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는 구약의 대선지자인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바알과 아세라는 거짓 신임을 불로써 증명하게 된 일을 계기로 인하여
그 당시의 왕인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서
열왕기상 19장 4절의 말씀처럼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라고 말한 장소이다.
하지만 현 시대의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지하게도 이러한 의미를 간과한 채
이 로뎀나무를 평안 내지는 안식을 주는 의미로 착각하여
여러 가지 장소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즉, 로뎀나무 교회, 로뎀나무 그늘 교회, 로뎀나무 요양원, 로뎀나무 펜션,
로뎀나무 내과, 로뎀나무 까페, 로뎀 유치원, 로뎀나무 어린이집.....등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로뎀나무를 가리키는 영문은 “Broom Tree” 인데, 이 의미는 ‘대싸리 나무’ 이다.
이 나무는 빗자루를 만들기에 적합한 것으로서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싸리 빗자루가 통용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Broom’은 빗자루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로뎀나무는 영문의 의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빗자루를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나무이며, 잎이 별로 없는 나무이다.
이 로뎀나무는 그 의미처럼 빗자루 같이 줄기가 하늘로 쭉쭉 뻗어 있어서
그늘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나무로서
열매는 독이 있고, 나무는 쓸모가 없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기본적으로 온도가
35도에서 40도를 육박하는 햇빛이 따가운 지역이다.
하지만 습도가 없어서 땀을 흘리지 않기에 그런데로 살아갈수가 있는 곳이며,
나무 그늘 아래에만 들어가면 햇빛이 가리워져 시원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잎이 별로 없어서 햇빛을 가리워주지 못하는
로뎀나무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로뎀나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시궁창” 이다.
또한 자살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곳이므로
이 로뎀나무를 다른 말로 “자살나무” 라고 부르기도 한다.
엘리야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를 찾아가지 않고
하룻길이나 행하여 결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로뎀나무를 찾은 것은
앞서 살펴 본 열왕기상 19장 4절의 말씀처럼 죽기 위해서 이다.
이러한 로뎀나무의 어원적인 의미를 모른 채 단순히 성경에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한 로뎀나무가 왠지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는 의미 하나만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무지한 행태를 벌이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설령 로뎀나무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 치더라도
이 로뎀나무는 엘리야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찾아간 곳이다.
그런 의미를 가진 로뎀나무를 회피하지 않고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지한 행태에 불과한 것이다.
이 로뎀나무는 햇빛을 가리워 주지 못하기에 괴로움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이 로뎀나무 아래에 있다가는 끝내 죽고 말 것이다.
요나서 4장을 살펴보면 요나가 니느웨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기 위해 뜨거운 햇빛을 피할수 있는 박 넝쿨을 발견하여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벌레를 예비하셔서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신다.
그리고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셔서
요나의 머리에 쪼이게 하시자
요나가 정신이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요나서 4장 8절의 말씀처럼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라고 한다.
이 요나의 말처럼 햇빛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로뎀나무는 여러 곳에서 의미를 간과한 채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 로뎀나무 그늘교회라는 말은 로뎀나무가 결코 그늘을 제공하여 줄 수 없기에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며, 로뎀나무 요양원은 로뎀나무는 사람에게 죽음을 제공하는 곳으로써 요양원에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말이며,
로뎀나무 펜션 또한 로뎀나무의 의미상 편안한 안식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로뎀나무를 어린이와 관련된 장소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을 살려야 하는 병원에 해당하는 내과에 이 로뎀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무지한 행태인 것이다.
끝으로, 로뎀나무 까페라는 말을 사용해서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로뎀나무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궁창”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뎀나무 까페란 냄새나고 더러운 시궁창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이다.
또한 로뎀나무 붘카페도 있는데 살인적인 햇빛이 뜨거운 곳에서 책을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불과한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로뎀나무의 어원적인 의미를 밝히 알고,
더 이상 어리석은 일을 자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http://blog.daum.net/ktsdmin9182/762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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