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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차.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9. 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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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강설> 24주차.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2020. 6. 14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4:11~12)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9:24)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1. 믿음을 뜻하는 성경적 표현들

 

성경에서 믿다라는 동사, 아만이 처음으로 쓰인 구절은 창 15:6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이 단어는 여러 의미로 쓰였습니다.

~ 먼저 확고해지다’ ‘신실해지다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위와 나라가 견고할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견고하다라는 뜻으로 아만이 사용되었습니다.

 

네 집과 내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6)

 

~ 다음으로 신뢰하다’ ‘믿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때 하나님이 하신 기적적인 일들을 목격하고 드디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14:31)

 

이외 동사 바타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에 기대다’ ‘신뢰하다’ ‘믿다라는 뜻으로 이 동사는 단순한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런 믿음에 수반되는 형통함에 대한 확신에 찬 신뢰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시편에서 무려 50회나 사용되었는데 주로 다윗의 시에 많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3:5)

 

신약성경은 구약의 아만이나 바타흐등을 동사 피스튜오로 번역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만 약 240회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명사로는 피스티스가 있습니다. ‘피스튜오는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 ‘~에 대한’, ‘~을 향한’, ‘~에 관한믿음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특히 이때엔 헬라어 전치사 에이스(~안에), 혹은 과 함께 사용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11:22)를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Have faith in God”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믿음은 다른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믿음은 가짜 믿음이요 일시적이며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 다른 용도는 헬라어 전치사 프로스와 함께 ‘~을 향한믿음으로 쓰입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8)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다 구원을 받는 믿음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나중에 이들이 믿었던 것을 두고 하나님은 광야에서 백성들의 근본적인 불신과 거역함으로 그들을 멸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4:11~12)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9:2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고 물을 내어 갈증을 해소시키고 먹을 양식까지 공급하셨으나 백성들은 계속해서 범죄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자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불같은 진노를 행하였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라”(78:21~22)

 

이런 것을 두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의 백성들에겐 참된 믿음이 없었다고 해석합니다. 구약신학자인 닛슨knudson구액에서는 믿음에 대해 비교적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믿음에 대한 증거들은 차고도 넘칩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의 주장에 미혹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 참된 구원의 믿음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경의 많은 인물과 사건들에서 구원 얻는 믿음의 사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고선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1) 아벨의 믿음

~ 믿음의 본질은 구약 역사 초기의 한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4:4~5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재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재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겉으로 볼 때 두 형제는 똑같이 자신의 직업에서 나온 첫 결실로 재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개혁신학적 해석은 히 11:4를 근거로 아벨은 가인과 달리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제물을 드린 것으로 일치된 견해를 보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2) 아브라함

~ 다음으로 아브람의 믿음이 좋은 본보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후손과 땅을 두기로 약속(언약)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12:8, 13:4). 훗날 하나님은 언약을 갱신하시고 아브람에게 아들 하나를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15:4).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아만의 히필형)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확신이자 인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구원 얻는 믿음의 모범으로 칭송합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맣는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라.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4:17~22)

 

3) 놋뱀 사건(21:9)

~ 세 번째 사례는 구약 민수기에 기록된 놋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사사건건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진노하시어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기도하니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고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병을 고치는 데 어떠한 인간적 의료행위나 처방이 개입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장대에 달린 놋뱀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해석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소망하는 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4) 선지자들의 외침

~ 이사야 선지자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 왕들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자 불안해하는 아흐스 왕에게 믿음이 없으면 굳게 서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7:9)

 

~ 예레미야 선지자는 믿음이란 확신에 찬 신뢰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7)

 

5) 신약성경

~ 신약성경에서 구원 얻는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과 그분의 구원사역에 대한 지식이 먼저 요구되고 있습니다.

~ 특히 사도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기초지식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삼위 하나님이자 말씀이시고(1:1) 참빛(1:9)이시며, 약속된 메시아이시며(6:69, 요일 5:1),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신 성육신(11:42, 17:8, 21)으로 인성(요일 4:2)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11:27, 요일 4:15)이심을 믿는 것이 참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 바울서신에서 구원 얻는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바른 신앙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등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반포하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 자체가 진리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진리를 믿는 것이며 이것이 참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사역과 말씀을 이해하지 않으면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믿음을 단순한 어떤 사실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주님이 반포하신 진리의 체계 즉, 기독교의 교리 체계에 대한 이해가 믿음의 중요한 요소임을 주지시킨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믿는 분에 대해 모호하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믿습니다할 때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믿음이 아니라 다른 것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이것들을 정리하면, ‘구원 얻는 믿음에는 최소한 교리적 이해와 지식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최소한의 교리에 대해 개혁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죄의 죽음’, ‘무덤에서 부활하심’ 3가지 교리라고 말합니다.

~ 분명한 것은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이 하신 사역을 믿는 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3가지로 정리하면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성육신의 교리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어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십자가 속죄의 교리와 죽으신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교리가 구원의 가장 핵심적인 3대 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교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보석 중에 보석이며 오직 성경에만 계시되어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모든 구원의 길은 헛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단 한 번도 구원의 길이 제시되지도 않았고 그들 스스로도 그런 구원의 길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이외 그 어떤 인간도 내가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무엇인지도 모르던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3. 믿음에도 정도가 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받아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생이란 몸이 죽고 난 다음에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시어 내주하심과 동시에 시작된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었다고 하여 우리가 아무런 노력없이 방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이 당에서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우리가 받은 믿음을 더욱 장성한 분량으로 키우는 일에 평생에 걸쳐 분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믿음에도 정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다고 증언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14:1)

 

육신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듣느니라”(14:17~18)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5:19~21)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4. 결어-가장 이상적인 믿음

 

무엇보다 구원 얻는 믿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증언하는 말씀을 다음의 구절이라 생각하면서 이 구절을 가지고 하나님의 비밀한 구원의 은혜를 함께 나눌까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1)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 다른 구절에서는 성령님을 언급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바로 믿음의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알다시피 성령님은 주님의 이루신 속죄의 효력을 각자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대신에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그 믿음을 주실 수 있도록 모든 사탄의 잠금장치를 다 해체시킨 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다

~ 여기서 사랑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언급하였듯이(3241~43)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믿음이 가장 기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 없는 사랑, 믿음없는 소망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랑은 가짜 사랑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믿음의 사랑 안에서 뿌리가 내려지고 터가 굳어진다고 함으로써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의 실체를 예리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3)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알고

~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하나는 지식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향해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백이면 백 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풍성한 지식을 요청합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풍성한 사랑에서 시작되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믿음과 지식과 사랑의 면모들을 보세요.

~ 4가지 방향이 제시됩니다. ‘너비, 길이, 높이, 깊이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믿음과 지식과 사랑을 대입시켜 보세요. 이것은 우주적 규모’, ‘무한의 세계혹은 신의 세계입니다. 이 규모와 이 세계에 해당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한 마디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우리가 이 무한대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임을 주지시킵니다. 그렇다면 사도는 왜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이 목표를 향해 가라고 강조하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성령님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이 무한의 세계, 너비, 길이, 높이, 깊이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겐 한계가 없습니다. 믿음과 지식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지식과 사랑을 무한한 수준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이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도의 의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 어느 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아름다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찬송이 될 것입니다. 마치 자녀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대문 밖까지 나와 자녀를 온몸과 마음으로 영접하는 부모처럼,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두 팔을 벌려 당신의 자녀들의 성공을 온전히 기뻐하시고 큰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 날을 고대하고 소망하며 오늘도 당신의 믿음의 여정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출처] <구원론강설> 24주차.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2020. 6. 14 (바로선개혁교회) | 작성자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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