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태복음 26장 31-46절/일어나라 함께 가자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20. 4. 7. 07:54

본문

본문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기록한 고난장입니다. 주님이 당한 고난 중 한 가지는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십니다.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 마지막에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버림을 당하신 주님은 홀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1. 다 나를 버리리라
31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십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우리 믿음도 아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이 이것을 미리 말씀해주신 것은 제자들이 닥쳐올 환난을 준비하고 믿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후에라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훗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했습니다(75절). 문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경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과 결심은 귀하지만 신앙이 인간의 결심과 장담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할 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했어야 합니다. 삼가조심 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이 피가 될 정도로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졸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큰소리치고 장담했지만 실제로 환란과 시험이 왔을 때에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오기 전 믿음을 준비하고 영적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지금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들을 때는 그 말씀을 무시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여기고 코웃음 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환난이 닥치고 문제가 생기면 퍽퍽 쓰러집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2. 함께 있기를 원하심
주님께서 12제자를 불러 제자로 삼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가복음 3:14-15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세우신 이유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라는 것입니다. 종처럼 일이나 시키고 부려먹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주님과 사귀며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왕의 왕, 전지전능하셔서 전혀 부족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인 교제와 사귐의 대상자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9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예수님은 실제로 제자들을 3년 반 동안이나 함께 사셨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생활했습니다. 기도할 때도 데리고 다녔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 이적과 능력의 현장에도 함께 했습니다. 마태복음 26:18에서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20절에는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23절에는 ‘함께’ 그릇에 손을 넣고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이렇게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하다보면 선생님을 가장 확실하게 닮을 수 있고 가장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제자 훈련은 주님과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38절에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께서는 ‘함께’ 깨어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졸며 잠을 잤습니다. 그러자 ‘함께’ 깨어있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40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6절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기도를 마친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함께 깨어있는지는 못했고 함께 기도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고난과 십자가를 향해서 함께 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고난과 아픔의 자리라도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있어준다면 고난의 길도 기쁨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자리에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님의 이 희망도 부서지고 맙니다. 주님이 붙들리자 제자들을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56절). 인생을 살다보면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은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그냥 곁에 있어만 주어도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아무 말은 안 해도, 어떤 도움을 주지 않아도, 그냥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런 형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함께 먹고 함께 자던 제자들, 함께 영광도 누리고, 함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던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정말 함께 있어주었으면 하는 순간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함께 해서는 안될 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엉뚱한 곳에 가서 엉뚱한 사람과 함께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47절에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함께 은밀한 거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주님을 잡는 사람들과 함께 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56절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떠했습니까? 주님을 죽이는 자들의 하속들과 함께 앉아있습니다. 58절에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그러다가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69-74절). 베드로는 함께 해서는 안될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해서는 안될 말을 하게 되고, 해서는 안될 일도 함께 하고 맙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왜 거기에 갔습니까? 왜 그 사람과 함께 앉았습니까? 돈 때문입니까? 두려움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이 앉아 있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과 함께 있는 사람을 점검하십시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왜 이 사람과 함께 앉았는가를 생각하십시오. 누구와 함께 앉아있는지를 살펴봅시다. 시편 1:1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3. 주님의 원하시는 것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기대에 어긋났고 주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런 제자들이지만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기를 소망했습니다. 29절에 보면 주님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제자들과 함께 앉아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마실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흔들리고, 도망가고, 주님을 부인하기도 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주님께 가까이 하려고 힘쓰고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버리고 도망갈 때도 있습니다. 넘어지고 실패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번 한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과 함께 하면 영광도 함께 누릴 날이 옵니다. 디모데후서 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잠깐의 세상 영광을 위해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함께 하는 길에만 진정한 영광이 있습니다. 고난의 길에 함께 해야 영광의 자리에도 함께 앉을 수 있습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