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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너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라

이차식목사(김천)

by 김경호 진실 2020. 11. 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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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너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라(2020.3/22)

봉독: 사사기 2:7~23, 106; 본문: 2:7-23

시편 106, 115:1, 5, 119:39, 40

106:1~3, 22, 23 찬송 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렇게 자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나요?

여호수아와 그 세대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사람들이 여호와를 모르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한 것도 모르지요. 어떻게 그렇게나 속히 마음이 굳어져 버린 걸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무엇이 그렇게 잘 못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사기 2장과 시편 106편을 읽었습니다.

이런 일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에게만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모르는 세대가 일어나는 것은 역사 가운데 계속되고 거듭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 자녀에게 해당이 된다면 걱정이 되고 심각한 문제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호와는 누구십니까?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과연 우리는 우리 자녀와 그 후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이아침에 저는 여호와가 여러분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한 세대가 이를 모를 때 오는 비극

2. 여호와께서 언약 약속에 신실하신 기적

 

한 세대가 이를 모를 때 오는 비극

 

사사기 2:10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 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 하신 일도 알지 못 하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실오라기 같은 단편적 지식까지 다 잊어버렸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기 2:10에서 말씀하듯이 실제로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지만, 그분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는 하고 있었고 그분에 관한 일들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사사기 6:12에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말할 때 큰 용사여 여호 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십니다.

13절에서 기드온이 대답합니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 게 미쳤나이까. 우리 조상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우리를 나오 게 하지 않았느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6:13)

여기에 보면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신 것을 알았습니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여호와를 알았습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에 관해서 알았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도 그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분을 정말로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분을 자기들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자신들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분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그동안 그들에게 전해준 이야기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노예로부터 구속하신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신 이야기들과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런 말씀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그들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애굽에서 너희를 이끌어 낸 여호와 너 희 하나님이라. 내가 애굽의 종 된 집에서 너희를 구속하여 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게 하였고, 너희를 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았느니라라는 이런 수 없이 많은 말씀이 저들에게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자신의 즐거움과 자기 평안함을 위해서만 산 까닭입니다.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자기 가족, 자기 자녀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인격적으로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나라, 하나님 나라나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명도 없고 책임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엄하게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6:10~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에 게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 니 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 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 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 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를 잊지 말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걱정이고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이 우려가 너무 쉽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여호와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기독교를 잘못 오해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경청하고 그 말씀 가운데 믿음으로 순종하며 교회와 하나님을 섬겨 가면 언약의 풍성한 복으로 하나님께서 자자손손 복을 주실 텐데 오늘날 상당수의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부자가 될까 궁리하며 현세적 삶만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되면 언약의 삶이 한 세대도 못가서 망가질 수 있는 거지요.

그런 삶을 추구하면 여호와를 안다 할지라도 자신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구세주에 대한 모든 말씀이 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어떤 말씀도 저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 얘기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 하늘 보좌에 대한 말씀을 해도 저들에게는 어떤 인상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는 하지만 자기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알 수도 없는 거지요.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지요.

 

여호수아 24:15나와 나의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고 모든 백성도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섬기노라 말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를 알지 못한 세대가 여호수아 그 이후에 갑자기 일어났을까요?

설교 초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여호와가 정말 어떤 분인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또 손자 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자칫 상당히 소유욕(독점욕)이 강한 사람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이 세상에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통해서 가장 좋은 것을 갖기를 늘 소원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좋은 겁니다. 어떤 부모인 들 자녀를 사랑하지 않겠으며 그 자녀가 좋은 것들을 다 누리며 사는 것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로 자녀를 잘 키워야 하지만 우리 자녀를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키우고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자녀가 먼저 구하게 하고 그분을 온 마음과 혼과 힘을 다해 사랑하게 해야 하며 여러분 자녀가 우주의 중심이 되게 해선 안 됩니다.

자기 가족이 우주의 중심이 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가르칠 때, 자녀들과 관련된 어떤 결정을 할 때, 자녀들이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서로 많이 먹도록 하면 안 됩니다. 물건을 살 때, 교회에서 말씀 들을 때, 이사할 때, 항상 주님을 최우선시해야 자녀가 바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부모들이 여호와를 알았다면 바른 모습으로 제대로 가르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실 것입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을 탐지하려고 열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그곳이 좋은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정복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말했습니다.

 

민수기 13:27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 은 그 땅의 실과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하고 심 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13:27,28,32)

이 보고는 사실에 입각한 보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와를 반역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모세를 반역합니다.

그리고는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결정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했지요?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그 땅을 얻기 위해 나아가지 못하고 애굽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민수기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 하랴

 

여러분! 이스라엘이 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처자 때문이었습니다. 처와 자녀들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무리 별 말씀을 하신대도 우리는 듣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자녀들에게 좋지 않고 가족에게도 좋지 않잖습니까? 우리는 어린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내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광야도 싫고 세상 문화가 편리한 애굽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종으로 살더라도 내 자녀, 내 처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런 뜻이고 그런 의도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당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인들이 삽니다.

그 성읍들이 크고 요새화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부모로서 그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녀를 우선시할 때,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책임 있는 일로 들리지 않습니다.

