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국가 관계의 문제는 영원한 난제다.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면서 국가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국가권력과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때때로 긴장관계가 형성되곤 한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도 이런 현상은 지속돼 왔다. 특별히 지난해 12월 상상도 못했던 충격적인 계엄사태 이후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 문제가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계엄사태 이후에 대한민국은 극단적 분열과 대립을 겪기 시작했고, 서부지법 폭동사태는 갈등과 분열의 극치를 보여줬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에 대다수 국민들의 ‘폭력은 안 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표면상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에 경도돼 극단적 자세를 취하고 계엄과 폭동까지 옹호하며 국가의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의 구현인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결과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편향된 극단적 사고를 지닌 집단으로 비춰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선정적 뉴스보도의 영향도 큰 역할을 했지만 계엄을 옹호하는 중심세력의 한 축을 그런 기독교 세력이 차지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한국교회의 대다수 성도들은 극단적 생각과 행동을 자제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국가의 안정과 조속한 혼란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일부 극단적 사고를 지닌 목회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교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계엄을 옹호하고 다른 교인들에게 그것을 설파하려고 시도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진영을 나눠 편 가르기를 시도하며 진영논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교회는 다수의 의견이나 국가의 권력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되며, 반 기독교적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정당한 저항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합리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지노선을 지켜야 한다. 기독교인은 성경 진리를 믿는 사람이지, 자신이 유튜브에서 습득하거나, 다른 목회자로부터 들은 얘기를 비판없이 진리처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참된 진리가 아닌 정치적 사항에 목숨을 걸고 확신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분들은 기독교 진리를 믿는 것과 정치적 견해를 믿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수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다. 예컨대,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동정녀 탄생 같은 교리를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비합리적인 것을 진리라고 믿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관념적으로만 믿어지는 진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유는 그냥 복음서들에서 얘기하니까 덮어놓고 무지성으로 맹신하는 게 아니다. 복음서의 기록은 부활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들, 곧 목격자들이 전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성경이 얘기하기에 그냥 믿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에 기초해 복음서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오류가 없게 기록됐다. 성령의 영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록 내용의 역사적 사실성이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보수적인 많은 기독교인들이 야당도 부인하는 부정선거론을 믿고 그것에 근거해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순교적 태도로 여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무지성적으로 목회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신앙의 자세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인 것일까? 지난 주 목요일에 개포동교회에서 있었던 ‘포럼 빛’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은 성도들의 건전한 판단력과 분별력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치·사회현상에 대해서 교인들이 올바르게 해석하고 분별하도록 목회자는 능력을 길러야 하며 그것에 근거해 정치적인 극단적 양극화를 바라봐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화평의 길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국가가 반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 정책을 시행한다면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치우친 이념에 근거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모든 이념을 관장하고 해석하도록 해야지 이념이 성경을 해석하고 제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교회는 국가권력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협력하면서 국가의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역할을 해야 하며, 잘못할 때는 선지자적 자세로 책망하며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성경말씀에 근거한 균형 잡힌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목회자의 탁월한 지성과 분별력이 더없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이다.
정창욱 교수(총신대)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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