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올해 합동교단의 제 54 회 목사 장로회 기도회에서 특강을 맡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제게 주어진 주제인 개혁교회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을 받고 종교개혁의 500년을 되새기면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개혁교회의 참 모습을 회복하고 발전시켜가는 일에 복 되게 쓰임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귀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총회장님을 비롯한 임원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본 강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500년 전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의 간략한 역사이해를 돕는 설명과 한국의 개혁교회의 현재 모습을 서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혁교회가 가시적으로 보여 져야 할 참 표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며 본 강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1. 개혁교회의 역사적 기원과 이해
개혁교회(영어의 Reformed Church)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 교회를 바로잡고 초대교회에 비추어서 성경적인 올바른 교회를 세우고자 몸부림친 개신교회를 전부 통 털어서 개혁교회라고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구별을 위해서 사용하는 광의적인 개신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전자의 경우보다 중세교회의 혁신을 추구하였던 개혁자들 가운데서 루터와 재세례파들과의 구별을 나타내는 개신교도들을 일컫습니다.
즉 칼빈을 따르는 서구 개신교도들(스위스나 네덜란드 및 동구라파 지역의 교회들이 이에 속한다)과 존 녹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크게 칼빈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들로 한정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된 특징은 건전한 교리를 바탕으로 교육과 예배 및 교회 직임과 구조 등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 그리고 현장에서 성도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 2)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3) 오직 은혜(Sola Gratia), 4) 오직 믿음(Sola Fide), 5)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다섯 개의 solas를 신봉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따르고 있는 입장을 개혁신학 혹은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집대성하여 교리적으로 가장 잘 요약하여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키며 개혁교회의 틀을 확립시킨 표준 문서가 웨스트민스터 신앙 표준 문서들입니다: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및 예배모범과 권징조례. 그 중 소요리 문답의 첫 세 번의 문답에서 개혁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와 삶을 잘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Q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A.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다.’
Q 2.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 하셨는가?’
A.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Q 3.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가?’
A.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혁교회의 삼대 표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 그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한국의 개혁파 신학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교회들 그 중에 보수적인 장로교회들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삼대표어를 항상 교회 주보 맨 앞에 기재하였었던 개혁교회의 두드러진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교회성장학과 세 개의 찬송가(새 찬송가, 개편찬송가 합동찬송가)로 나뉘어 있던 것이 통일찬송가로 하나로 만들어지면서 교회에서 점차적으로 이 표어들은 사라져갔습니다. 그 자리에 교회 성장을 위한 개교회의 목표들만 나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거의 절대다수 교회들의 주보에서 사라져버린 표어가 되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지금은 명목상으로만 겨우 보존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표어는 사실 개혁교회가 스스로 창출해 낸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라는 명령을 받고 ‘나를 보내신 이가 누구라고 말할까요? 라는 질문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답변하신 것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그리고 계속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4~15)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이집트에 살 때에는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고 이집트인들이 주인 노릇하였지만 이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크고 강한 팔로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 되었던 땅에서 건져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은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하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직접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그들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중심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교황과 같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심일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개혁주의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엄격하게 구별합니다. 인간을 특수한 위치에 두는 신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자연과 인간과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영광을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요, 오직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 사상입니다. 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레위기 18장에서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1-5).
이것은 하나님 여호와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속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원리를 명해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록된 성경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중심’(Bible-centered)이란 우리가 알아야 할 신앙의 모든 것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든 방식과 원칙이 오직 기록된 말씀인 성경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 외의 그 어떤 것도 신앙의 표준일 수 없고 신학의 원천일 수 없습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과 같은 자들은 성경 외에도 소위 성전(聖傳)이라는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때로는 이것을 통해 성경을 해석한다 하여 성경 보다 우월한 권위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성경에 반하는 모든 전통은 구속력이 없음을 선언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려면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성경만이 신적 권위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재가가 곧 하나님의 재가입니다.
과거에 개혁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죄를 가장 무서운 죄로 여겼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지키고자 목숨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냥 입을 벌려 말씀들을 쏟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가락으로 돌 판에 친히 글을 새겨 주셨습니다(출 31:18).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입니다만 손으로 돌에 글을 새기는 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 계명이 주어지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죄 사함 받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하나님은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없음을 천명하였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의 입에서 나오고 그의 손으로 새겨 주신 그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는 것임을 밝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함을 받은 백성들은 구원함을 받은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욱이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입니다(Mater Fidelium).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통해서 신자 각각은 양육 받고 보양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일을 위해서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웠습니다. 일명 ‘항존직’이라고 하는 장로와 집사직입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강도장로와 다스림에 수고하는 치리 장로, 그리고 섬김과 봉사의 일을 감당하는 집사직은 지상에 주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한 항상 있어야 할 직분들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중심’(Church-centered) 사상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추구하는 교회중심의 신앙적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고 신자들의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서 필요한 모든 영의 양식을 구하며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학문이며, 교회를 섬기는 학문입니다. 교회를 갱신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신학이 되지 못하면 참된 신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이 직분자들을 통해서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돌보고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중심이란 개교회 중심이 아니라 주님의 공교회 중심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같은 성부 성장 성령을 믿고 같은 믿음의 반석 위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한 하나님, 한 주, 한 성령을 마시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공교회 중심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 이유입니다. 지역마다 개 교회들이 세워지지만 동일한 성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듭난 백성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위로와 인도하심으로 진행되어 가는 공교회입니다.
