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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목적 (스테판 차녹)|

스테판 차녹

by 김경호 진실 2010. 11. 29. 17:36

본문

스테판 차녹 거듭남의 본질 중에서

 

 

1) 거듭난 자와 자연인은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자아는 모든 자연인의 최상의 목적입니다.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고후5:15)라는 말씀은, 우리 구주의 죽으심의 실제적인 혜택과 효력아래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거듭난 자와 자연인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연인에게는 자아가 그목적이고, 거듭난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그 목적입니다. 자연인의 삶, 그리고 이 삶과 관련되는 모든 것들은 타락한 자아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실상 이러한 목적은 그의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자아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칩니다. 반면, 새로운 피조믈의 삶, 그리고 이 삶과 관련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구주를 영화롭게 합니다.

 

2) 우리의 목적을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의 목적입니다.

우리 구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목적은 피조물들의 타락한 목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구속의 목적, 나아가서 구속 주께서 오셨던 목적은 첫째 아담의 타락과 그 목적에 반대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담이 자아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했던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아를 끌어내리고 하나님을 높임으로써 우리의 주된 목적이 되시는 그분의 권리를 회복하셨습니다.

 

3) "나에게 주께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4)

우리의 영혼 속에서 효력을 갖는 거듭남과 회심,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모든 역사는 다음의 두가지 일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에게서 우리를 떼어내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우리의 목표로 삼게 만드는 것입니다.

"끝장을 보아야 할 것"은 자아이고, "최종적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망령된 행실"에서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었습니다. (벧전1:18,19)

 

4) "우리를 위하여"였다면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옳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죽으신 것도 아니고, 자신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시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의롭다하게 만드셨습니다. 또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시는 일을 모두 완성하셨음을 보여 주셨고, 하늘에 오르사 우리를 위한 대의를 힘쓰고 계십니다. 그와 같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높이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그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서 그분을 닮아 감으로써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분을 의로운 분으로 여기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빚을 청산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보증인으로서 죽으셨고, 우리의 인격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구주로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로마서 4장 25절에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에 성장해 갈 때, 그것은 영적 성장의 위대한 증표가 될 것입니다.

 

5) 부활 하심도 "위하여 죽은 자들"을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활하심도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하심은 "위하여 죽으신 바" 되었던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죄로부터 면제된 믿는 자들의 머리로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9:24).

그리스도의 이러한 두 가지 대표적인 행위로 인하여 우리의 거듭남과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성립됩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같이 우리의 죄의 몸이 죽음을 당하게 되고, 그분의 부활과 같이 생명을 주는 은혜로 인하여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6) "이제부터는" 달라집니다.

사도는 고후 5장 16절에서 계속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윶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안다"라는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이나 사람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시편 1편 6절의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삶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호세아 4장1절에서 "이땅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라고 한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라는 말 속에는 우리 자신들도 또한 그렇게 알지 않는 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잇습니다. 즉, 우리 자신을 우리의 지식이나 재산, 신용, 명예나 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을 받을 만한 어떠한 뛰어난 점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적인 은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 그분을 향하여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을 따라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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