신명기 1:39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민수기 13장의 말씀을 상시 시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로잡히리라고 말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 희 자녀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왜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까?

우리의 자녀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 자녀는 너희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의 자녀로서 자녀들을 기르고 결정을 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이 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아이는 왕처럼 여왕처럼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결정을 합니다. 이 땅에서 현세적 삶을 위한 결정을 너무나도 쉽게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직장,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교회를 선택할 때도 문화 중심, 사람 중심으로 쉽게 결정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생각을 하지 않고 결정을 쉽게 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자녀 중심의 돌봄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육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왜 받았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표하고 인치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는 자녀들이 신앙적 결단을, 각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며 너는 나의 자녀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자녀들 사이에 이 언약 관계가 우리가 자녀와 관계된 모든 결정을 할 때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캐나다, 호주 같은 곳은 아주 좋은 기독 학교들이 있습니다. 그곳은 자원이 넉넉하고 잘 훈련된 교사들도 있고 학생 수준도 높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독 학교에 보내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좋은 가장 실력 있는 학교여서가 아닙니다.

최고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소위 명문대인 하버드 대학에 자녀가 들어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들은 왜 세상 학교에 꼭 보내야 하는 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면 왜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기독 학교에 보냅니까?

여호와를 경외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세례를 통해서 언약 백성이요, 교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불신 자녀와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자녀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칩니다.

여러분도 여호와의 언약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치고 있지요?

부모는 이것을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역량을 다해서 가르쳐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 언약의 자녀로 정말로 가르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에게 거역하지 않도록, PC방이나 노래방에 함부로 못 가게 구별시킬 교육이 필요합니다. 항상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경청하는 자녀로 키우는 교육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양육할 때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두십니까?

자녀가 부모에게 뭔가 요구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평소에 부모가 자녀의 필요보다 주님을 먼저 모시고, 예수님이 삶의 첫 번째였다면 자녀들의 요구 사항도 세상 여느 아이와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자녀의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시편 106편은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를 묘사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모든 전능하신 일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백성은 여호와를 거듭거듭 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분을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애굽의 바로로부터 여호와께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이에 저희가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분의 찬송을 불렀도다. 그러나 저희가 곧 그분의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분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였더라.” (106:12~13)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의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이스라엘이 여호와에 관하여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거듭거듭 여호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시편 106:21 “애굽에서 큰일들을 행하신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자로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의 여호와라는 믿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들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참으로 알았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세대는 그들의 조상의 불신과 그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언약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며 살았습니다.

사사기 2:7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의 사 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러나 사시기 2:10에는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 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 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 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사사기 2:20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 하였더라.”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한 세대도 안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그 땅의 신들에게로 돌아섰습니다.

사사기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 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 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사람들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 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 더라.”

그래서 이스라엘은 죄에 깊이 빠졌습니다. 언약의 말씀대로 원수의 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탄식 소리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서 구원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사사가 죽으면 또 여호와를 잊어버립니다. 다른 신들을 섬깁니다. 마음이 완고해서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자신들의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압제하는 원수에게서 고통을 없애 달라고만 부르짖는 게 아닙니다. 사시기에는 죄의 탕감을 위한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죄에 빠집니다. 사시기는 그 죄가 사람을 어떻게 노예로 삼는지, 죄가 어떻게 여러분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버리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구세주가 왜 필요한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이 바뀌어 그분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그 교육을 먼저 해야 합니다!

 

2. 여호와께서 당신의 언약 속에 신실하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통과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 사사기를 읽으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죄악 된 세대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게 되고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게 됩니다.

우리도 사사기에서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 때 하나님께 실제로 구원해 달라고 필사적으로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부르짖습니다.

 

구약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은 여호와는 긍휼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당신의 언약 약속에 정말로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사시기를 보면 시편 106:43~45의 노래가 무엇에 대해 노래하는지 그 증거들이 보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자기의 죄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희 부르짖음 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하시며 저희를 위하여 그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당신의 백성에게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기적을 봅니다.

그들이 죄로 노예가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물론 그들의 죄 때문에 벌을 주십니다.

사사기 2:4에 여호와의 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뜨겁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의 손에 파시고, 이로 인한 이스라엘의 고통은 크고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사사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2:16)

이스라엘의 죄에도 불구하고, 전 세대가 여호와를 더 이상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106:2 “뉘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행위들을 전파하며 누가 그분의 영 예를 다 선포할 수 있겠느냐?”

우리의 죄악을 따라 처치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허물을 벌하지 않으시는 여호와를 감사하고 찬양하라

여호와는 공의로우셔서 죄를 벌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자비로우신 여호와이십니다.

이것을 오고 가는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후에 온, 여호와를 모른 사람들보다 신실치 않습니다.

여러분 속에 더 신실한 게 없습니다.

제 속에도 더 나은 게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더 나을 게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여호와를 배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죄에 빠졌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께서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여호와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다시 여호와를 배반하고 죄에 빠집니다.

이 모든 말씀은 결국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게 살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도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나 우리 자녀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언약 약속에 신실하신 그 기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언약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깨끗하게 되고 새롭게 지어져 가니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을 바꾸게 해 주십니다!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죄악 되고 약한지 성경을 통해서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를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서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어떻게 언약에 신실하신지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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