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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1. 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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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 신앙에서의 결핍 가운데에는 경외”(敬畏)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마치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이 어느새 아빠로 바뀌면서 친구 같은 아버지는 긍정되어도, 근엄하고 조금은 무서운 아버지의 이미지는 소위 가부장적’(家父長的)이라 취급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처럼,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어도, 경외함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대 기독교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극심한 질병이나 경제적 파산과 같은 심각한 형편에 갑작스럽게 처하므로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그저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는 지니(genie)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경외라는 말이 하나님께로 사용될 때에는 대부분 두려움’(fear)을 말한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경외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출애굽기에서 율법의 두 돌판이 주어질 당시의 정황이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한마디로 전 12:13절의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Fear God)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는 말씀이야말로 구약에서 제시하는 사람의 크고 제일되는 목적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를 여호와께서는 선한 자로 여기시고 함께 하신다.

 

그런데 고전 10:31절에서 사도 바울은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 제1문에서 제시하는 사람의 제일되며 가장 높은 목적에 대한 답변의 증거본문으로 유명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특히 시장에서 파는 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의 문제)에 관한 실천적인 맥락에서 한 것으로, 이어지는 33절 본문의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말씀의 맥락에서 한 말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고전 10:32절에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다.

 

신자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의 유익을 구하는(24)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 것이요, 율법의 중요한 실천(22:39)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결코 추구할 수 없는 실천적 태도다.

 

이처럼 참된 율법과 복음의 교리는 결코 자기 머릿속 뉴런(neuron)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을 넘어 이웃인 신자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방대하게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구별하여 제외하는 가운데 율법과 복음의 교리는 자기 머릿속 뉴런에만 머물러 하나님의 교회에까지 거치는 한낱 사변(speculation)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게 구별하고 걸러내는 가운데서는 결코 유익을 구할 이웃이라곤 남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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