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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8, 흔들림

성령론

by 김경호 진실 2018. 8. 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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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령을 따라가는 삶의 특별한 전형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불이익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하심을 감당하는 삶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에 일어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의 갈등을 처리하는 사도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도들은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사도행전6:2-4)는 결론을 내리는 데, 그런 삶이 바로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라가는 삶의 한 표본이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가는 삶은 혹 나에게 좋은 기회로 찾아온 상황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감당하게 된다. 앉은뱅이를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이나,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준 후에 자신들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여기며 제사지내려는 사람들을 말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복음을 이야기한 바나바와 바울의 모습은 성령이 충만한 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의 주장이나 자신의 생각이 성령의 뜻과 다를 때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고넬료집으로 베드로를 보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의 고집을 꺽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마게도니야 지역의 선교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 앞에서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던 선교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2.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표적을 행하심으로 예수님 스스로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요한복음2:11)셨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을 정화하심으로 유대의 전통적인 제도를 초월하신 메시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1:4)는 요한의 말처럼 생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요한은 니고데모를 이야기한다. 니고데모를 이야기하면서 그런데라는 말을 붙인 것으로 보아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본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한복음3:2)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신학적 토론을 원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3:3)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거듭난다라는 말은 다시라는 의미와 함께 위로부터라는 의미도 있다. 니고데모는 다시라는 의미에 중점을 둔다. 니고데모의 오해이다. 오해한 니고데모는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한복음3:4)라고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신다. ,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신다. 특별히 구약의 선지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주심을 약속했다(이사야32:15-20 참조). 따라서 에수님게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유대적 종말의 삶을 오늘의 현실로 끌어오는 놀라운 말씀이 된다. ,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이후에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의 의미를 모태에 들어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가는 삶을 감당하는 것임으로 이야기하셨다. 거듭남은 새로운 탄생이다. 거듭남을 통해 사람은 지금까지의 가치와 삶의 원리를 바꾸게 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요한복음3:2)알았다고 말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으로 알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때문이었다. 이런 니고데모의 생각을 받아 예수님은 바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있다는 것은 바람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들을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자연의 모습을 바탕으로 상령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3:8)라고 말씀하신다. , 성령을 받았는지 않 받았는지는 알 수 있는 것 혹은 알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며,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3.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은 인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3-15)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한 중요한 모델을 보여준다. 나는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는가? 나의 삶은 낙옆이 흔들릴 때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는가? 나는 성령을 따라 흔들리는가?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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