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과 문답에서 곧 발간될 ‘유스 디비눔’(Jus Divinum, 1647)은 국교회주의인 에라스티안파와 독립교회파, 그리고 주교제도에 대한 반박 가운데서 철저한 장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의 저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이거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주의신학과 정치를 따르는 인물들이었음은, 장로주의를 정의한 내용들의 맥락과 그 일치 가운데서 익히 파악할 수가 있는데, 다만 이미 의회가 기존의 보고서 외에 일체의 다른 견해의 제출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익명의 런던 목회자들로 저자를 뭉뚱그리고 있다.
그런데 유스 디비눔의 2장 후반부는 장로교회 정치의 치리회에 대한 신적 권위를 설명하는 가운데서, 장로교회가 얼마나 치리회와 회중을 분명하게 구별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즉 그 점에서 장로교회는 독립교회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흔히 치리장로들을 회중의 대표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장로교회에서 회중에게는 치리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의무가 부여된 것이 주된 성격이다. 그러므로 치리회(개별 당회와 노회)의 건전성은 장로교회의 회중들이 신뢰하고 따를 근거를 제공하는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며, 특별히 그 건전성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건전성을 넘어 성경에 충실한 의미의 건전성이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모든 치리회가 하는 회의의 성격은 단순히 조직을 운영하는 실무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신학, 특히 가장 성경적인 신학의 원리 가운데서 어떻게 실무적인 문제들을 판단하여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 거의 모든 장로교단들 가운데서 치리회의 건전성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의 장로교단들의 경우에는 치리회의 권위 자체가 이미 심각하게 붕괴되어 버려서, 사실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세속법정의 판결 외에 해결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장로교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부분 독립교회파인 회중주의교회들이지, 장로교회로 보기가 어렵다. 치리(혹은 권징)이 유명무실한 장로교회에는 신적 권위(Jus Divinum)이 부여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로교회의 회중이야말로 전적으로 치리(다스림)에 순복(순종)함이 마땅한데, 치리회 자체가 심각하게 부패하여서 전적 무능(total depravity)의 상태에 있으니 어찌 순복이 제대로 이뤄지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교회의 회중의 의무는 기본적으로 치리회의 치리에 대한 순복이다. 그리고 치리회의 의무는 성경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수종(ministry)이다. 그러한 기본 바탕이 없는 교회들이 절대로 장로교회일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치리회에 순종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는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고 간과하기가 십상인데,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가시적인 치리회에 대한 순종을 통하지 않고서는 본능적으로 무시되고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근거하는 정당한 치리회와 회중의 대표로서의 영적인 권세에 순종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요 파멸에 이를 죄악이라는 사실을, 모세와 이스라엘의 역대 지도자들에 대한 신적 권위(Jus Divinum)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너는 이것들을 명령하고 가르치라……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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