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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주차. 믿음으로 사는 것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9. 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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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 강설> 26주차. 믿음으로 사는 것 2020. 6.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6:44)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언약이니라”(55: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느니라:(6: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은혜로 말미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믿음을 선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엡 2:8이 이를 잘 증언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에 범죄한 인간이 용서를 받고 회심을 하고 정결케 되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 안에 구원을 받을만한 어떤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잠시 길을 멈추시고, 지금 하시던 일에서 손을 내려놓으시고 숨을 가다듬은 다음 샘의 근원을 떠올려 보세요. 그곳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수 강을 바라보세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바라보세요. 그 은혜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상상해 ㅂ세요. 누가 능히 그러한 경지를 측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 선하신지 하나님의 이름도 선하심(good)이란 단어를 줄인 말(God)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게 샘물이 영생수를 쏟아내듯이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사랑과 선하심이 있습니다. 인간이 진멸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의 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악의 구렁에서 구출을 받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 아득히 깊은 구렁에 갇혀 신음하고 있던 우리를 향해 믿음의 밧줄을 던져 그 밧줄을 붙잡은 자들을 새로운 자유의 세계로 구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근원은 오직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 역사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소개한 본문 요 6:44처럼 누구도 하나님이 이끌지 아니하고선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소리쳐야 합니다.

 

너희는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자전거나 손수레(리어카) 등 수동으로 다니던 시절에 발명된 기관차를 상상해 보세요. 전에는 언덕길을 올라가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땀을 흘려야 헸지만 기관차는 기적소리와 함께 가벼운 몸짓처럼 언덕길을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기관차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 기관차는 여러 화물칸들이 연결되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들을 연결하는 체인(chain)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이 믿음의 체인에 묶여 지금 천국행 열차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쳐 외칩시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구원입니다!!!”

 

2. 믿음의 3요소

 

그런데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지식’(knowledge)입니다.

~ 중세 카톨릭교회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믿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다고 여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이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느냐는 허황된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믿음과 지식은 비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사람은 먼저 어떤 사실에 대해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기 위해선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입니다(10:12).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55:3)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복음의 말씀입니다.

~ 또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1:17)고 하였습니다. 앞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요 뒤의 믿음은 우리가 키워가야 할 믿음입니다. 성경을 찾아 하나님에 관한 여러 지식들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성경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한 도를 배우고 익히십시오. 시대마다 사람들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그리된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를 알라”(6:3)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성 주시는 이십니다(11:6).

~ 무엇보다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과 말씀과 뜻과 메시지를 주목하고 열심히 배우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인간의 자리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요 놀라운 은혜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과 차별되는 것입니다. 우상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모든 섬김을 강요하고 헌신을 강요하고 희생을 요구하지만 섬기는 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일시적인 만족이나 마음의 위로, 쾌락, 안전, 번영으로 잠깐 미혹시키다가 끝내 멸망의 자리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조건과 상황 속에서 오히려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우리보다 훨씬 더 크신 고통과 고난과 죽음을 맛보시고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 그리스도를 배움에 있어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모범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회심 이후 고향 다소 등에서 칩거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공부했습니다. 이윽고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느새 그는 초대교회의 최고의 신학자이자 선교사이자 목회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전 14:38)라며 지식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또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세상적인 지식들을 다 폐기 처분하고 세상에서는 되레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4:18)

 

~ 그러므로 믿음은 지식에서 시작하고 지식을 먹고 자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 완전히 교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이번에 교회의 제 가정과 교회의 일을 함께 겪으면서 교리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교리가 바로 세워지지 않으니 바람이 불 때 가지가 꺾어지듯이 결정적일 때 쉽게 오해하고 판단하고 하루아침에 변심하고 등을 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보여지는 부분이 있고 가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천천히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지식마저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알아야 하는 일과 깊이 있게 천천히 녹이듯이 채워야 하는 것들이 서로 다릅니다. 무엇보다 교리적 지식은 어떤 일을 대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폭넓은 이해의 관점과 다각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도웁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교리적 지식을 갖추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요소는 동의’(belief)입니다.

~ 이제 믿음의 다음 단계는 자신이 배운 지식을 스스로 동의하는 절차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지식의 선물이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확신도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두드려 보셔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배운 지식에 이끌리고 잇는지 두드리고 두드리면 비교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저 성경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내용인가를 비교해 보시도 옳다고 여기셔야 합니다. 이때 당신의 진실한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으로부터 이 교리의 진실함을 배우고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말씀이 그의 성령으로 분명하게 내게 말씀하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는 것을 동의하십니까? 이제 배운 교리적 지식들을 하나씩 확인해 봅니다.

