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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게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리차드 십스)

리차드 십스

by 김경호 진실 2009. 12. 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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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이 또 주의해야 할 것은 구름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호하게 말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숨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숨기는 것이요, 진리가 제일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리는 벌거벗은 것과 같이 분명할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복된 구주께서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실 때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사용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취하신 겸비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유모같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살전2:7).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자비의 정신은 그의 종들을 감동시켜 그들 또한 비천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스스로 겸비해지도록 만듭니다.

 

세례 요한 이후로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마11:22) 영혼을 위로하는 진리들이 그렇게 쉽고도 분명한 방식으로 전파되어 사람들이 그것에 깊은 감동을 받고 천국을 얻기 위하여 거룩한 침노를 감행하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는 낮아지셨는데 왜 그의 종들이 높아지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자비를 가장 많이 체험했던 사람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자비를 설교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 자신이 그들이 가르치는 바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고전9:2)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간절하게 사랑하셔서 하늘 영광을 모두 버리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자기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련한 어떤 영혼을 돕기 위하여 우리의 높은 자존심을 기꺼이 버리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겸비하셨는데도 인간인 우리는 계속 교만할 것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사탄의 사자들은 배교자들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을 어떤 모양으르든 바꿉니다(마23:15). 예수회(Jesuit) 회원은 전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처럼, 야망에 찬 사람은 자신이 후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구원의 근원이라고 소망하는 그리스도께, 아니 이미 자신과 함께 우리를 하늘에 앉히신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야망과 열심이 우리를 감동시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기질로 옷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버려야만 합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 83쪽)

 

출처 : http://www.lloydjon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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