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5장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분과 지혜의 역할
1. 잠언 5장의 구조와 특징
‘하나님 나라와 그 삶의 본질’이라는 주제 아래 3장에서는 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4장에서는 지혜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5장에 와서 지혜와 대립 관계에 있는 악의 정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4장에서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7)는 경계에 이어 5장에서는 악의 성향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마땅히 발휘해야 할 삶을 밝히고 있다.
이미 2장 16-19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음녀를 주제로 5장의 구조와 양식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짜여 있다. 도입부(1-2절)에 이어 3-5절에서는 5장의 주된 주제인 음녀(???) 혹은 낯선 여인에 대한 짤막한 진술이 뒤따른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그 뒤를 이어 7-14절은 음녀로 말미암아 파국적인 종말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권면이 나온다. 이 권면은 15-20절에서 정절을 지키는 기쁨을 통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21-23절에서는 음녀를 멀리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2. 궁극적인 사망의 길을 상징하는 ‘음녀’
잠언에서 음녀(???), 낯선 여인 혹은 이방 여인에 대한 언급은 2:16-19; 5:1-23; 6:20-35; 7:1-27 등 4차례에 걸쳐 반복해 등장한다. 이것은 생명을 주는 지혜와 대조적으로 음녀가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그 속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음녀는 젊은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묘사되었으며 그녀의 문에 이르는 길은 ‘사망의 길’(2:18-22)임을 경고한 바 있다. 이 음녀는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기혼녀로 묘사되어 있다. 잠언에서 음녀는 지혜가 가리키는 생명을 주는 길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녀를 ‘낯선 여인’ 혹은 ‘이방 여인’이라고 칭할 때 이 단어가 외국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가정 밖’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가정에 대한 충성은 언약의 하나님이 주의 백성에게 보이는 충성과 그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을 반영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혼인 언약과 여호와와 더불어 맺은 언약은 서로에 대한 유비였다(2:17). 이런 점에서 ‘낯선’ 혹은 ‘이방’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혼인 서약을 파기함으로써 스스로 가정 ‘밖’에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진다. 나아가 이 여자는 혼인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언약 공동체를 떠났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 또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와 이질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롭다”(잠 5:3-4)는 묘사는 음녀의 특징으로 처음과 끝이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처음엔 꿀같이 달콤하지만 쑥처럼 쓴 것이 그 본질이며 기름처럼 부드럽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이 그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녀는 본질을 감추는 위선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매력은 그 아름다움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 영향력은 달콤하고 부드러움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변질될 때 그것은 무서운 무기로 바뀌게 된다. 겉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녹일 만큼 부드러우나 그 속에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5:5-6)고 잠언 기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음녀는 생명으로 가는 확고하고 넓게 펼쳐진 평탄한 길조차 찾지 못해서 이리 저리 비틀거리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자신이 내적으로는 죽음을 향해 가는 처지이면서 외적으로는 자기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외모만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을 살펴볼 때 사망의 쓴 독이 가득함에도 그럴듯하게 장식된 외모만을 바라보고 그 음녀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음녀와 함께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에 잠언 기자는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 5:7-8)고 경계를 하고 있다. 만일 지혜의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종말은 처참하게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9-11절).
이와 같은 경고는 오래 전 가나안에 입성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이스라엘 후손들에게도 주어진 바 있다(신 31:16-18).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하나님의 분노와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신 32:16-27).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에 대해 염려하며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신 32:29-30)라고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잠언 기자의 음녀에 대한 경계는 충분히 모세의 심정을 담고 있다. 대낮같이 밝고 환한 세상에서 확고하게 보여주는 생명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6절) 그 길을 외면하고 지혜의 부름을 거역한 결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9-11절). 그 때는 돌이킬 수도 없으며 후회한다 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괴롭기만 할 것이다.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잠 5:12-14)는 자학적인 때늦은 탄식만으로는 더 이상 지혜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잠언은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 1:24-31)고 경고한 바 있다.
잠언(?שׁ?)의 특성 중 하나가 비유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음녀와 그 유혹에 대한 경고는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잠언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2장에서 이미 음녀에 대해 경고하면서 잠언은 지혜가 음녀로부터 주의 백성을 보호하는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본문에서 허탄하게 자괴감에 빠져 탄식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혜의 보호 기능으로부터 소외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망의 그늘에 갇혀 있는 자들의 탄식 소리는 음녀의 입술에 발라진 달콤한 꿀과 음녀의 입에서 나오는 부드럽게 속삭이는 유혹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잠언이 상대적으로 비웃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반대로 음녀의 은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지혜의 보호 기능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따르는 자들이 평탄한 생명의 길을 가게 될 것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잠 5:1-2)는 지혜에게로의 부름이 얼마나 큰 평안(???שׁ)을 가져다 주는지를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름을 외면한다는 것은 탄탄한 생명 길을 놓아두고 어둡고 침침한 사망의 길을 가는 음녀처럼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하다.
3.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분과 지혜의 역할
잠언 기자가 음녀, 즉 이방 여인 혹은 낯선 여인의 유혹에 빠질 때의 결과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15-19절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음녀와 반대되는 존재는 당연히 ‘지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15-19절에 등장하는 ‘물’은 지혜를 상징하는 단어로 이해하게 된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잠 5:15)는 비유적인 표현이 남녀간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유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잠언(?שׁ?)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부부간의 관계를 통해 지혜와의 친밀한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혼인은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구현하는 가장 기초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제도의 첫 번째가 바로 가정이었다. 그리고 이 가정은 혼인을 기본으로 한다. 두 번째 제도는 사회와 국가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통해 구체적으로 계시되었다. 혼인은 사회와 국가를 세우는 기본적인 신성한 제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에서도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최초의 ‘가정’(家庭)이라는 제도는 창조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류 사회에게 세워준 제도였다. 아담과 하와는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문화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곧 사회였으며 하나의 통치 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가정은 사회의 원세포적인 단위를 이루고 있으며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사회가 세워지고 나라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건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건전한 사회와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는 이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인생의 본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사명은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주신 하와와 합력하여 성취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창 2:20-22).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온 인류가 한 사회를 형성하여 창조의 영광된 완성을 목표로 삼고 인생을 경영하도록 하신 것이다.
가정은 문화적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유효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계시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효한 제도였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한 몸을 이룸에 있어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하나로 엮어주는 신비한 끈이 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1-23).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하와를 만드심으로써 그 두 사람이 서로 한 몸임을 보이셨다. 여기에서 그 두 사람을 본질상 한 사람으로 묶어 두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게 된다.
때문에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잠 5:16)는 잠언의 경고처럼 가정 제도를 파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를 파기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하는 혼인 정신을 파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혼인 제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기초로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17-19절). 이것은 음녀가 하나님 나라를 훼손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 비해 혼인 제도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근간(根幹)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혼인 정신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인간 존재의 목적인 인생의 본분을 성취하기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에 입각해 볼 때 지혜야말로 바로 그 목적을 완성케 하는 원동력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일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지혜의 역할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혜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인생의 본분이 완성된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그 길 외에 다른 길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래서 잠언은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잠 5:20)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 계집’(?????)이라는 것은 음녀가 지혜와는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지혜대신 음녀를 연모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인생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혼인의 정신처럼 지혜에 대한 충절(???)이 변함 없이 순결하다면 사람의 길을 보시는 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다(21절). 반면에 음녀를 따르는 자는 사망의 쓴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22-23절). 이것은 전능하신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나온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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