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두 도성을 마주할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다”(2020. 3.1)
본문 : 창 19:26
봉독 : 창 19, 눅 17:20~37
시 98:1, 65:2, 1:1~2, 9:1,3,4,5, 98:3,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여러분!
창세기 19장에는 두드러진 세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죄의 비참함, 하나님의 심판에서 도망치는 절박함, 그리고 하나님 심판의 파괴적인 최후입니다.
창세기 19장은 그냥 읽기에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소돔 사람들의 죄도 끔찍하지만, 그 도시의 남자들이 성 관계를 하도록 롯이 자기 딸들을 넘겨주려고 제안하면서 했던 말은 더 끔찍합니다.
또 롯의 부인이 뒤돌아본 후에 소금기둥이 된 일도 끔찍합니다.
롯의 딸들이 의도적으로 자기 아버지와 관계를 해서 임신이 된 것도 충격적입니다.
이 모든 일이 정말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입니다.
이같이 처참하고 끔찍한 일들도 있고 그 속에서 긴박감이 느껴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롯이 두 천사에게 밤에 도시 광장에서 지내는 것보다 자신과 함께 머무르기를 강하게 요청할 때 롯의 목소리에 긴박감이 있습니다.
롯이 사위들에게 “일어나라! 이곳을 속히 빠져나가라! 여호와께서 이 도시를 멸망시키신다”고 말할 때, 롯은 긴박감을 느꼈습니다.
이뿐 아니라 창세기 19장은 아브라함이 보는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9:27, 28에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으로 이른 아침에 갔더라.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보니 연기가 용광로(옹기점) 연기같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사라졌습니다. 한때 그곳은 창세기 13:10에 보면 유토피아, 지상낙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지고 그곳이 녹아 내려서 지옥처럼 변했습니다.
소돔의 공중은 연기와 악취로 뒤덮였습니다.
곳곳에 소금기둥들이 생겨났습니다.
각종 나무들이 타서 재가 되고 사람들도 타버렸습니다. 곳곳의 집들이 황무지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9:26에 보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것은 롯의 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롯의 처는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일들을 보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설교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있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누가복음 7:31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녀처럼 되지 말라! 그때 롯의 처는 소돔 성에서 단호히 나갔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안전을 위해서 소알 성으로 뛰었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인간의 도성, 인간적 행복과 안일함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돔 성과 시온 성, 두 성 중 한 곳만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두 도시 모두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두 도시를 마주할 수 없다”
이것이 오늘의 제목입니다. 소제목으로는
소돔에서 돌아서라!
시온을 행해 뛰어라!
입니다.
소돔에서 돌아서야!
소돔은 하나님의 사람이 살기에 끔찍한 도시였습니다. 롯이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의로운 사람이었나요? 소돔 도시에서 그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요?
에스겔 16:49~50에 여호와께서 소돔에 대해서 묘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누이 소돔의 죄악이 이러하니 그와 그 딸은 교만했고, 식물이 풍족했고, 게으름이 넘쳤으나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였고, 거만하여 혐오스러운 일을 내 앞에서 행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의 창세기 19장에서 혐오스러운 일을 상세히 묘사했습니다.
밤에 두 천사가 롯의 집에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도시의 나이든 남자, 젊은 남자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서 저는 “상관하리라”는 말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돔 사람들의 죄가 끔찍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5:16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차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악이 차고 넘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반면에 롯은 달랐습니다. 두 사람이 그 도시 광장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았습니다. 롯은 그래서 자기 집에서 밤을 보내도록 강요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7, 8에 “롯이 무법한(사악한) 자들의 아주 더러운(추잡한) 행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고 말씀합니다.
롯의 의로운 심령이 그들의 무법한 행실을 볼 때마다 매일 매일 상해갔습니다.
롯이 악한 행실을 보고 마음이 상했는데 그러면 그곳에서 롯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롯의 가족은 왜 그곳에서 살았을까요?
창세기는 이 일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가나안에 갔습니다.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갔지만, 창세기 13장에서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유해지고 롯도 부유해졌습니다.
