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스스로 “분리”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그리 길지 않는 100년이 좀 넘는 역사 가운데서 수 없이 많은 “분열”의 역사가 편만했었다. 몇몇 교단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로교단들이 무수히 많은 분리(분열)의 흑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60년가량의 비교적 짧은 장로교단의 역사를 지닌 DS교단 또한 몇 차례의 분열을 겪은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열의 죄는 주로 목회자들에 의해 자행되며, 필자가 지난 한국○○신보 제782호 9면에 게재했던 “분리의 죄에서 어떻게 돌이킬 것인가?”라는 글에서 밝힌바와 같이 칼뱅의 제네바 교회 법규에서 이단의 죄 다음으로 언급하는 죄로서, 목사로서 전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죄에 속하는 무거운 죄악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심각한 죄에 대해 무감각한 한국 장로교단들의 목사들과 이러한 심각한 죄를 범하는 목사들이 발생하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장로교단들의 부패가 그야말로 심각한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죄를 거의 모든 장로교단들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분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 죄인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자생적(自生的) 장로교단”임을 표방하곤 하는 DS교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장로교회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만연한 가운데 있는데, 그처럼 자생적인 장로교단임을 천명하는 것은, DS교단이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라고 하는 하나의 교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단적으로 시사하는 심각한 발언일 뿐이다. 특별히 장로교단의 정체성 혹은 정통성이란 결코 “자생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원리 가운데에 있는 것으로서, “역사적 장로교회”라고 하여 장로교회의 한 원리 가운데서 종교개혁의 시대를 넘어 중세와 1세기, 그리고 신약시대의 교회와 구약시대의 교회를 아우르는 하나님 안에 있는 한 교회로서의 장로교회를 천명하는 것이야말로 장로교단으로서의 DS교단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단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생적 장로교단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장로교단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정확히 반대되는 비상식적인 발언인데도 아직까지 DS교단에서 자생적 장로교단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장로교단 혹은 교회의 정체성과 정통성의 원리에는 중요한 교회사적 사건들이 내포되어 있는데, 특별히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es)들이 형성되었을 때에, 그 교회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스스로 분리한 교회들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출교당한 교회들로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종교개혁의 사역자들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파문되거나 출교되었었는데, 위그노(프랑스의 장로교도)들이 고백한 프랑스 신앙고백(1559) 제3조에서 나열하고 있는 바와 같은 성경의 목록(현재 우리들이 지닌 성경과 같이 66권의 목록으로 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개혁된 신앙의 입장에 대해,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 공의회 교령은 “만일 누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예로부터 읽혀져 왔고 라틴어 불가타 고전본에 실려 있는 대로(외경이 포함된 대로) 이 책들 전체를 한 부분도 빠짐없이 거룩한 정전(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앞서 언급한 전승(성경 외의 사도적 전승들)을 고의로 업신여긴다면, 그는 파문(출교)받아야 한다.”고 했다. 바로 그러한 로마 가톨릭의 교령들에 따라 많은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이단처럼 취급되어 파문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로마 가톨릭과 다른 성경적 신앙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장로교회와 사역자들이 그들에 의해 파문되었던 것이지, 그들 스스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분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자기들 나름의 “순수 교회”를 추구했었던 재세례파들은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표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그들 스스로 분리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은 “악인들이 성례의 교제에서 배제되지 않는 곳은 어디든지, 거기서 교제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분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러한 재세례파의 주장에 대해 칼뱅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찬이 악인들과 부당한 자들의 참여로 더러워지는 것을 볼 때에 매우 슬퍼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라도, 교제를 거부하고 자신을 성찬에서 제외시키는 것(기존의 교회에서 분리하려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 오히려 그 곳에 거주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을 들으며 성찬 받기를 언제나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칼뱅은 재세례파의 분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여러 성경 본문들을 근거로 하는데, 특히 마 13:24-30절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의 비유를 언급하며 그들의 주장을 따르지 말도록 했다. 즉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마 13:29-30)는 말씀대로, 교회에 불건전하고 불순한 점이 있다고 해서 스스로 분리하는 것은 명백히 주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죄(또한 민수기 16장의 고라에게 속한 사람들과 같은 죄)라고 한 것이다. 더구나 칼뱅이 제네바 교회 법규에서 “목사로서 전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죄”로서 아주 무겁게 다룬 것이 바로 “분리의 죄”이니, 어찌 DS교단의 분열을 주도한 자들(목사와 장로들)의 죄를 엄중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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