 

당신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님이신 줄을 믿고 동의합니까?”

당신은 오, 구주시오, 인류의 구속자시오, 영원한 우리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시오 선지자이심을 믿고 동의하십니까?”

당신은 우리가 구원받는 믿음은 우리가 행한 공로나 선행의 값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며, 오직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고 동의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죄 없이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우리 죄값을 모두 대속하시고 속량하신 우리의 주님이신 줄을 믿고 동의하십니까?”

당신은 죽으신 지 3일 만에 사망 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우리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동의하십니까?”

 

~ 이외에도 믿고 동의해야 할 것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적어도 이 정도 핵심에는 믿고 동의해야만 당신은 의심 없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사랑과 소망입니다.

~ 가장 아름다운 믿음은 사랑의 잎을 가질 때입니다. 사랑의 잎이 은혜의 나무에서 자란 믿음의 가지들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향기를 품어냅니다. 사랑의 잎이 있어야 벌과 나비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 그만큼 사랑이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믿음은 사랑의 향기로 나타납니다. 다 아는 말씀이지만 오랜만에 사랑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노래라도 불러볼까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4~8)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믿음으로 세워지고 사랑으로 채워지고 소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랑하는 일을 멈추면 아니 됩니다. 사랑은 모든 육신의 일을 극복하도록 돕습니다.

~ 이 사랑을 목고 자라는 열매가 소망입니다. 소망은 천국의 열매입니다. 우리 교회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의 열매는 세상 나라에서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나라, 사랑의 나라, 소망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가장 맛있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열매입니다. 저는 리폼드센터가 바로 이런 소망의 열매가 되기를 소원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열심을 다하려 합니다.

 

믿음의 3요소를 정리합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지식과 동의와 사랑의 요소를 가집니다. 신앙은 짐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유추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사실(fact)를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창조주이십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 없이 스스로 탄생한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일면 자연잉태설은 무가치하고 비논리적이고 맹신입니다. 우주만물의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유일한 존재이며 동시에 만물의 영장입니다. 인간만이 영적이며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인간이 탐욕에 눈멀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배신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스스로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가출을 했는데 살다 보니 엉망진창이고 앞뒤도 맞지 않고 오직 남은 것은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뿐이었습니다. ‘3일 굶으면 도둑 안되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추락한 인간이 하는 일은 오로지 악행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라 부릅니다. 바로 이 진술이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말하고 기록한 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성경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성경에 소망을 두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청합니다.

 

3. 믿음으로 사는 것이란?

 

이제 믿음에 관한 필요하고 유효한 기초를 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삶이 다양하듯이 이 부분에는 마치 정답이 없어 보입니다. 태어난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고, 삶도 다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고, 받은 기질과 성격과 체질들이 다 다릅니다. 그러니 믿음의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알아서 잘 살아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관심도 없고 사랑도 없는 것이겠지요. 오늘 저는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한 편을 소개하면서 은혜를 같이 나눌까 합니다. 이 설교는 1881717, 주일에 메트로폴리탄 장막교회(Tabernacle Church)에서 행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세 종류의 믿음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행복하며, 가장 즐거운 삶의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닷가에 가면 우리는 바위에 붙은 조개를 볼 수 있습니다. 바위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다가 막대기로 힘껏 내리치면 조개는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조개를 내려치는 소리를 옆의 조개가 들었다고 합시다. 그때 옆의 조개는 있는 힘을 다해 바위에 매달립니다. 여러분은 그 조개를 힘으로 떼어내지 못합니다. 치고 또 쳐 보세요. 막대기만 부서집니다. 조그만 조개는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러나 매달립니다. 자기가 매달린 바위에 대해, 지질학적인 성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조개는 자신이 어디에 매달려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조개는 구원의 바위에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사용합니다. 매달림으로써 조개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매달리는 성향을 주십니다. 완두콩을 보세요. 마당에 자라는 완두콩 줄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면 줄기를 들어 시렁, 즉 줄기 막대기 위에 올리거나 붙들어 매 보십시오. 줄기가 이내 시렁을 붙듭니다. 완두콩은 무엇이든 붙잡는 덩굴손이 있습니다. 또 완두콩은 아래로 자라지 않고 위로 자랍니다.

