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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the Reformation)은 “혁신”이 아니다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2. 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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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이라고 번역된 영어단어 “Reformation”은 흔히 혁신”(innovation)이라는 의미로 잘못 오해되곤 한다. 그리하여 종교 개혁을 통해 시작된 개신교란,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의 많은 문서들 그 가운데서도 공식적인 신앙상의 문서라 할 수 있는 신앙고백과 교리문답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로마 가톨릭의 문서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중요한 신앙의 골자에 있어서 개신교의 신앙고백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천명하는 교령들과 기본적인 구조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종교 개혁을 통해 새롭게 시작한 개신교회들이 고백하는 신앙은 아주 중요한 개혁의 요소들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들이 천명하는 교령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는데, 그러한 개혁의 요소에 있어 핵심적인 양상이 바로 원천(근본)으로 돌아가라”(ad fontes)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천에 해당하는 신학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 신학의 내용과 요소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이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 바로 종교 개혁의 기본적인 원리인 것이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에서 일어난 반동 종교 개혁”(‘Catholic Reformation’ or ‘Counter Reformation’)은 그 양상에 있어서 신학적인 원리에서의 재정립이라기보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윤리적(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제도적 개혁에 치중한 것이었다.

 

일례로 트렌트 종교회의(공의회)와 이후의 일련의 종교회의 문서들을 보면, 초반부 약간의 신학적 재천명 이외에는 대부분이 제도적인 면과 실천적인 점들에 대한 개선책을 교령으로서 발표하는 양상이다. 특히 트렌트 종교회의의 경우에는 그나마 앞부분에 여러 신학적 내용들에 대한 재천명이 있지만, 4차에 걸친 라테란(1123) 공의회나 리옹 공의회(1245)에서 발표된 교령들의 경우에는 거의 전부가 실천적이거나 제도적인 것들로서, 기존의 문제점들에 대해 새롭게 제도적인 보완을 이룬 것들이 전부이다.

 

그런데 16세기 대표적인 장로교회 신앙고백서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신앙고백(1559)을 보면, 초반부 제1조에서 11조까지의 내용이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 공의회의 교령들과 상당히 유사한데, 대표적으로 제1조의 하나님에 관한 고백과 제3조의 성경에 관한 고백으로서의 정경목록의 나열방식과 구조가 매우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문안들을 살펴보면 트렌트 교령과 프랑스 신앙고백의 신조들 사이에 분명 차이점이 있으니, 예를 들어 정경목록에 있어 트렌트 교령이 여러 외경들을 함께 나열한 것에 반해 프랑스 신앙고백은 일체 외경의 목록을 포함하지 않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틀은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 교령을 크게 바꾸지 않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 개혁의 양상은 17세기의 여러 신앙고백이나 교리문답들, 그리고 장로교회들의 예배모범이나 교회정치모범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채택한 여러 문서들을 보면, 근본적인 신앙의 원리에 있어서 다르지 않은 내용이나 문구들에 대해서는 심지어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형식조차도 거의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그것이 원천(근본)적인 신앙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면 그것을 그대로 따르되, 다만 다르게 변질되거나 오류인 부분들을 원천적인 신앙의 원리로 되돌린 것이 큰 특징인 것이다.

 

이처럼 종교 개혁의 기본적인 맥락은 혁신이 아니며, 그러므로 종교 개혁에 의해 다시 새로워진 교회인 개혁 교회와 그 구성원들인 개혁신자들을 리폼드”(reformed)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개혁하는 자들이 아니라, 개혁한 자들이 바로 종교 개혁자들이요 종교 개혁된 교회다. 따라서 개혁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고 하는 말도, 늘 새로운 제도와 형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늘 개혁된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ad fontes)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개혁신자들은 끊임없이 개혁된 신앙(신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실천하기를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실천에 있어서는 개혁신자들 스스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아담의 후손들인 우리들의 육신도 스스로 개혁된 지점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성령님의 내주(Immanuel)와 역사하심 외에 달리 그 능력을 취할 방편이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성령의 내주와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뤄진 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역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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