그 땅은 두 사람이 함께 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두 진영의 목동들이 서로 싸우고 늘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권 다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하리라” (창 13:9)
이때 롯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창세기 13:10 “롯이 요단 모든 들을 행해 눈을 들어 쳐다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세기 13:12 “롯은 평원 도시 들에 머물면서 그 장막은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문제는 무엇입니까? 롯과 그 가족이 그곳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14:12에 롯이 소돔에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갈 때 소돔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잡혀갑니다. (창 14:11~12)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조카 롯과 재물 그리고 부녀와 사람들을 구해옵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을 통해서 롯이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롯은 그 일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창 19장에서도 우리는 롯이 소돔 도시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번에는 그 도시에서 존경받는 의원으로 문 안에 앉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전히 텐트에서 살고 있을 때 롯은 소돔 시민으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동안 살았던 삶의 방식대로 타협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시편에 보면 경건치 않은 사람의 유혹을 따라 살아갈 때 무슨 일이 생길지를 경고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는 사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를 말씀합니다.
물론 롯은 소돔 사람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의롭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롯은 세상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양심에서 우러나는 고통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한쪽으로 양보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되고 결국 자신이 끔찍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자기 처도 그렇고 딸들조차도 끔찍한 열매를 맺고야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습니다.
창세기 19:29 “롯이 거하는 성을 하나님이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어 보내셨더라”
1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더라”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소돔 속에서 타협하며 살았던 롯이 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롯에게 경고하려고 두 천사를 보내셔서 그곳을 떠나도록 강요했습니다. 18장에서 아브라함의 간절한 간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내가 이번만 더 말하리이다. 거기서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10인을 찾는다면 멸하지 않겠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두 천사가 저녁때 소돔 롯의 집에 들어와서 식사를 합니다.(19:3) 성에 사는 사람들이 두 천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롯의 집을 둘러싸고 그 둘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천사들을 사람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때 롯이 사악한 소돔 남자들의 의도를 알고 자기 집에 돌어 온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로 결심하고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발 형제들아, 그런 짓을 하지 마라”
그 말을 한 후에 롯이 우리 귀에 긴가민가한 매우 역겨운 말을 합니다.
8절,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이 있으니 내가 딸들을 네게 데려오마. 너희가 원하는 대로 두 딸에게 행하고 이 방문객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내 집에 온 손님이니라”
손님을 보호하려는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딸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소돔의 남자들은 롯의 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9절 “너는 물러나라, 이놈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 법관으로 계속 행동하는구나.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고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소돔 남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처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롯을 잡아채 그 집으로 들어가고 문을 닫습니다.
천사들이 그 남자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문을 찾을 수 없게 합니다. (19:10,11)
그리고 심판의 기운이 감돌면서 천사들이 롯에게 말합니다.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나?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그곳을 멸하리라” (창 19:12,13)
이 말을 듣고 롯이 사위에게 나갑니다. 사위들은 조금 전에 롯의 문을 부수려고 시도했던 그 남자들과 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들과 잘 지내는 시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위들이 롯을 비웃습니다.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사위들은 마음에 하나님 경외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말씀이 통하지 않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너무 놀랍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애당초 롯이 딸과 결혼하도록 동의했다는 자체가 정말로 의아스럽습니다.
천사들이 롯에게 속한 식구들에게 속히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고 천사가 재촉합니다. 그런데 롯의 가족들이 꾸물거립니다. 처와 두 딸이 미적거립니다. 소돔을 떠나면서도 재물을 뒤돌아봅니다. 사위들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나마 처와 딸들이 산으로 피신하는 것도 너무 큰 짐이었습니다.
천사가 롯의 아내와 두 딸을 성 밖으로 인도하여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합니다.
“너희 생명을 위해서 도망쳐라! 뒤돌아보지 말거라! 평원 어디에서도 머무르지 말거라! 저 산으로 도망치라! 너희가 멸망할까 함이라” (창19:17)
그러나 이것이 롯에게는 너무 힘겨웠습니다.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그곳은 너무 멉니다. 제가 저 산으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제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나로 이 작은 성에 피신하게 하소서”(18~20절)
그래서 천사가 뭐라 말합니까?
