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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1-4 / 고난 속에 숨은 뜻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9. 6. 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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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1:1-4 / 제목 : 고난 속에 숨은 뜻


베다니 마을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이렇게 3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정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주 이 가정에 방문하셔서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도 가르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리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또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사람 중에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1.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본문에 주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3번이나 기록했습니다. 3절에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5절에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36절에는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3절은 나사로의 누이들이 한 말입니다. 5절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한 말입니다. 36절은 나사로 동네에 사는 유대인들이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사로는 자타가 공인할 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고 온 동네 사람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자 그 누이들은 주님께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3절에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 말에는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는 의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들도 병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병도 안 걸리고, 실패도 안하고, 어려움도 안 당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병들 수 있고,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던 요셉과 다윗도 고난의 일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욥도 큰 환난을 당했고, 심지어 주님 자신도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좀 바꾸어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온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흔들리고 넘어지는지 모릅니다. 몸에 병이 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에 실패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응답이 안 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마귀는 환난과 곤고와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믿어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배신감이 들게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건강이나 재물이나 사업이나 출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 외에 다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거나 환난이 닥치면 주님의 사랑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환란과 시험을 이깁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나사로가 병이 들었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임을 내다보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건강한 사람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권세 있고, 돈 많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병든 나사로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질병과 죽음을 통해서도 영광 받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자를 통해서도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배운 사람도 쓰시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을 통해서도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건강한 사람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지만 병든 사람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영광받기 원하십니다.


 

3. 주님은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습니다(6절). 이것은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다만 마르다와 마리아가 생각하는 시간과 주님이 생각하는 시간이 달랐을 뿐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듣고도 주님이 늦게 오신 것을 원망했습니다. 충분히 오시고도 남을 시간에 주님은 오시지 않고, 주님이 오시지 않는 동안에 나사로는 죽었고, 주님 없이 장례식까지 치르면서 이 여인들은 몹시 섭섭했습니다. 이들은 나사로가 병든 것 때문에 원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늦게 오신 것을 가지고 섭섭해 하였고, 주님이 늦게 오신 것 때문에 원망스러웠습니다. 주님은 종종 우리의 생각보다 늦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으시고 주님이 정하신 시간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볼 때는 늦게 오신 것 같지만 주님은 가장 적절한 시간에 오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실 때는 더 큰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이사야 30:18).
첫째.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5절에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도 굳건해지고, 제자들의 믿음도 굳건해졌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병 고칠 것은 믿었으나 죽은 자를 살릴 것으로는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림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주님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믿음이 더 좋아졌고 부활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늦은 것 같아서 원망했는데 오히려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주님이 일찍 도착하셨다면 맛볼 수 없는 은혜입니다.



둘째. “많은 유대인이 믿었으나.” 45절에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이적을 통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파급효과가 엄청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 사건을 통해서 은혜를 주고 있습니다. 나사로 한 사람의 질병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얼마나 큰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졌습니까?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기 원하십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기 원하십니다.


대전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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