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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개척교회 지키기 위해 많은 걸 해봤다!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24. 12. 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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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척은 험난한 줄 알면서도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쉽지 않은 여러 믿음의 도전들 속에서도 넘어졌다, 다시 일어섬을 반복하는 젊은 목사를 만나기 위해 나섰다. 오늘 인터뷰는 안양시 동안구에 소재한 안양선민교회(대신_서울남노회)를 담임하고 백형진 목사(40세)의 이야기다. 7년 전, 만 33세의 나이에 교회를 개척하며 담임 목회의 길을 걸었다. 개척 초기 쌍둥이 출산과 함께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도전 속에서도 백형진 목사는 그 자리를 끝까지 감당해 왔다.


안양선민교회(대신_서울남노회)를 담임하고 백형진 목사(40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회 본당에 분리된 공간을 목양실로 사용하고 있다. 
방역, 청소 일, 청소업체 창업, 막노동 등 다양한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며 주신 사명을 감당해왔다. 그의 여정은 단순히 교회를 세우는 일을 넘어, 목회와 생존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 온 특별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백 목사는 현재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돌보며 섬기는 일을 하며,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한 목회 사역에 도전하고 있다. 목회 사역의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AI 연구소까지 설립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백형진 목사님, 그간 평범치 않은 개척의 길을 걸어오신 것 같다. 어떠한 여정이셨는지 먼저 짧게 이야기 부탁드린다.

그렇다. 개척한지 7년 됐다. 개척 당시 만 33세였다. 개척을 하면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또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말 잡다한 일을 다 해봤다. 아이들이 4명이다. 아이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목회도 행복하다.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하며 지키기 위해 여러 일을 하다보니 목회에 대한 생각들을 넓혀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대신 교단으로 매우 보수적인 신학을 배웠고, 그것을 기반으로 목회도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많은 확장성을 가지고 온 것 같다. 지금은 AI 관련 공부와 강의도 하고 있다. ‘미라클 AI 목회 연구소’를 만들어서 많은 분들에게 목회적 도움을 주는 사역도 하고 있다.


현재 교회는 지하1층에 자리잡고 있다. 3번째로 옮긴 곳이다. 교회로 내려가는 길목에 게시된 내용이다.

AI를 통해 자녀세대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Q. 목사님이 만 33세 때 처음 개척했다고 하셨는데, 그때 어떤 계기로 개척을 하게 되었나? 특별히 준비하신 후 개척하신 건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본래 인생 계획 가운데 33세쯤 유학을 가든지, 개척을 하든지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했다. 28세엔 결혼을 했고 33세에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뭔가를 결정하고 싶었다. 하나님께 5년간 기도하면서 구했다. 이때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결정해도 될까요? 질문했고, 결단하고 결정하고 진행했다. 기도뿐만 아니라 함께 감당할 아내와 상의 그리고 동의도 구했다. 유학은 마음으로 접고 2018년 개척을 선택했다. 개척을 하고 후회를 한 적은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작은 교회,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라는 꼬리표를 달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개척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 개척을 했기에 4명의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말이다.

 

Q. 부교역자 생활을 하시다가 개척한 건가?

부교역자 생활을 8년 정도했다. 4군데 정도 거쳤던 것 같다. 마지막 사역지는 서울에 있는 ‘선민교회’였다.

 

Q. 당시 개척나간다고 했을 때 담임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었나?

담임목사님께서는 펀딩해서 나가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펀딩이 잘 안 되었다. 실질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물질적인 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제 수준에 맞는 장소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장소로 얻었던 곳이 월세 237,000원이었다. 아직도 그 월세를 기억한다. 전체 전기세랑 다 해도 50만원이 채 안 되었다. 그곳에서 4년 정도 있을 수 있었다. 개척하고 나자마자 기존 아이 둘에 더하여 쌍둥이가 태어났다. 개척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이 둘에서 넷으로 부흥했다. 쌍둥이가 태어난 후 아내는 일 할 수 없었고 저도 막 개척을 했으니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마침 후원이 많이 들어와서 어떻게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코로나 중에는 방역 일도 하고, 청소 일도 했다. 그뿐 아니라 로고 제작과 홈페이지 제작 등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해봤던 것 같다. 영업 빼고는 거의 다 해보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이후에는 막노동판도 가보고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해 보고 도전해 봤던 것 같다.