“거기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22절)
그래서 롯과 처와 두 딸이 서둘렀습니다. 롯이 소알의 작은 성에 이르렀을 때 태양이 떠오릅니다.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내리셨습니다. 그 도성과 모든 평원, 그 속에 모든 사람과 모든 식물이 몽땅 타서 없어졌습니다. 롯이 자기 딸들과 함께 소알 성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롯의 처는 뒤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여러분, 너무 허무합니다. 롯이 이제는 그 소돔 성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그쪽을 향해 쳐다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자기 처가 죽었고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어찌 그쪽으로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롯의 처가 그 소돔 성 쪽을 뒤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순식간에 소금기둥이 돼서 죽어버렸습니다. 물론 우리는 당시에 롯과 딸들이 안전하게 소알 성으로 도망친 것에 대해서 그나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그래서 어찌 됐단 말인가,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가라고 생각해 버리면 안 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이 사건을 친히 언급하셨습니다. 주님이 심판하러 임하실 때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조심하라! 예기치 않은 때에 인자가 나타날 것이라”(눅 17:28~30)
“그때는 롯의 때와 같으리니 그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써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 모두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롯의 처를 끌어당기는 것이 소돔의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천사가 롯의 손을 끌어당기기까지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 둔 것이 무엇입니까? 롯의 처가 왜 소금기둥이 되었는가를 잘 생각하고 반드시 거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심판의 날이 임하면 여러분이 롯의 처처럼 집안의 재물이나 세간을 가지러 갈 시간이 없을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비 오듯이 쏟아질 때 그 현상이 너무 처참하고 갑작스럽게 일어났듯이 앞으로 심판의 날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때 돈이나 통장을 가지려고 돌이킬 여유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으로 훈육 받는 것을 역겨워하고 교회를 더 멀리해야겠습니까? 아니면 롯의 처처럼 세상을 뒤돌아보고 세상과 함께 멸망의 길로 가야겠습니까?
롯의 처는 소돔과 소알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마 죽어가면서야 깨우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롯의 처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결국,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결국, 소금기둥이 돼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주님이 임하실 때 반드시 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게 요점입니다.
여러분! 요1서 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마라. 만약 세상을 사랑하면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나니”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 양다리를 걸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세상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습니다. 소돔에서 시온으로 눈을 돌려서 고정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 시온으로 돌이키세요.
창세기 19장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30절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롯이 소알에서 나와서 산에 거하였습니다. 그의 두 딸도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롯이 소알에 사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롯과 두 딸이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롯은 얼마 전까지 갑부였습니다. 소돔에서 호화롭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잃었습니다. 모든 재산이 불에 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농담으로 안 두 사위도 불에 탔습니다. 롯의 집은 이제 동굴 속입니다.
그동안 소돔에서 살면서 롯이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거짓된 행복감 속에서 처와 두 사위와 함께 거짓 만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롯은 그의 가족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그의 처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됐습니다. 누가 보아도 망신스럽게 되었습니다. 롯이 그동안 타협해왔던 삶의 방식에 대한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여러분!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취하려 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소돔에서 그동안 몇 해 동안은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했어야 합니다.
호세아 8:7 “네가 만약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둘 것이라”
여러분!
롯이 부해질 때 롯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의 의무를 따라 소박하게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롯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겠습니까?
딸들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딸들이 아브라함의 종이나 친족 중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 중에서 결혼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 생명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딸들이 아버지 롯과 잠을 자서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아이가 모압이 되고 다른 아이는 암몬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후에 이들은 요단강 멀리서 살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경멸하는 두 민족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을 통해 약속의 땅으로 가려 할 때 모압 족속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습니다. 나중에는 성적인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암몬 족속은 모압과 함께 발람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했기에 모압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족속은 여호와께 저주를 받아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에게 속한 자는 10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롯의 후손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언약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한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면 자자손손 이렇게 망신스럽게 됩니다.
수년이 지나서 다음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스바냐 2: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족속은 고모라 같을 것이며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도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너로 인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롯과 딸이 근친 관계로 낳은 나라라도 복을 받습니다. 모압에서 젊은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6)
룻이 보아스와 결혼할 것입니다.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새의 아버지가 되고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암몬의 후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 것입니다.
롯의 후손들이 우리 주님의 족보에 연결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1~3에 묘사되는 도성, 여기에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도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학수고대하는 곳이 바로 이 도시입니다. 여러분은 두 도성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롯의 아내를 마음에 항상 기억하세요.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할 심판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도성을 향해 나아갑니까?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동시에 두 곳은 안 됩니다. 롯은 소돔에서 애초부터 돌아섰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앞에 시온의 대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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