~ 하나님의 자녀도 모두 하나님을 향한 덩굴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과 생각과 소망이 있어서 그것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종류의 믿음이지만 사실 이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더욱 굳세게 하나님을 붙잡으세요. 성령께서 여러분의 손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견인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의 별명을 붙인다면 죽기살기식 믿음입니다. 단점이라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떼를 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소신과 신념으로 행하는 것과 무지와 고집으로 행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또 다른 형태의 믿음의 삶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그를 의지하고 따릅니다. 조개와 완두콩은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에 대해 한 가지 사실만 믿고 의지하지만 이번의 믿음은 좀 더 많은 지식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가령,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내자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소곤소곤 잠을 잘 자는 것은 본능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 해도 선천적으로 그는 시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각을 가지고 앞을 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손을 안내자의 손에 맡기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릅니다. (물론 여기서 안내견의 역할을 꺼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가 훈련을 잘 받고 능력을 발휘한다 해도 앞에서 오는 김씨 아저씨를 알아보고 안녕하세요 아저씨하고 인사하지는 못합니다)

~ 이런 믿음의 삶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잘 따른 인생입니다. 순종하는 인생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좋아서 자신을 예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기뻐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당을 닦고 쓸고 다듬고 정리하고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 한편으로 이런 믿음은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는 권위에 복종합니다.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권위와 가르침을 존중하고 잘 따릅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스승으로 삼고 배우는 학생들이자 제자들입니다. 무엇보다 순전한 믿음은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은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문제는 지나치게 분별함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번개가 치니까 엄마는 아이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번개가 아름답다며 하나님께서 하늘에 만드시는 그 빛을 보고 만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엄나가 천둥소리를 듣고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하나님이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고 우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세 번째 소개하는 믿음입니다. 바로 항해사의 믿음입니다. 그는 닻줄을 풀고 해안에서 떨어져 먼바다로 나아갑니다. 며칠, 몇 주, 몇 달씩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삶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에겐 두려움이 없습니다. 망망대해에서도 그는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배를 몰며 목적지에 도달해 목표했던 고기를 잡고 돌아옵니다. 그가 이렇게 몰아치는 격랑을 헤치고 무사 운항을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항해에 필요한 모든 지식들 때문입니다. 그는 나침반과 항해력, 망원경과 천체를 신뢰하고 그것들의 안내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이지 않은 길을 따라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가장 우리가 바라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바로 보지 않고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의심하는 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은행에 돈을 맡깁니다. 그런데 좀 더 전문적인 사람은 은행의 거래 내역을 살피고 은행이 박대한 투자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돈을 맡깁니다. 이것을 절대적 확신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근거한 것입니다. 물론 이 믿음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식적 믿음이라 하는데 지식이 많다 보면 지나치게 자기 지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신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대목입니다.

 

4. 결어

 

우리의 출발은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작고 보잘것없던 믿음이 지식과 동의와 사랑과 소망을 먹고 자라나서 드디어 확고한 믿음의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믿음의 사람을 살수록 많은 지식과 확신을 주시어서 마침내 그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도착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게 됩니다. 쟁기질하는 사람을 보세요, 그는 나무에 잎도 없고 즐거운 새소리도 없는 추운 겨울 동안에 열심히 쟁기질을 합니다. 그리고 봄날에 작은 씨앗을 심습니다. 그는 반드시 씨앗이 자라 싹이 돋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게으른 자는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일구는 농부가 어리석다고 여기며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농부에겐 추수 때에 커다란 웃음의 복이 나타나지만 게으름뱅이는 다음 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해야 할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좋은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최소한 세 가지만 기억합시다.

 

첫째, 주님을 의지합시다

~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잘 따라갑시다. 순수함을 잃지 맙시다.

 

둘째, 주님을 배우고 익히어 성장합시다.

~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 장성한 분량의 믿음에 이르도록 노력합시다.‘

 

셋째, 열심히 삽시다.

~ 천국에서 보금자리를 얻지 못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살인한 자요 둘째는 거짓말하는 자요 셋째 게으른 자입니다. 특히 게으른 자는 현세에 있어서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가난을 면치 못합니다. 무로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탐내는 자들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십니다. 부지런한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출처] <구원론 강설> 26주차. 믿음으로 사는 것 2020. 6.28 (바로선개혁교회) | 작성자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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