백형진 목사 가정이다. 첫째 백준선, 쌍둥이(백아윤, 백아율), 둘째 백준희, 한아름 사모, 백형진 목사.
Q. 코로나 기간에 방역도 하고 청소도 했다고 하셨다. 제가 알기론 관련 창업도 하셨다고 들었다.

저는 아이들 4명이기 때문에 가정에 필요한 재정적 공급도 해야했다. 청소를 접한 것은 1일 알바를 위해 갔다. 그 청소업체 대표님은 기독교인이었다. 그 대표님이 목사님이 일용직으로 일하기보다 창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창업을 했다. 창업에는 1천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 그 금액은 창업을 권하셨던 대표님이 지원해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3년간 일을 했었다. 청소 창업이라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혼자 일할 수도 있지만, 팀을 구성해서 해야 할 때도 있다. 청소만 잘 한다고 끝이 아니다. 온라인 마케팅은 필수였다.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일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혹시나 청소 창업 희망하시는 분들 계시면 제가 조언을 해드릴 수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어떻게 꾸려갈 수 있는지 말이다. 가장 기초 중에 기초는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저를 포함 목사 세 명이서 함께 시작했다. 목사 세 명에서 시작하니 일이 잘 추진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해도 인건비도 나오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야 했다. 저는 청소 현장 보다 온라인 마케팅을 해서 일을 건네주는 것으로 협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마케팅을 담당하고 일을 받아 배정해 주었다. 청소 창업도 세 분 정도 시켜드렸다. 청소 창업은 루트만 알면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짜 어려울 점은 청소를 배울 때다. 청소업에 대해서 배우고자 사람을 찾아가면, 웬만하면 청소를 시키고 싶어 하지 노하우 등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150-200만원이면 창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창업 컨설팅도 해봤고, 여러 일을 했다. 때론 청소를 해도 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도중에 청소하다 나온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쿠팡 택배도 했고, 막노동도 했다. 막노동은 주로 공사 현장에 쓰레기 버리는 일을 했다. 인테리어도 배운다고 가봤다가 많이 당하기도 했다. 일을 시켜놓고 돈을 안 주는 것이다.


좌측은 인테리어 작업 현장, 우측은 철거 현장.
Q. 인테리어 관련 일을 돕다가 어려움도 당하셨다고 들었다. 어떤 일인가?

한 번은 교회 등록한 초신자 분이 인테리어를 한다고 해서 돕기 위해 갔다. 그 초신자 분의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순전히 돕기 위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엔 서로 상처만 입고 헤어지게 된 일도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인테리어를 하신다는 분이 교회 소개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셨다. 그런데 그분의 상황이 쉽지 않았다. 그분은 아들은 운동을 배우고 있었는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자식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하고 계셨다. 사정을 듣고 그 분을 돕기 위해 당시 60평 되는 교회 공간의 일부를 사무실로 내주었다. 그곳은 두 번째로 옮긴 교회 공간이었다. 그 성도님께 남는 공간을 빼서 그분의 사무실을 드리며 인테리어 사업을 제대로 시작해 볼 수 있게 선한 뜻에서 도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그 사무실에서 상의도 없이 숙식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다. 간혹 술을 먹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예배 시간에 술 취해 앉아 있기도 했다. 어느 주일엔 축구하러 간다고 예배도 빠지는 등 여러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목사로서 이 한 사람을 세워보려고 애를 쓰고, 애를 썼는데 결국 실패했다.

 

어떤 면에 있어서 지금까지 시도한 모든 것이 저의 교만이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분이 사업을 추진할 때 일주일 간 무상으로 도와드리기도 했다. 이후에는 목회뿐만 아니라 저의 가정도 책임져야 하고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야 했기에 마냥 도와드릴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일당을 받고 도와달라는 부탁에 가서 일도 해보았다. 하지만 일당은 단 한 번뿐이었다. 심지어는 좋은 차는 아니지만 소형 중고차도 내주었다. 정말 많은 부분들을 제공해줬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차도 결국 폐차 되었다. 빌려드린 그 차는 본래 상태가 좋지 않은 차였는데, 너무 험하게 몰았던 것일까? 수리비용도 많이 들었고, 결국은 폐차했다.

 

전도를 하기 위해 이 분을 교회로 인도하셨던 집사님도 저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개척을 준비하거나 개척 초기 단계인 목사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구제에 너무 많은 것을 쏟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 저는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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