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히는 길목에서
길거리, 식당가, 시장과 마트, 경기장, 콘서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둠이 걷히는 길목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뚜렷하다. 이 시점에 교회도 보조를 맞추어 생기와 활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교회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상의 교회는 처음부터 심각한 도전에 끊임없이 직면해 왔다. 하지만 교회가 강한 체질을 갖고 있으면 그런 도전들을 넉넉히 견뎌냈고, 허약한 상태일 때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도 진정한 문제는 팬데믹의 강타가 아니라 그것을 맞이한 교회의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감염증이 교회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교회가 이미 무너질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어쩌면 바이러스 사태는 오랜 시간 한껏 부풀려져 있던 거품을 걷어내고 교회의 허약한 체질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면 교회가 허약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교회의 세속화는 체질을 허약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과거에는 지성을 선도하던 기독교가 언제부턴가 찬양이라는 미명 아래 감성적 종교로 변모하였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조명을 희한한 색깔로 바꾸고 실내를 신비롭게 장식한 교회도 있다. 세상의 경영 마인드를 받아들인 어떤 교회는 화려한 경영술을 발휘하면서 이웃교회들과 치졸한 경쟁 전략을 펼치는 것도 마다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쉬운 교회, 재미있는 교회, 문턱을 낮춘 교회가 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많은 교회가 동조하였다.
하지만 교회는 감성이 없는 것도, 경영술이 부족한 것도, 문턱이 높은 것도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교회가 세상에 비해 이질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세상에 환심을 사려는 교회는 나약해지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는 교회는 무력해진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인정받기를 바라는 교회는 마침내 저절로 무너지고 만다. 교회가 어떤 도전에도 이겨내려면 진리로 다져지는 지성화에 힘쓰면서, 세상과는 질 다른 면모를 추구해야 한다.
게다가 신자의 종교화는 교회가 허약해지는 것을 부채질하였다. 믿음이 삶의 전부를 감싸는 대신 간신히 삶의 일부에 관련되는 것으로 그칠 때 신앙은 종교생활로 탈바꿈한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멀어지고 진리를 기반으로 하는 삶에서 떠나면 신자는 초라해진다. 주일에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일 년에 한두 차례 빈민지역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돌아온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순간, 신자는 일반적인 종교인이 된 것이다. 신앙이 삶 전체를 통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믿음이란 삶의 전부이다. 매일이 신앙의 현장이며, 경건은 일상에서 실현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삶의 여러 행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분명한 견해를 품고, 믿음과 삶이 괴리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어떤 도전이든지 성공적으로 응전할 수 있다.
목회를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목회자의 낭만적 사고방식도 교회를 허약하게 만든 만만치 않은 요인이다. 목회 밖의 삶을 더 사모하고 동경하는 목회자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 가능성은 없다. 목회자가 손에서 책을 뗀 지가 오래되었고 책이 눈에서 벗어난 지가 오래되었다면 교회는 허약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목회자도 긴장을 풀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취미와 운동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객이 뒤바뀌어 목회를 위한 여가가 아니라 여가를 위한 목회가 된다면 정말로 큰 문제이다. 목회가 목회자의 낭만적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때 교회는 무서울 정도로 부실해지고 만다. 목회는 낭만이 아니라 전투이기 때문이다. 성경과 신학의 실력을 부단히 향상시키는 목회자야말로 교회가 도전 앞에서 넘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길목에서 만일 우리가 교회를 허약하게 만드는 이런 구태를 타개하지 못하거나, 위기가 지나가고 있으니 옛날처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는다면 큰 착각에 빠진 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허약한 체질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생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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