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12제자들과 세운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의 회복이고 성취입니다. 또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주셨던 언약의 완성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담과 맺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여 불순종하는 자손들이 태어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을 섬기고 우상을 섬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피를 통해 새로운 백성을 삼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이제 새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식을 자신의 아들을 통해 정했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그것을 복잡하다고 여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도 그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읽는 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자세하게 보면 복잡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9장 15절에 나오는 첫 언약은 아담과 맺은 언약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8절에 첫 언약이 피로 맺어졌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담의 언약을 첫 언약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이 첫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담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의 내용들이 결국 처음 언약의 약속을 계속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로 맺은 언약, 첫 언약은 모세와 맺은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을 때 그 장면이 나오는데 신27장과 수8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발산과 그리심 산에 모여 하나님의 율법이 낭독될 때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이때 저주와 축복이 같이 선포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겨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때 백성들은 아멘으로 우리에게 저주와 심판이 내려지는 것에 아멘 합니다. 그리고 반대편 그리심 산에서는 순종에 대한 복이 낭독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을 선언하면 백성들은 아멘으로 소리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라고 하는 백성들과 맺은 첫 언약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첫 언약은 결국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과 그 내용에 있어 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하는 첫 언약은 아담과 맺은 언약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첫 언약이 아담의 불순종으로 파기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구약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나 쉽게 배반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와 거짓종교에 빠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그 언약의 내용대로 그들은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중보자를 필요하시는지 우리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당연하데 왜 중보자, 즉 자신의 아들을 세워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지에 대하여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세 이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보자가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와 언약을 맺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언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이삭이며,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중보자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육체적으로 도저히 자손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중보자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율법을 주기 전에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 때문에 중보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이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을 통해 죄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필요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칭의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구원이 은혜로만 주어진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율법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세워져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피의 제사의 효능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짐승의 피를 통해 죄 용서와 정결의식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짐승의 피 제사가 없습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성찬 밖에 없습니다.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먹고 마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고민과 갈등에 빠져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자신의 아들의 피가 어떤 목적을 위해 그리고 그 피의 능력과 효력이 무엇인지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모든 사람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는 위치에 서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세상 나라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께서 유언을 하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유훈이나 가르침을 위해 유언을 남깁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물질의 복을 받는 수단 중에 가장 선호하는 것은 부모의 유언으로 남기는 재산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가 주시는 재산만큼 가장 쉽게 물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재산을 갖기 위해서는 살아계신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유언을 남겨도 죽지 않으면 그 재산은 여전히 부모의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길,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 화평하게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로 여김을 받는 길에 대하여 예수님의 죽음을 유언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가장 위대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며 성경전체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물려주시는 유산을 받을 자녀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죽으심,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그 유언의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민족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모든 아버지의 부요한 축복을 다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유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 같이 아버지께서 우리를 동일하게 사랑하여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성령이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성령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여 주십니다. 아들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축복이 아들께서 유언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재벌이 남기는 유언에 대하여 자녀들과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무엇 하나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나 하는 것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중요하게 여긴다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시기 위해 유언을 남기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유산이 죄인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언약을 세웠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짐승의 피를 뿌려 죄를 사하여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결국 모형이었습니다. 이러한 모형을 위해서도 짐승의 피가 뿌려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이제 영원한 하늘에 있는 것을 위해서는 더 좋은 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피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를 용서 받지 못합니다. 구약의 모든 피의 제사로 죄를 용서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피를 흘려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이 받은 죄 사함의 은혜는 헛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죄 사함의 은혜 가운데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아들의 피를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붉은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씻겨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크게 받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건강과 물질의 복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께서 왜 피를 흘려 죽으셨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아들의 피의 제사가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을 안다면 모든 사람들은 아들의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보다 더 위대한 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면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면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왕적 통치의 능력을 주시는 축복은 도저히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건강일 것입니다. 이건희씨가 자신의 돈과 주식을 다 주고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건강한 육체일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권세를 다 가졌던 모든 왕들도 좀 더 세상에서 건강하게 사는 삶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영원한 생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줄리어스 시저가 죽었을 때 그가 남긴 유언 가운데 로마 시민들을 위해 두 달 반 정도의 재산을 모든 로마시민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로마시민들은 시저를 칭송하고 그를 위대한 로마제국의 황제라고 칭송하였습니다. 두 달 반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준 것에 감사하여 칭송한 로마시민들의 모습은 오늘날 세상의 것을 바라고 찾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남들보다 더 높은 명예와 칭송을 받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남기는 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또한 땅에 것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주신 것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중보자로 자신의 아들을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중보자로 서신 것은 인간은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으며,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죄인들은 중보자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보자가 없어도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보자가 있어도 약간의 도움만 줄 뿐이지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악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오늘날 모든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유대교처럼 여전히 인간들은 율법에 순종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참으로 우습게도 거짓 종교인 불교는 석가모니의 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공로를 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까?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거룩하지 못한다고 하는 9장 22절 이 한 구절의 말씀을 귀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죄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죄를 사함 받을 것이며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인침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중보자로 서서 자신의 죽음을 유언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유언으로 남기신 모든 복을 우리들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영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로마시민들처럼 물질 때문에 죽은 시저를 칭송하는 자들이 아닌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를 찬양하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899&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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