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연속 (딤전 1:16)
조병수 교수/합신 신약신학
시작은 연속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이든지 시작으로만 끝나는 것은 최소한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 그것은 단회적인 발생으로서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시간에 아무런 연속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은 메마른 땅에 떨
어지는 한 두 방울 비와 같은 것이라 기억되기도 어렵고 또 기억해야 할 이유
도 없다. 시작은 미래적인 연속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만일에 어떤 일이
시작되어 아주 먼 미래까지 힘있게 계속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다. 그런 시작은 한참이나 흘러도 물살이 약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물을 펑
펑 쏟아내는 샘물과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
을 것이다. 시작은 종말론적인 연속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 무엇인가가
시작된 이후로 주님의 날까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연속되는 사건이 있다면
그런 것을 가리켜 생수의 강 물 같은 것이라고 부르며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
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의 시간 저편에서 하나님께
기억될만한 위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
건에 불과하다. 그 이전이나 그와 동시대에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사람
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의 긍휼이 사도 바울에게 임한 사건은 지
나가는 구름에서 어쩌다가 한 두 방울 떨어져 메마른 땅의 가장 작은 부분도
적시지 못하고 만 빗방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 바울이 긍휼을 입은 것
은 이렇게 무의미한 단회적인 사건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특히 “예
수 그리스도께서 첫째인 나에게 (NASB: in me as the foremost; Luther: an
mir als erstem) 전적인 인내를 보이셨다”는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을 정확하
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렇다. 문맥으로 볼 때 “첫째”라는 말은 바로 앞 절에
나온 “죄인 중에 첫째” (개역성경에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에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죄인들 가운데 가장 극악한 사도
바울에게도 주님께서 전적인 인내를 보이셨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 말을
그
냥 바로 이 구절에서만 해석하면 장래에 주님을 믿을 사람들에 대하여 첫
째 사람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건은 무의미한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기신 이유는 “장차 주님을 믿을 사람들의 본
본기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긍휼이 사도 바울에게 임한 사건은
미래적인 연속성을 넘어 틀림없이 (!) 종말론적인 연속성을 가진다. 그 이전
에도 그와 동시대에도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닌 것은 분
명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장차 주님을 믿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
는 첫째 인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로서 죄
인 중에 괴수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인 인내를 보이시는 일에서 자신을 시
작점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시작점으
로 하여 장차 주님을 믿어 영생을 얻을 사람들에게 전적인 인내를 보이신다.
주님의 은혜는 아무리 흘러도 물살이 약해지지 않는 강일 뿐 아니라 흐르면
흐
를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많아지는 생수의 강이다. 주님의 은혜는 사도 바
울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전진하여 온 땅에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사도 바울에게 연결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주
님의 긍휼을 입은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는 억만 번째 사람일 것이
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시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뒤에 또 다른 연속이 있을 것을 믿는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억
만 번째 연속이지만 동시에 우리 뒤에는 우리의 억만 번째 연속이 있을 것이
다.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이 연속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역사의 저편에서 이 모든 연속은 위대한 사건으로 하나님께 기억될 것이
다. 주님의 시작은 반드시 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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