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그러운 베뢰아 사람들
본문: 행17:10-15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겉을 보고 판단을 한다. 외모나 소유나 학벌을 가지고 평가한다. 조금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평가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상식과 다른 평가 기준이 소개된다. 말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에 따라 평가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베뢰아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 들어보자.
1. 너그러운 사람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 우리말대로라면 관용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어상에서는 “출신이 좋은” “문벌이 좋은”이란 의미를 갖는다.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비교를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성향은 거칠고 정치적이고 투박했다. 반면 베뢰아 사람들은 학문에 대한 진지함과 배우는 일에 세련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받아 드리는데 바탕이 좋았다. 터가 좋으니 말씀의 씨를 뿌리자 싹이 트고 건강한 떡잎이 나오고 무럭무럭 자랐다. 바탕이 잘 되어 있으면 진리를 받아드리는데 효과적이다. 평소 책을 읽고 배움의 갈망이 있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 드리는 일도 진도가 빠르다.
나의 고향 장성을 조금 선전하려고 한다. 장성을 두고 문불여장성이라 한다. 흥선대원군이 학문으로는 장성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실제 장성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필암서원, 봉암서원, 고산서원 등이 있다. 한학자들이 많은 곳이다. 배우는 일에 좋은 바탕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태어난 마을은 문불여장성을 대변할만 하다. 20호 밖에 안 되는 마을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동네다. 대체적으로 동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했던 것 같다. 다른 마을 아이들을 빠구리치는 일을 일상으로 했다. 가난한 마을이어도 교육열이 높았다. 면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천에서 용난 마을이다. 예수님 믿는 일이 바탕이었던 같다. 모든 마을 아이들이 교회에 다녔다. 배움의 분위기가 작용을 많이 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어도 트인 마을이었다. 이웃마을하고 너무도 달랐다.
우리가 사는 대대마을은 어떤가? 우리 마을은 홍수와 싸우고 거친 바닷바람과 싸우고 제방을 넘어오는 거친 바닷물을 막아내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차분하게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억척스럽게 살아야만 입에 풀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주암댐으로 인하여 그런 싸움은 끝났다. 홍수 걱정도 없고 물싸움은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너그러움과 여유를 가지고 책도 보고 진리를 탐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 일 더미에서 해방되시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 바란다. 교회에서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집에서는 성경을 펴놓고 읽는 너그러운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2.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가 마을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바탕이 잘 되어 있는데다가 진리에 대한 열망 또한 간절했다. 사실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진리를 받는 태도가 보통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한 수 위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함이 있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어떤 자세로 받는가? 진지함과 간절함이 있는가?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시다면 복 받은 분이다.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함이 있다는 것은 아주 귀한 마음이다. 설교를 들을 때는 앞자리가 훨씬 유리하다. 앞자리는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설교를 들을 때 뒷자리는 좋은 자리가 아니다. 어쩌다 늦을 때 앉는 곳이며,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 가끔 서서 움직여야 할 분들이 앉는 곳이며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뒷자리는 마음은 간절해도 마음이 분산되는 곳이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공부 잘하는 경우는 없다. 유아실 역시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아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이용하는 임시적인 곳이다.
간절한 마음을 구하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그런 심정을 가져야 한다. 시인은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119:131)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를 바란다.
3. 그런가하여 확인하는 사람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했다. 말씀을 듣고 복습한 것만 아니라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말씀 선포자를 의심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바울이 오죽 잘 전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성경을 탐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는 것은 더 확신하고 애매한 것은 더욱 분명해졌다. 상대가 말해주는 대로 다 믿어 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확인하여 확신함으로 믿는 것이면 훨씬 힘이 생긴다. 무조건 믿는 믿음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것으로 소화하여 믿는 것은 더욱 좋은 것이다. 재확인하면서 진리를 확실하게 깨우칠 때 쾌감이 있다. 때론 이단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임 당하지 않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말씀을 듣고 되새김질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성경을 펴들고 대조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정말 좋은 습관이다. 대신 설교시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지 말라. 집에 돌아가서 한 주간 보내면서 살피고 또 살피라.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성경을 상고하였다는 의미다. 들은 설교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설교를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런가하여 반드시 상고해보라. 들은 설교를 재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은 의심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의 실수를 찾아내어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설교자도 본의 아니게 잘못된 설교를 할 수 있다. 설명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하여 상고하면서 그 모자람을 채우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내가 채울 몫이 있는 것이다. 좋은 성도는 들을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삶과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한다.
저는 성경 유적지를 방문하고 다녀와서 여행기를 써서 애굽과 이스라엘은 카페에 터키와 그리스는 블로그에 올렸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가이드 이야기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글로 정리했다. 정말 그런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책을 참고하면서 더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가이드의 설명도 다 믿을 수 없다. 성경적 바탕이 충분하지 않은 학생들이 알바 하는 경우도 있다. 홍해를 설명할 때 갈대바다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가 하여 살피다보면 우선 나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이 그런가 하여 다시 살피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결론
누가는 말씀 앞에서 베뢰아 사람들이 가진 세 가지 모습을 평가를 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드리기에 바탕을 가진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런가 하여 말씀을 상고하며 재확인을 했다. 우리 역시 베뢰아 사람들의 세 가지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기 바란다. 말씀을 받을 때 좋은 마음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 바란다. 간절함으로 말씀을 받기 바란다. 또 확신함에 이르기 위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펴들고 상고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즐거움을 누리기 바란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951&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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