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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선택

최동규목사(대구)

by 김경호 진실 2011. 7. 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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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규 (2007.05.27) http://kmcmi.org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b)

 

 

 

지난 해 추수감사절에 칼빈주의 5대 교리 중에서 ‘전적타락’(Total Corruption)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간략하게 다시 정리해보면,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은 인간이 상대적으로 더 큰 악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뜻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더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전적타락이란 하나님께서 진정한 선으로 여기시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일에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습을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상태로 표현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보시기에 선한 일을 할 수 없고, 선을 깨달을 수도 없으며, 선을 바랄 수조차 없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3:10-12, 8:7-8). 그러니 모두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 때문에 허물로 죽은 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엡 2:4-5). 이러한 구원은 죄로 죽은 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여 살리시기로 창세전에 ‘미리 정하여’(예정) 두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로 예정하신 사람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은혜를 베푸실 자로 선택 받지 못한 사람은 계속 영적 죽음 상태로 지내다가 마침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이같이 예정하신 것일까요? 16세기에 아르미니우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매우 그럴듯하게 설명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마침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지 어떤 사람이 끝까지 회개치 않고 예수님을 배척할지를 ‘미리 아시고’(예지) 구원과 저주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함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가는 일은 개개인이 복음에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달렸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인간에게 있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설명은 하나님의 선택 예정에 ‘인간의 반응’을 조건으로 두기 때문에 ‘조건적 선택’입니다. 그의 설명이 합리적이기도 하고 논리적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먼저 아르미니우스의 설명은 인간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기로 예정하셨다는 논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성도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셔서 믿으려는 소원을 주셨기 때문에 주님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는 말씀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는 말씀으로 인간의 소원과 사랑보다 하나님의 정하신 일과 사랑이 앞서 있음을 증언합니다.

주님을 먼저 선택할 수 없는 까닭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소원할 수도 없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회개와 믿음의 반응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다시 살려 놓는 일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반응이든(회개, 선택, 믿음, 소원, 사랑 등)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를 누가 살립니까? 만약 인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면 구원자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르미니우스는 인간의 상태를 죽은 것이 아니라 마치 혼수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잠깐 깨어나서 유언을 남기는 사람처럼 생각한 셈입니다. 마지막 상황에서 회개하고 믿겠다고 하면 구원을 얻지만 회개하지 않고 거부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어떤 자를 먼저 살리셨고, 하나님에 대하여 회개하고 믿는 반응을 나타낼 수 있도록, 그분을 선택하도록, 그분을 소원하도록, 그분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구원과 관련하여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기록된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문장 자체를 보면 분명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에 조건성을 포함하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이며, 그분의 예정 자체가 조건적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서 제외된’(유기)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야 하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결국 구원에서도 탈락됩니다.

구원이 표면적으로만 보면 인간이 회개하고 믿었다는 결과로 보이지만, 회개하고 믿을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금도 인간의 공로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제정하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고, 회개하고 믿도록 소원을 주시고 선택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 주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가 헌신했기 때문에 복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 주셨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b)

아르미니우스의 설명은 구원이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되지 않고 인간의 결정적인 협력이 필요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택하심이 회개하고 믿는 그 ‘행위’로 말미암는다고 말한 것이며 행위를 인간의 공로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자랑할 것이 많아집니다. 구원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르미니우스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려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의 보조 수단정도로 가치 없게 만들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b)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선택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선택 받지 못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고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지 않으셨다면 지옥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아서 아무런 헌신도 못했다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예정을 숙명으로 오해한 탓입니다.

예정은 숙명과 전혀 다릅니다. 숙명은 이미 결정되어버려서 인간이 아무리 원해도 바꿀 수 없는 일을 말합니다. 숙명에는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정은 인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됩니다. 하나님은 100% 당신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작정해 두셨으나, 인간은 100%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말하는 동시에 인간의 책임 또한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100%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100% 온전한 사람이신 것처럼 신비한 일입니다.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알콜 중독자와 불신자를 비교해봅시다. 알콜 중독자는 술 마시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술 취하기를 선택합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술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꺼이 술의 종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불신자도 하나님을 믿을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욕망과 유익을 좇을 뿐 결단코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선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옥 가는 것보다 예수님께 가기를 진정으로 더 싫어합니다. 아무리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말해줘도, 하나님 찬양만하는 밋밋한 천국보다는 다양한 스릴과 오락이 있을 것 같은 지옥을 더 선호합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예정도 믿지 않으며 자신이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숨넘어가는 순간까지도 정확하게 자기 마음이 원하는 바를 선택합니다. 반대로 선택된 자는 참으로 원해서 하나님을 선택하고 헌신합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정하신 뜻을 다 이루십니다.

예정은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표현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력과 표현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여하튼 성경이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인간의 책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이해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성경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며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됩니다. 한번 예정하시면 영원히 그 뜻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항거할 수 없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이 예정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불합리하거나 공의롭지 못한 일로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정을 통해 당신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07년05월27일(무조건적_선택)-칼빈주의_5대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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