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기 :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여로보암의 후예와 다윗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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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5-33)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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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왕기의 저자는 탈무드에 의하면 예레미야이다(탈무드, Baba Bathra, 15a). 열왕기서는 예루살렘 멸망과 그달리야를 죽이고 애굽으로 도망가는 예루살렘 사람(왕하 25:24-25), 여호야긴은 바벨론에서 왕에게 생존을 보장받는 내용으로 끝난다(왕하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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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왕기서는 다윗 죽음 전에 발생한 승계 구도와 솔로몬의 즉위와 통치에 대해서 언급한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고(왕상 6장), 솔로몬의 영화는 666달란트로 제시했다(왕상 10:14). 솔로몬은 일천번제(왕상 3장), 솔로몬 성전은 두로 사람 히람이 주도했다(왕상 9장). 솔로몬은 성전 건축비용으로 두로 왕 히람에게 갈릴리 땅 성읍 20곳을 주었다(왕상 9:11). 두로 왕 히람이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은 땅이었지만, 언약의 땅이다. 솔로몬의 첫 번째 실수는 언약의 땅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솔로몬의 둘째 실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주변 국가와 정략 혼인이다(왕상 10장). 셋째 실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의지한 것이다(왕상 10장). 솔로몬의 죄악으로 인해 여호와께서 떠났다. 대안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고, 여로보암이 등장했다(왕상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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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여로보암을 필두로 솔로몬의 치리에 불만을 갖고 온 백성들을 향해서, 솔로몬보다 더 강력한 통치를 하겠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을 함으로 결국 나라가 나뉘었다(왕상 12장).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베냐민 지파를 통치했고, 나머지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편재되었다. 여로보암은 여호와께 위임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한 통치 전략을 펼쳤다(왕상 12:25-33). 여로보암의 세 가지 범죄이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듬(26-29절),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 삼음(31절), 절기를 바꿈(32절)”이다. 열왕기에 반복하여 등장하는 두 문장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규정한다. “다윗과 같았다”와 “여로보암의 죄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죄를 반복하지 않아야 했고, 남유다는 다윗과 같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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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2지파 동맹(사사기)에서 왕을 원해서 왕을 세웠다(사울, 다윗, 솔로몬).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왕국은 남과 북으로 분열하고 말았다. 사울 왕은 왕좌를 다윗에게 빼앗겼고, 솔로몬의 죄로는 10지파가 분리되어 이탈했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왕좌가 솔로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유지된 것이다. 다윗과 같은 왕이 있으면, 북쪽 이스라엘도 열방 강국들도 작은 남유다를 침탈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남쪽 유다왕은 다윗의 길이 아닌 열방의 길을 쫓았다. 결국 예레미야를 통해 주어진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추구했다(왕하 25장). B.C. 587년에 애굽으로 피한 유대인들은 애굽에 정착했고, 주전 2세기경 자기들의 신앙을 위해서 정경(70인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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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이스라엘 왕조는 힘의 의한 정권으로 배신으로 점철했다. 여로보암 왕조, 오므리 왕조, 예후 왕조가 주축이다. 오므리는 사마리아로 수도를 정착시킨 강력한 왕인데(왕상 16장), 성경은 아합이 많이 등장한다(왕상 16장 후반부-왕상 22장). 정치적으로는 오므리의 업적이 크지만, 아합 때에 엘리야와 나봇이 있다. 성경은 힘의 역사(권력의지)가 아니고, 구원과 거룩을 가르치는 정경이기 때문에 오므리보다 아합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한다. 아합 때에 엘리야와 엘리사, 엘리야에게 남은자 7,000명을 말씀하셨다(왕상 19:18). 그리고 나봇은 분깃을 여호수아 때의 기업을 지키고 있었다. 솔로몬이 경솔히 여긴 것과 매우 대조적이고, 아합 왕 그리고 이방 여인 이세벨과 대조적이다(왕상 21장). 나봇을 죽이고 땅을 짓밟은 아합과 이세벨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왕상 22장). 하나님께서는 왜 아합이 나봇의 땅을 취하지 않도록 하시지 않고, 취한 뒤에 심판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에덴의 과일을 먹을 때부터 꾸준하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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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를 연결하는 사람은 엘리야와 엘리사이다.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그들의 딸 아달랴가 유다에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초래한다(왕하 11장). 엘리야와 엘리사로 회복이 불가능했던 북이스라엘과 달리, 남유다는 아달랴의 포악에 대항하는 제사장 여호야다로 인해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요아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대하 24장). 다윗 왕조에 긍정적인 역대기에서 왕조의 폐단을 말했고, 열왕기에서는 침묵했다. 그것은 열왕기는 남 유다의 회복(바벨론 멸망 후 70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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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과 북으로 분열된 왕국은 멸망할 때까지 전쟁을 진행했다. 북쪽은 남쪽을 치기 위해서 주변국을 용병으로 채용하면서까지 전쟁을 진행했고, 남쪽도 북쪽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용병을 채용해야 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면 될 것인데(미 4:3, 사 2:4),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었으니(욜 3:10), 죄의 열매(미움과 분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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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북쪽 이스라엘 사마리아는 앗수르에게 망했고(BC 722), 남유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망했다(BC 587). 예레미야,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에 의해서 70년 뒤에 회복될 것을 예언했다. 에스겔과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계시를 받으며 유다 백성의 귀환을 준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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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남 유다는 패망하는 길에 항상 경건한 왕이 등장해서 회복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범죄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범죄였다(왕하 21장). 요시아가 적극적으로 개혁했지만(왕하 22장), 므깃도에서 바로느고와 전투에서 전사했고 개혁도 실패했다(왕하 23장). 히스기야는 15년의 생명 연장을 받았지만 교만했다. 12살에 왕이 된 므낫세에 의해서 예루살렘의 죄가 씻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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