이 그 백성에게 준 특별한 계명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이에 잠언은 실천적 지혜를 위해 ‘정의와 공의와 공평’(3절)을 제시하고 있다. ‘정의와 공의와 공평’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속성들이다(신 27-28장). 그렇다면 잠언은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나가기 위해 그 백성에게 실천적 지혜인 ‘정의와 공의와 공평’를 알게 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잠언의 또 다른 목적은 ‘우매한 자에게는 슬기를, 청년에게는 지식과 분별력을 주기 위한 것’(4절, KJV)이다. ‘우매한 자’ 또는 ‘어리석은 자’란 경험이 없는 미숙한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매한 자를 젊은 청년과 나란히 놓고 있는 것은 지혜란 경험과 체험과 광범위한 학습 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3.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지혜’의 특수한 성격
잠언(?שׁ?)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특수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실천적 지혜(????? ????)를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의미의 지혜를 그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잠언은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잠 1:5)고 밝힌 것에서 잠언이 다름 아닌 지혜 있는 자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본문에 근거해 이 구절은 “지혜로운 자는 들어 교훈을 더하라 그리하여 명철한 자가 지침을 얻도록 하라”(5절)고 번역되는데, 앞의 4절에 비추어 볼 때 경험이 없고 유혹을 받기 쉬운 미숙한 사람들에게 삶의 지침을 주기 위한 것으로 옳고 바른 규범으로 지혜를 배우고 청종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이 말은 지혜 있는 자가 더 지혜를 가지게 되고 지혜 없는 자는 더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뜻을 포함하게 된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잠언 기자는 지혜 있는 자들은 더 지혜를 얻음으로써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6)고 강조하고 있다.
잠언(?שׁ?)을 비유(?????)와 오묘한 말(????)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마샬(?שׁ? : 잠언)의 특성을 암시한다. 즉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함인 잠언은 마치 문이 열린 틈새로 감추어져 있는 무엇을 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지혜의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아무에게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얻어지거나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혜는 사람의 지적 능력 앞에서 불투명한 존재이다. 오히려 지혜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시지 않고서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지혜는 지혜 있는 자에게 열려진다. 미련한 자, 우매한 자에게 있어 지혜는 감춰져 있는 비밀과 같다.
여기에 잠언의 특성이 나타난다. 잠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 지혜 있는 자들이 더욱 지혜를 얻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를 배척하기 때문에 지혜로부터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 2:6)라는 말씀처럼 ‘지혜’란 오직 여호와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지혜를 얻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지혜를 보여주셔야 한다. 이것은 ‘지혜’가 계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지혜의 특수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잠언 기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고 선포하고 있는 것은 잠언이 하나님의 계시로서 그 백성을 위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미련한 자, 즉 하나님 경외를 포기한 자들에게는 지식 곧 ‘지혜와 훈계’(????? ????)가 감춰져 있다는 선언적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는 자에게는 계속해서 지혜가 공급되지만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배척하다가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는 명제는 지식의 목적이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음을 의미한다(7절). 지식의 옳고 그름의 척도가 곧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식에 대한 그 어떤 논의나 논쟁을 거부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우주의 통치자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께서 세우신 질서에 근거해 있는 지식만이 유일한 판단의 척도가 된다. 피조물인 인간은 이 질서에 순종해야 하며 그 질서를 제정하신 인격적 존재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지식의 첫 번째 원리이다.
잠언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하면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바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경외’가 지식의 출발점이 된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 경외’를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잠언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지혜롭게 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 경외를 토대로 하는 이성의 활동은 지혜(???? : 호크마)를 추구하지만 하나님을 배척하는 이성 활동은 어리석음(???? : 아르마)을 추구할 뿐이다(10-19절).
이 말은 하나님 경외를 통해서만 지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하나님 경외가 없다면 지혜로의 접근도 없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우리 주께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고 하신 말씀의 의도와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지혜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잠 1:20-21)라는 묘사처럼 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위해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닫혀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잠 1:24-25) 한다고 지혜가 책망하고 있다. 그 결과는 재앙이 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26-28절) 사람들은 지혜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것이 부패한 인간의 심성이다(롬 1:18-32 참고).
특별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3)는 말씀 속에는 ‘지혜’가 의인화되어 등장하고 있다.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선언은 절대적인 신적 선언이다. 이 점에서 ‘지혜’의 존재가 신적 권위자임을 보여주고 있다(잠언 서론 4. ‘지혜’의 의인화 속에 나타난 ‘인격’을 참고하라).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HMLI/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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