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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공동체(고전 3:5~9)

사랑

by 김경호 진실 2023. 1. 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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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은사와 사명으로 서로 섬기며 복된 신앙생활합시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 3:7)


최봉우 목사(아멘교회)


제가 처음 사역자로 섬겼던 교회에서 청년들이 어떤 장로님에게 붙여준 별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호메이니 옹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호메이니는 한때 이란의 최고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입니다. 모든 국가 운영이 호메이니의 결정에 달려있었던 것에 비유해서 교회의 모든 결정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면서 붙여준 명예롭지 못한 별칭입니다. 그 장로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교회가 자기 교회라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를 섬기는 자들은 어떤 자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실제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교회의 주인이다.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잘못 때문입니다.

복된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사역자들은 어떤 자들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섬김의 직분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파당으로 나누어져 서로 시기하고 비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취향에 맞는 지도자들의 은사와 영적 능력을 존경하다 못해 그들을 자신들의 파당의 우두머리로 모시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5절에서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자들인데 너희들이 그들을 우두머리로 삼느냐’는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의 인격과 인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긴 기능과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분쟁을 야기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역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는 주님의 일꾼들이었지만,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의 상대적인 장점을 치켜세우고 각자가 선호하는 인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분파를 조성한 데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고쳐주기 위해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는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들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5절) ‘사역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디아코노스’인데 그 뜻은 ‘섬기는 자’입니다.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원래 ‘식탁에서 시중들기’라는 뜻을 가진 말로 ‘섬김(종)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식탁에서 시중들고 섬기는 일은 보통 종들이나 여자들이 하는 일로 천하게 여겼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남을 섬기는 일보다 오히려 남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을 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헬라의 소피스트들은 “사람이 남을 섬기고서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의 직분들에 대하여 ‘디아코노스’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당시의 관직을 지칭하는 헬라어들(아르케/아르콘)을 로마나 유대의 관리들에게 사용해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직분들이나 사역자들에게 일체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의 다양한 직분들을 구별 없이 모두 ‘디아코노스’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교회의 직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이 칭호를 사용했으나 모든 교회의 직분에도 이 칭호가 적용되고 있습니다.(롬 11:13; 고전 3:5; 고후 6:3; 행 20:24; 21:19)

교회 안의 직분들은 모두 섬김의 직분입니다. 직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섬김의 다양한 형태에 있는 것이지 권위의 과다에 있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해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에 손상을 입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꾸중을 들은 제자들처럼 교회 안에서 ‘누가 크냐?’의 문제로 다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섬김사역에는 통일된 목표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의 직분을 오해했을 뿐 아니라 그 직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므로 분열과 파당을 짓고 서로 다투게 됐습니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분이 우월하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성도들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시고 그 은사를 통하여 각각의 섬김을 하도록 하셨듯이(고전 12:4 이하) 바울은 사도들에게도 각각의 은사와 각각의 섬김을 주셨음을 자신과 아볼로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동일하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바울의 열정적인 은사를 사용하셔서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선교의 최전선에서 맨발로 뛰어 교회를 심는 일(심는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한편 아볼로는 성경에 해박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미 세워진 교회에 가서 성도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목회의 사역(물을 주는 사역)을 감당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각각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는 일과 물주는 일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가 경쟁의 전쟁터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다릅니다. 사명도 다릅니다. 모든 성도가 자신이 받은 은사와 사명을 따라 순종하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동등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은사와 사명의 차이는 결코 신분이나 등급의 차이가 아닙니다. 각자 하나님이 주신 은사 대로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일한 대로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든 자들은 동역자입니다.(9절) 경쟁자가 아닙니다. 이 원리를 잘 인식할 때 다른 사람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이 나의 배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동역자가 잘하면 그 유익을 나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하나가 섬김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직분들은 모두 다 ‘섬김의 직분들’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의 본질은 섬김의 사역이었고, 이 섬김의 절정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구현되고 구체화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큰 자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아랫사람을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일을 크고 위대하게 여기지만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주님의 참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섬기는 종의 길’을 가셨던 것처럼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므로 주님의 제자 된 것을 논증해야 합니다.

주님의 섬김의 결과로 새 언약의 백성의 공동체로 세움 받은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돼야 함은 마땅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섬김의 직분입니다. 교회는 서로 주인 노릇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주도권을 쥔 사람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단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위대한 섬김을 본받아 서로 돕고 보살피며 섬기는 장소가 돼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아니라 명예와 권세의 직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해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 교회는 말씀의 정신을 따라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세워져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밭인 교회를 각자의 은사와 사명을 따라 섬김으로 풍성한 소출을 얻게 만드는 데 부름을 받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인식합시다. 우리의 섬김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속한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며,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복이 있기를 소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갑시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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