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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없는 믿음(히11:17-19)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8. 10. 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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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없는 믿음(히11:17-19)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한 부분을 접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오직 이삭을 통해서 나오는 후손들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두 가지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언 듯 보기에 하나님은 서로 모순이 되는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하시고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만나면 상당히 당혹해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서로 갈라지고 거짓된 사상들이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실례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은 공의를 행사하셔서 사람들을 지옥이라고 하는 심판의 장소로 보내실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지옥은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속성에 전부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판단할 때 자신들이 원하는 식으로 판단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에 대한 것도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이삭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신체구조로는 도저히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자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렸습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아브라함의 고뇌가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7절에서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이삭을 통해 후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주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기전 부터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후손이 번성하고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에게는 이것이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 그에게 일어났던 인간적인 고뇌들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신의 아내 사라에게는 도저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아내가 이 일을 알았다고 하면 아브라함을 어떻게 대하였을까요? 아무리 자신의 남편이라고 하지만 독자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남편을 향해 미친놈이라고 당장 욕을 해댔을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려고 하는 일을 못하게 이삭 앞에서 자신을 죽이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을 대적했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남편이 미쳐서 자식을 죽이려고 한다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이뿐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설득했을 것이고, 사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인신제사를 원하시는 그런 이방신들과 같은 하나의 신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스스로 느끼는 그 괴로움이란 말로 다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짧게 받아들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한 인간의 고뇌를 드러내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경이 자세하게 한 인간의 고뇌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참된 신앙이란 인간 안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각자의 모든 삶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의 삶을 사는지에 대하여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염려들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히려 감사함으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간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염려와 그렇게 큰 고통의 고뇌 가운데 있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에 우리가 가진 염려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이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브라함의 믿음을 위대한 것으로 칭찬합니다. 믿음에 대한 내용과 그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모든 위대함을 돌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신앙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연약한 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이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위대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바치려고 한 것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19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시게 하실 줄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고뇌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하는 말씀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한 사람만 아이를 낳는 일에 문제가 있어도 아이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동시에 자신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신체적 구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번성할 것이라고 하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원하시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삭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만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 아무리 고민을 해도 아들을 드리라고 하는 이 시험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해결책이 눈앞에 보이기까지는 쉼을 얻지 못합니다. 이 시험을 이길 때까지는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쁨도 누릴 수가 없으며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런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는 믿음, 이것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고 계속 권고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부활의 생명으로 일으킬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환난의 삶속에서 오직 자신들이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지킬 수가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 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단지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증명하는 이유는 바로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아들 이삭을 드렸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225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들에게 우리가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리라고 말해줍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지만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이삭과 함께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면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도 당연히 우리가 믿는 믿음의 도리이며 사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을 가지고 죽음의 자리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고 자녀들과 부모들과 남편과 아내가 죽임을 당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성경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조상들을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 이미 후손들에게 증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행하셨는지를 모든 후손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들에게 참된 믿음을 주시기 위해 말씀하여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우리는 힘든 인생의 삶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온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을 가진 것은 자신의 위대함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고, 또한 자식을 가질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식을 주신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성도는 다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육적인 삶을 버리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날마다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모든 구원사역을 믿을 뿐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증거할 것입니다.

필립휴즈는 아브라함이 받은 이 시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흔들리기는커녕 사실상 그 믿음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의 불변성 및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부정할 수 없으시다는 것이 이전보다 더 크게 아브라함을 자극하는 사실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것이 쉬웠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삭을 드리기 위해 사흘 동안 걸었던 그 시간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참으로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필립휴즈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종했다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롬8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이 말씀의 어원이 의사가 독사의 독을 가지고 치료제를 만드는 것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독사의 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의사는 그 독으로 사람을 살립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일들을 하십니다. 인간은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머물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일들을 가지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을 당할 때가 한두 번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 보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서 약속된 것을 받는 것 보다 모순되는 일들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힘들지만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붙잡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좀 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붙잡는다면 우리는 막연한 신앙이 아닌 확실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날마다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고난당하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는지 확실해졌습니다. 오히려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자신들이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도 더 믿음의 확신과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성도들을 핍박하였던 수많은 사건의 현장에서 성도는 자신들의 생명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믿음은 필립휴즈의 말처럼 자신들이 믿는 믿음을 더 확고하게 해주었습니다. 스데반처럼 순교의 자리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다시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갚아주십니다.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이삭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도 이삭을 다시 주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리스도가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중요한 구원의 확신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의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모세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어린양을 친히 준비해놓으셨다고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지만 자신이 원하는 어린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진정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 모든 구약의 제사들이 다 완성되고 더 이상 드릴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음으로 믿으면 죄를 용서 받고 구원을 받으며 영생을 받습니다. 이 진리의 메시지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바친 이 사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진리의 말씀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증거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이 시험 가운데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았다고 하는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도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자신들이 가진 믿음 때문에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믿으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의 선물을 저와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사하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믿음은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고백하고 순종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믿음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삶도 모순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는 항상 진실 되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모순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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