과거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교황중심의 로마 가톨릭 교회와 철저하게 구분되는 것입니다. 교황중심과 전통중심 및 사제중심의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과 교회 중심의 교회가 개혁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개혁교회의 이같은 삼대표어를 굳게 붙들었던 믿음의 선진들이 유럽과 영국에서 신대륙으로의 이동을 통하여 미국 땅에서 그리고 캐나다와 호주 대륙에서 개혁파 신학과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중심으로 개혁교회들이 급속도로 세워지며 확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 여파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진 조선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130여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 초창기에 선교사역을 감당하셨던 선교사님들의 대 부분이 다 정통 보수 신앙을 근거한 자들이었다는 것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섭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린 한국의 교회는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환난을 당했지만 파멸되어지기보다 더욱 강건한 교회로 성장해 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한국교회는 이렇게 130년이 흘러왔습니다. 지금 개혁파 신앙을 기리고 있다는 정통개혁주의 보수 신앙을 표방하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회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500년 전의 개혁의 대상으로 타도되었던 중세 타락한 교회의 현상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물론 필자가 아는 한 지난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교회 성장의 침체기를 맞이하면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개혁의 외침들이 이젠 지난 10년간에는 거세게 휘몰아쳤습니다. 각 신학교 교수들만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일선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교회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소리들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개혁의 나팔들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아, 이제는 교회가 개혁이 되겠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기대감은 허탈감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필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뜻 있는 이들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단적으로 지난 2007년 평양대부흥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당시 경험했던 대 부흥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침체되고 냉랭하고 메마른 조국 교회위에 힘차게 불어오게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엄청난 재정과 인원들을 동원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단회적인 이벤트 형식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 역사책에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는 한 문장만 남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기는커녕 더더욱 지탄의 목소리, 안티세력들의 무차별적인 공격만 늘어나게 했습니다.
심지어 공적인 언론 기관에서도 각 종파별 보도 통계에 있어서(2016년 12월 20일 통계청 발표) 가장 종교인구수가 많다고 발표된 개신교에 대한 무게중심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967만 명, 19.7%, 불교 761만, 천주교 389만 명).
작년 11월 대입시험을 치르게 되었을 때 전례에 의하면 해 마다 가톨릭, 개신교 그리고 불교 순으로 학 부모들이 공을 들이는 기도장면들을 메인 뉴스 란에서 소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공영방송 밤 9시 뉴스에서 다른 두 종교 기관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방영하면서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은 보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기독교의 내용들 중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들은 대서특필하듯 보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명성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일들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 개혁을 주장한다는 일부 진보 세력들의 부정적 뉴스 보도들과 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갈등과 싸움들, 또한 대형교회들의 세습 문제나 비리 등이 한국의 교회의 신뢰도를 가장 바닥에 쳐지도록 추락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번에 우리 교단 만해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이 총회적으로나 노회적으로나 혹은 개교회적으로 거창하게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들마다 줄줄이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고 각각의 학회에서도 동일한 주제들을 가지고 1500여명이나 되는 신학박사들이 나름대로 외침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목장 기도회에서도 같은 주제 하에 여러 강사들에 의해서 개혁의 소리들이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 행사를 마치고 나면 교회가 외침의 소리에 맞게 개혁되어질까요? 올해가 지나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500년 전의 그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개편되리라는 확신이 듭니까?
교단신문인 기독신문에 매주 마다 특정 교회의 협찬으로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사진들이 전면광고형식으로 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 대부분이 기대하는 개혁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까?
이번 이 기도회이후로 한국 교회, 아니 우리 합동측 교회들이 개혁되겠다는 열망이 전국으로 번져나가겠습니까? 필자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매우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정서적으로 ‘선언적인 개혁’의 외침에 동참할 뿐 ‘실천적 개혁’의 움직임엔 지극히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를 잘 추구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반발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외치는 자들도 외침을 할 뿐 변화의 소용돌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관망하거나 힘 있는 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선언적 믿음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 믿음의 행동이 뒤따르지 아니하는 한 개혁의 열망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필자는 교단의 개혁교회의 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난 4반세기 동안 여러 모양으로 주장하고 뛰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적들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많은 아군들도 얻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두 그룹으로 나눠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다 개혁의 선봉장이 되셔서 우리 교단의 교회들이 실천적으로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변혁을 일으키는 주역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개혁의 나팔을 힘차게 불고자 합니다. 선언적 개혁의 의지 표명만이 아니라 실천적 개혁의 행동을 낳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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