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공로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단 번에 (히9:23-28) | |||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는 책을 쓴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은 세상의 역사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하는 것을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여 살아계신 것은 단 한 번만 일어난 인류 역사 가운데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을 통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로 완전히 구분되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이 두 개의 나라가 완전히 분리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들이 만들어나가는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세웁니다. 그러나 또 다시 반복하고 반복합니다. 최고의 권력이라고 하는 왕의 자리도 계속 바뀌고 다시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 우주 만물의 통치자로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영원한 왕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십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왕적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하여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단지 지상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어떻게 지금 계시는지에 대한 말씀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왕의 권세를 가지시고 계속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에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속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하는 일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여전히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신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으로 계시지만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은 결국 모든 성도들을 위해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야만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더 많은 유익과 축복이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아들의 영이신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여 주십니다. 잠깐 우리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축복을 간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짐승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용서 받는 날에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축복의 기도는 짐승의 피가 뿌려진 다음에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십자가에서 뿌려진 이후 동일하게도 자신의 백성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각 성도들에게 임하신 것은 세상의 물질적 복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현대 오순절 교회들은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오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령을 의지하면 병도 고침을 받고, 사업도 잘되고, 자식들도 형통하게 되며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완전히 성경을 왜곡하는 거짓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인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을 주시는 데 그 복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세상적인 복을 주신 것이라고 하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복을 받지 못한 저주스럽게 고난과 환난만 당한 자들이며, 종교개혁당시 그렇게 많이 죽임을 당한 성도들 또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복을 인간의 육신적 복으로만 한정시키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모이고 목사들로부터 말씀을 듣는다고 하지만 결국 그곳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사탄의 회라고 저주하신 것처럼 사탄의 모임 밖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에 나타나신 것, 즉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진 영원한 심판, 죄의 저주를 단 번에 끊으셨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단지 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일생을 마감하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할 것입니까? 세상의 복은 예수님 아니라도 다른 것을 통해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구원, 죄로 인한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 받은 이 축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받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지금 아들께서 아버지 앞에 나가신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기 위해 아들께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로 승천하여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지 않았다면 성령은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왕으로 계신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의 요점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자신의 피를 드리시고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상의 있었던 대제사장은 눈에 보이는 성전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23절).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라는 것은 바로 구약 시대 때 있었던 지상의 성막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대제사장은 하늘에 있는 장막의 모형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형이 아닌 실제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었던 모형들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면 되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좋은 제물, 즉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보다 더 나은 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땅에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는 짐승의 피를 통해서 가능했지만 하늘의 계신 하나님의 참 성소에서는 참된 피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늘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계속 속죄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일을 통해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사역을 위해 흘리신 피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사역을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 번에 자신의 피로 그 구원의 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피로 단 번에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해마다 성소에 들어가서 자신의 피로 제사를 계속 드려야 한다면 예수님께서 계속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고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으로 계속 와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에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인간으로 오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세상의 끝에 나타나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끝이란 마지막 종말의 심판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오셨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끝이라고 합니다. 죄로 인해 죽음과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세상의 끝에 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 한 번, 즉 단 번에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죄를 다 속죄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27절의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 말씀을 장례식에서 자주 사용하지만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위해 기록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의 의도는 예수님께서 한 번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고난과 죽음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한 번 죽고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계속 죽음으로 고난을 당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죽지 않습니다. 한 번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그야말로 구원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한 번 죽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통해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이룬 단 한 번의 구원사역을 믿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과 위대한 영웅들이 인간이 죽은 뒤의 상태를 알기 원했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사후 세계에 대한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아주 저급한 미신종교도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사후 세계란 단지 상상에 불과합니다. 최근에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흥행을 이루었지만 결국 그것들 모두가 허구이며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 불과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죽음 앞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교황이 인간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지옥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여호와 증인들의 말처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현대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영국의 목사 톰라이트는 예수님께서 말씀했던 지옥은 단지 그 시대의 가장 어둡고 냄새나고 사람들이 가지 않는 더러운 장소라고 그렇게 폄하시켰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옥에 대한 장소적 존재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지옥이 성경의 말씀처럼 정말 존재하고 있는 장소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옥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자신들을 더 편하게 해주는 신앙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설교는 참으로 많이 하는데 지옥에 대한 설교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1세기 당시 믿음의 성도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다고 하는 것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고 버려지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집안의 가족이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들이 저주스럽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예수를 당시 유대인들이 믿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 나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제사장들의 무리들도 주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위대한 교회역사학자인 필립샤프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하나님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가진 신앙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앙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까? 그 결과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일반 사람들의 죽음처럼 그런 죽음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처럼 한 번 있었지만 그 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의 죄가 용서 받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번에 죽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고난을 받고 죽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 자신의 단 번의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어리석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마치 구약의 짐승의 피처럼 계속 죽으심으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로마교회의 거짓교리 가운데 하나가 미사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이 계속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그들이 드리는 마사입니다. 미사는 예수님께서 단 번에 자신의 피로 이루신 구원 사역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단 번의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구원 사역을 믿지 않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자들이 있습니다. 춘천의 한마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성로라고 하는 목사가 이러한 주장을 가르치고 있는데 많은 목사들이 여기에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리노회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김성로 목사가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교회 전사도가 매주 그곳에 간다고 하면서 바르게 지도해야 하는데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목사들이 쫓아다니는 것은 교회가 부흥되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것을 배워 교회부흥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바른 성경의 해석과 진리를 알지 못하면 결국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를 그렇게 깊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반드시 단번에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더 이상 고난을 받기 위해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계속 짐승들이 피를 흘리기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이 광경이 마치 참된 종교처럼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흘린 피의 제사를 통해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짐승의 피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대제사장도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오실 것입니다. 고난 받고 죽으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 하나님의 아들을 고대하는 모든 자들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피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주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그저 말씀을 통해서만 듣고 그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입술과 삶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늘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오늘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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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915&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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