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몰이하듯 총동원령이 내려진 두 집회에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12만 명이 모였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언론들은 "집회장 인근에 교회 전세 버스들이 눈에 띄었"고(경향신문), "집회 전부터 찬송가가 이어졌"으며(문화일보), "탄핵반대 계엄찬성 등 피켓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연합뉴스)고 보도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이 이른바 개신교 우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풍경이다. "보수 개신교계가 '아스팔트 우파'로 정치세력화하는 현상"을 분석한 <중앙일보>는 3일 자 기사 제목을 "두 목사가 12만명 모았다…종교학자 '기독교 우파의 영적 전쟁'"이라고 뽑았다.
한국교회가 마치 탄핵 반대에 사활을 건 듯한 착시효과를 바로잡으려는 듯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개신교 내에서 터져 나왔다. 삼일절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28일 '극우화하는 일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깨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함께 서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와 기독 단체 일동' 명의로 '극우화를 경계하는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드리는 글'(이하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2월 27일까지 1차 연명부(108개 교회, 22개 단체, 1575명의 개인)에 참여한 이들은 "도저히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언행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면서 "비상계엄과 이어지는 탄핵 정국에서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참회하고 "전광훈 손현보와 절연하자"고 요청하는가 하면 "극우 행사에 성도를 동원하는 목회자는 편협하고 왜곡된 이데올로기로 성도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두 목사가 12만 명을 모으고 아스팔트에 정치 구호와 찬송가가 뒤섞인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들의 외침은 어떻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시국선언문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인 김형국 전 나들목교회 대표목사를 4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김형국 목사는 2001년 서울 대학로의 소강당에서 나들목교회를 개척하고 잘 성장한 교회를 2019년 다섯 개의 교회로 동시에 분립한 후 대표목사에서 내려와 교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제게 좌파냐 우파냐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에서 인권과 평등 등을 주장할 때는 좌파적이고 자유와 윤리 등을 주장할 때는 우파적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좌파 우파로 나눌 수 없다. 저는 좌의 ㅈ과 우의 ㅜ를 합쳐서 나는 '주'파라고 소개한다. 한 분을 따라가고 있으니 '주파'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나."
- 시국선언문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건강하게 세우려는 목회자들이 수년 전부터 같이 공부하면서 대안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비상계엄이 일어나자 입장 표명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많은 이들이 입장 표명을 잘하고 있어서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으나 전광훈이나 손현보류가 마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언론에 등장하니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개인의 참여를 통해 확장성을 넓혀 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개인과 단체들이 참여하고 또 교단이 다른 여러 교회가 힘을 합치는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정 단체가 주도하거나 기자회견 같은 것을 통하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많이 모일 것으로 생각 안 했고, 많이 안 모이더라도 개신교 내에서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다.
삼일절이 다가오면서 극우들의 준동이 예견되어 급하게 2월 24일 밤에 선언문을 썼다. 1차 서명을 이틀 반 동안 받으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재미있기도 하고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반지성주의가 한국교회 지배한 지 오래됐다"
- 시국선언문이 교회 안에 하는 이야기라면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할 수 있나?
"사실 한국교회라고 하는 실체를 규명하기가 참 어렵다. 굉장히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개신교 내에는 일치된 소리 없이 다양한 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특성 때문이라기보다,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뭔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내부 문제도 해결 못 하고 있는데 사회 이슈들에 대해 발언할 만한 자격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시국선언문을 통해 개신교 안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알아주시면 좋지만, 우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들과 다르다고 차별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밖을 향해 외쳤으면 일단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에 요청하고, 극우화된 목회자들에게 경고한 것이다. 언젠가 교회가 교회다워져서 세상에 대해 떳떳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좀 갖췄으면 좋겠다."
- 한국 개신교계의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개신교의 아주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또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얼마든지 필요한 일이지만 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거나 동원되거나 조작되거나 하면 안 된다.
개신교인들이 지식적인 면에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신앙이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이상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 믿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분별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없어졌다. 기독교적 지성,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반지성주의가 한국교회를 지배한 지 꽤 오래됐다. 그러니 예배당에 들어갈 때 지성을 끈다. 지성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아멘'을 켜고.
이렇게 되면, 자기가 분별하고 고민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야말로 종교가 조작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는 거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말하는 것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교회에 끊임없이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는 전신자(만인) 제사장이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전혀 실현되고 있지 않다."
"자정능력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극우 소리를 내는 분들은 연세가 많고 교회에서 재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교회의 정치권력을 잡고 있으니 젊은 목사가 바꾸려 해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잘못하면 쫓겨나고 그러니까. 젊은 세대는 시대적 특징도 있지만, 이런 모습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버린다. 이런 심각한 상황인데 자정을 하려면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원래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 경청하고 서로에게 배우는 게 덕목이다. 민주적인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가 형제애로 모여야 하는 교회가 민주주의적인 절차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 있다. 일반화시키기 어렵지만 대형 교회일수록 자정능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작은 교회 가운데 자정능력이 있는 교회들이 더 많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서도 파쇼적으로 운영하는 교회도 있기 때문에 작은 교회가 꼭 유리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예상하나?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지금 하는 행태는 국민 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헌재 결정에 불복하려고 '빌드업'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은 숫자가 아닌 사람들이 결집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우리가 일궈왔던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까지 이어질까 봐 큰 걱정이다. 그런 일에 개신교가 중심축을 담당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런 상태를 통해 몇 가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보는데 첫째, 그들로 인해 개신교가 더욱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거다. 둘째, 교회 내 의식 있고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이동하거나, 그 교회에 계속 있으면서 그런 조작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하는 분수령이 될 거다.
그동안 교인도 교회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침묵만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으로 갈 것이고 자기 정체성이 선명해질 거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신앙적인 표현으로 하면 예수를 따르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그래서 예수께서 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려고 하느냐와 신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느냐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교회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는데 이탈자도 많아지고 쇠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미래를 볼 때는 부정적이고 암울하지만 이 고비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잘 넘어가기를, 그래서 민주주의적인 역량이 약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기를 기도하고 또 그럴 방법들을 찾으려 하고 있다.
시국선언문 1차 서명에 적지 않은 분들이 참여하셨고 3월 6일까지 2차 서명(5일 오전 기준 260개 교회, 50개 단체, 3137명의 개인 참여)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개신교 내에 많아져서, 서로의 의견을 듣고 배우며 또 주장하고 설득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서구 문명의 근간에 예수의 가르침이 있는데, 이제 교회가 거꾸로 사회에서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못내 부끄럽다."
"극우화된 목회자들에게 경고한다... 침묵하기 어려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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