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예수님이 한 중풍병자를 고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한 병 고침의 문제가 아닌 주님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주님이 병을 왜 고치시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지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문 앞에까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기회를 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1.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옴
3절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중풍 병은 신체의 일부나 또는 몸 전체가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는 말하는 것도 어렵고, 걷는 것도 힘들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환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왔습니다. 이 네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 중풍병자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혼자서 하려고 했다면 어려웠을 일인데 네 사람이 힘을 합치니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에까지 왔습니다(4절).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으로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네 사람은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침상 채로 달아 내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남의 집의 지붕을 뜯는 것은 큰 비난을 받을 일입니다. 고쳐주려면 상당한 비용지출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이런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 외에는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난관을 극복하는 큰 믿음입니다. 만약 이들이 난관 앞에서 포기하고 말았더라면 중풍병자는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지금도 난관이 있습니다. 그때 믿음을 가지고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2.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심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5절에 보면 주님은 이 네 사람과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으며 예수님께 나아가면 병을 고쳐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난관이 있을 때 극복하고 장애물이 있을 때 뛰어 넘으면서 주님께 나왔습니다.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될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중풍병을 고쳐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하고 격려해서 주님 앞에 나오게 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함께 마음을 모아 중풍병자를 돕는 네 사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돕는 것은 훨씬 수월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복지 제도는 대부분이 그런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5절). 주님은 병을 고치러 온 사람에게 먼저 죄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중풍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의 원인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죄 문제까지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통해 주시는 주님의 중요한 가르침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육체적인 문제나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중풍병자의 속을 보셨습니다. 마음과 내면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주님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에게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죄입니다.
그리고 병의 궁극적 원인이 죄였습니다. 모든 병이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죄 때문에 병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죄 문제를 해결하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인생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우리는 문제 있을 때마다 먼저 영적인 문제를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을 어긴 것은 없는지,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았는지, 내면에 숨어 있는 죄는 없는지,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하는지, 성도와의 관계는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삶에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 만나서 죄 사함 받고 병도 고쳤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우리도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으면 영적 평안과 즐거움이 넘칩니다.
3. 서기관들이 마음에 생각한 것
6-7절에 보면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한 것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불평하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있는데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한다고 말한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율법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오신 메시야인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중의 한 분이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4. 예수님은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
8절에 보면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에게 물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는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하는 것도 쉽고 문둥병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주님 자신이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인 것을 알게 하려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 치유 사건을 통해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는 것을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하게 병만 고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11-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어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중풍병자는 벌떡 일어나 상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나갔습니다. 올 때는 상에 실려 왔는데 갈 때는 걸어서 갔습니다. 병 고침 받고, 죄 사함 받고, 새 사람이 되어서 갔습니다. 중풍병자는 주님을 만나고 큰 복을 받았습니다. 병자가 일어나서 자기가 누워 있던 상을 들고 나간 것은 그의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증거이며 뿐만 아니라 몸이 회복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며 기적입니다. 죄 사함이 중요합니다. 육체적 질병보다 심각한 문제가 죄입니다. 나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육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적 치유가 먼저입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두려움, 염려, 걱정도 다 죄로 인한 것들이 많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이 되면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12절에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이것은 군중들은 반응입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는 사건은 이렇게 여러 가지 내용들이 담겨있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중풍병자와 같은 죄인들입니다. 우리 주위에 중풍병자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범죄와 질병과 실패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예수님께 나올 수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처럼 우리가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용사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육신적인 문제 즉 중풍병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힘을 모아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옵시다. 많은 사람을 복 받게 만드는 일을 합시다. 우리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고 선한 일을 힘씁시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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