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았습니다. 지옥 같은 곳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낙망에 빠져 있을 요나에게는 참으로 큰 은혜이고 희망입니다.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시고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는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셔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다시 한 번의 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이 임함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두 번째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했던 요나에게 더 이상 말씀을 주시지 않고 침묵하실 수도 있습니다. 불순종했던 요나를 더 이상 선지자로 사용하지 않고 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요나를 불러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욥기 33:14-16에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든지 깨닫게 하고, 어떻게든지 믿게 하고 순종하게 만들어서 복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온 율법의 말씀이 신명기에 보면 다시 나옵니다. 신약에 보면 사복음서가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과 행적을 4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했습니다.
요나에게 임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2절에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일어나, 가서, 선포하라” 하셨습니다. 그동안 요나는 앉은뱅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드러누워 잠만 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러나’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요나를 다시 불렀습니다. 요나가 싫다고, 안하겠다고, 도망치면, 다른 사람 보내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요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어서 니느웨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요나 없이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 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어코 요나를 쓰시려고 한 것은 요나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라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실 일, 다윗을 통해서 하실 일, 솔로몬을 통해서 하실 일, 다 정해놓으셨습니다. 베드로 통해서 하실 일, 바울을 통해서 하실 일이 각각 다 있습니다. 요나를 통해서 하실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도 있습니다.
두 번 은혜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금식 기도하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진노하며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을 만들어 오라고 하시더니 다시 말씀을 기록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두 번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사랑하시고,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소중한 일을 맡기실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실패한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 얼마나 다행이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함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요나는 즉시 일어나 니느웨로 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명을 피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여호와의 말씀대로”라는 말씀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곧장 순종했습니다. 요나서 1장은 불순종하고 도망치는 요나를, 2장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요나를, 3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요나를, 그리고 4장은 다시 불평하는 요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장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요나가 순종한 것은 참으로 회개했다는 증거입니다. 요나가 처음부터 순종했더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뱃삯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큰 풍랑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면 즉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할 때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도 군소리 없이 순종합니다. 그리고 큰 복을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불순종하고 거역하다가 징계를 받고 나서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꼭 매를 맞고 나야 정신을 차리고, 징계를 받은 후에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요나가 그런 사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징계를 받고 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망하는 사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 같은 사람입니다.
4절에 보면 요나는 드디어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의 전도 내용은 간단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보태거나 빼지 않았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말씀만 반복해서 전했습니다. 무슨 이적이나 능력을 행한 것도 없습니다.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니느웨 성이 무너지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것이라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성 사람들은 즉시 회개했습니다. 요나의 전도는 큰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이런 회개운동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3. 니느웨 백성들이 믿고 회개함
첫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5절). 니느웨는 앗수르 나라의 수도입니다. 따라서 니느웨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즉시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요나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요나의 말을 기분 나쁘게 들었으면 얼마든지 거역하고 반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친놈이 떠들고 나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시하고 배척하거나 핍박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천사가 롯에게 찾아와서 소돔성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할 때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홍수 심판을 경고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벌벌 떠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둘째.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5절에 보면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회개하며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조건 엎드려 자기들이 지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백성들에게서 시작된 회개운동은 왕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왕도 회개합니다. 6절에 보면 니느웨 왕은 백성들에게서부터 들려오는 소식만 듣고 회개했습니다. 왕은 보좌에서 내려왔습니다.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니느웨 왕은 온 나라에 금식을 선포하고 범국민적으로 회개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사람 뿐 아니라 짐승인 소떼나 양 떼에게도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짐승들도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만큼 왕의 의지가 강하고 그들의 회개운동이 철저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고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악을 그치고 죄에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삶을 바꾸었습니다. 입술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악에서 돌이키는 일을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9절에 보면 그들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뜻을 돌이켜 용서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이방인들이, 성경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한 것입니다. 니느웨 성의 회개는 모든 백성이 참여한 집단적 회개운동입니다. 4장에 보면 니느웨 성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전체 숫자인지 모르지만, 전체 숫자라 해도 한번에 12만 명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회개한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선지자들이 수없이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성 사람들은 요나가 한번 말씀을 듣고 온 성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마태복음 12:41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말씀을 외쳐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요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직접 와서 말씀을 전하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며 책망하셨습니다. 회개는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죄를 깨달을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회개가 되면 죄를 용서 받게 됩니다. 회개가 되면 구원을 받습니다. 회개가 은혜이고 복입니다. 요나서는 책 전체가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서 2장에는 요나가 회개하고 죽을 자리에서 살아나는 말씀이 나오고, 요나서 3장은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고 멸망에서 구원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개인이나 국가나 용서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요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심
10절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여기에 ‘하나님께서 보시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그들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가 참된 것임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뜻은 원칙없이 이렇게 저렇게 수시로 변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는 말씀은 확정적인 선고가 아니라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받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으면 니느웨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에스겔 18:23).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하고 도망치던 요나도 회개하니 용서하셨습니다. 니느웨 성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멸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자 뜻을 돌이켜 용서하셨습니다. 이방인이지만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뜻을 돌이켜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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