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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건전하게 생각하라”(롬 12:3)|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1. 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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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장으로 알려져 있는 고린도전서 13장 이후로 14장에서 사도는 방언과 예언에 관한 주제 가운데, 특별히 33절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성도들의 교회에서와 같이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하는 일에서도 차례를 따라 질서 있게 하도록 하고, 여자는 사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이 명백한 명령(37)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명령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에 근거한다. 사도는 오직 사랑에 근거해서 비로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a congregation)에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사도는 성령의 은사(gift)들과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로서의 교회의 직분들(28)을 언급하는데,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11) 은사(4)와 직분(5), 그리고 사역(6)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25)도록 하신 것이 사랑 가운데 서로 지체된 하나님의 교회의 마땅한 모습임을 말한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에게 일관되게 질서(하나님의 질서)를 전제하고 있는데, 그것은 로마서 12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롬 12:3절에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혹은 건전하게”) 생각하라고 하여,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한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서로 질서 있게 세워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서신들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 14:37)고 한 것으로 보건데, 그것은 결코 사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하는 항구적인 명령(perpetual commandment)이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권위의 근거인 성경에 근거하는 장로교정치를 바탕으로 해야 마땅한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그러한 질서는 깨어진지 오래다. 고전 14:34절에서 사도는 분명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했는데, 사도는 분명 창 3:16절의 맥락을 통일되게 적용하여 그 같은 질서가 결코 폐기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서도 바로 그러한 질서로서의 교회정치를 유일한 하나님의 법(Jus Divinum)으로 제시했던 것인데, 이미 많은 장로교단에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들이 공공연한 것이다.

 

사실 교회에 있어 가르치는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Government, 1645)와 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The Publick Worship of God. 1645)의 일관된 강조점이 목회직에 있으며, 칼뱅에 의해 초안된 프랑스 신앙고백(1559) 또한 교회의 본질에 관해 다루면서 가장 먼저 고백하는 것이 바로 교회에 필요한 목사”(25)에 관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권위로 세워진 교회의 질서는 신성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므로 목사 없이 교회는 존속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치는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에 관련한 교회의 질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서 구제하는 일로 세운 직분인 집사(a deacon)는 성실히 구제하는 일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하고, 다스리는 일로 세운 직분인 장로(ruling elder) 또한 부지런히 다스리는 일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건전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일로 세운 직분인 목사는 가르치는 일에 관하여, 그리고 다스리는 일로 협력하는 일 외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만 한다. 그것을 넘어 구제하는 일이나 재정에 관여하거나, 심지어 통상적이고 항존적인 직무 외에 특수하고 일시적인 직무인 사도, 선지자, 능력을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방언 말하는 자를 쫓는 것은 질서에 역행하는 불법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치리장로나 집사가 가르치는 직무를 교회에서 수행하는 것 또한 명백히 불법이다. 하물며 고전 11:16절에서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고 했으며, 고전 14:37절에서도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분명하게 말한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사도는 앞서 이르기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사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4-25)고 했으니, 교회의 모든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이 각각 하나님께 받은 귀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러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오히려 그것이 무질서로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 교만에 다름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근원적인 질서를 간과하면서 개혁을 말하는 교회의 모든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이야말로 개혁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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