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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2의 아담

김영재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1. 11. 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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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아담 (고전 15:22)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하신 천지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6일 동안에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제 1일부터 제 3일 까지는 배경을 창조하셨으며, 제 4일부터 제 6일까지는 창조하신 배경에 생명 있는 것들을 창조하셔서 그것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제 1일부터 제 3일까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히브리 원어로 “빠라” 라고 표기하며, 제 4일부터 제 6일까지는 이미 창조된 배경 위에 주관할 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히브리 원어로 “아사” 라고 표기합니다. 제 1일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제 4일에는 그 빛을 주관하는 해, 달, 별을 창조하셨고, 제 2일에는 하늘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제 5일에는 하늘을 주관하는 새와 바다를 주관하는 물고기를 창조하셨고, 제 3일에는 땅, 채소, 과목을 창조하시고, 제 6일에는 그것들을 주관할 동물들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말씀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흙을 가지시고 직접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마치 토기장이가 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것과 같이 흙으로 빚으시었기 때문에 히브리 원어로 “야차르”라고 표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갈빗대를 가지고 하와를 지으셨는데 이때 쓰이는 히브리 원어는 처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때에 쓰였던 히브리 원어인 “빠라” 라고 표기합니다. 이는 비록 하와가 아담의 몸의 일부인 갈빗대로 지어졌지만 독립된 인격체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에 아담을 만물의 대표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아담에게 친히 각종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에 이름을 지어 주는 행위는 그것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의 주인은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게서는 아담을 만물의 대표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아담에게 이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담의 주인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항상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는데 둘째날에는 다른 날들과는 달리 그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둘째날에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궁창이란 대기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창 아래의 물은 강과 호수와 바다와 같은 것들이고,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을 둘러싸고 있는 물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물층의 역할은 태양에서 발출되고 있는 해로운 광선이 지구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생명을 오래도록 보존케 하며, 또한 식물과 각종 채소를 신선하게 하여 오염이 없는 무공해 채소와 과실을 사람들에게 공급하여 먹을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을 천년까지 연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세 까지 살았으며, 아담도 그에 못지 않게 930세 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장수한 근본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둘째 날에 창조하신 궁창위의 물인 물층이 태양에서 나오는 해로운 살인 광선을 차단시켰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층은 사람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노아 시대 때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노아에게 알리시고 그 때가 되자 일 동안 홍수를 세상에 내려 잠기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 때에 비가 내렸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물층을 파괴시키시고 그 물을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은 온통 물 속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이 물층의 파괴로 인해 태양에서 발출되는 해로운 광선이 지구로 들어오게 되었고, 각종 식물과 채소는 오염되기 시작하였고, 사람의 수명 또한 천년에서 백년으로 감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시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염 때문에 식물과 채소로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식은 허락하셨지만 피를 먹는 것은 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피는 곧 생명을 나타내며,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의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의 생명을 300년까지 연장할 수 있음을 매스컴(masscom)을 통해서 보도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남자가 임신할 수 있음을 보도하여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있습니다.사람을 히브리어로 표기할 때 ‘아담’ 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의 뜻을 가진 아담이라는 단어는 흙을 의미하는 ‘아다마’ 라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되어 아담이라는 명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흙으로 만든 사람’ 이라는 뜻이다. 또한 의역하면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이므로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이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헬라어로 사람은 ‘안드로포스(ανθρωποs)'  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직역은 ’위를 올려다보는 존재‘이며, 의역하면 자신이 자랑하던 많은 것을 잃었을 때에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인류의 대표자로 삼으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기록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아담 이후로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태어나는 모든 자들이 바로 이 언약에 동참한 것입니다. 하지만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다가와 이 언약을 파기하도록 유혹합니다. 뱀은 창세기 3장 1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여자에게 물어 봅니다. 이 질문은 일종의 유도 심문입니다. 뱀은 이 질문 속에 ‘모든’ 이라는 단어를 첨가시켜 하와의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을 금하셨을 뿐 모든 나무를 금하시지는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도심문격인 뱀의 질문에 대해서 하와는 창세기 3장 2절로 3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동산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고 대답합니다. 하와는 뱀의 유도심문에 넘어가 ‘먹을 수 있으나’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 속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도 먹을수 있다라는 말이 내포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써 하와는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 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자신의 대답 가운데 ‘하나님이 만지지도 말라’ 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죽을까 하노라.’ 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뱀은 이러한 하와의 마음을 놓칠세라 창세기 3장 4절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합니다. 그리고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 말합니다. 이러한 뱀의 말에 넘어가 하와는 그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되었고, 그 실과를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도 사탄은 여전히 뉴 에이지(New Age)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 개개인 자신이 신이므로 다른 어떤 신을 숭배하거나 예배할 필요가 없다라고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유혹하고 있습니다.이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된 아담과 하와는 그 결과로 인해 영적인 눈은 어두워지고 죄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을 줄로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자신들의 몸을 가리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뭇잎은 금방 시들어 버리고 다시금 수치가 드러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21절의 말씀처럼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러자 계절의 변화로 인해 기온차가 있더라도 이 가죽옷은 변형이 되지 않고 수치를 가리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죽옷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동물이 피를 흘려 숭고한 희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숭고한 죽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수치와 죄가 가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인생의 죄를 가리워 주시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되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가워했을 텐데 그 반가운 하나님의 음성이 이제는 말씀을 불순종한 그들에게는 두렵게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담을 창세기 3장 9절의 말씀처럼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하시면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 줄 알지 못하여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부르심은 죄를 범한 아담을 책망하시고자 하신 부르심이라기 보다는 죄를 범해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죄에 대한 책망과 아울러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아담에게는 이러한 사랑의 부르심이 두렵게만 들리고 마는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죤 칼빈은 말하기를 ‘새는 공중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물 속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고, 물고기는 물 속에서는 자유로울수 있으나 물을 떠나서는 자유로울수가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생은 결코 자유로울수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유로 자유로움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아담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두려운 나머지 창세기 3장 11절의 말씀처럼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기보다는 창세기 3장 1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의 의미는 비록 여자로 말미암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었지만 그 여자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아담을 위해서 여자를 주셨는데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아담은 여자를 잘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탓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인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자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여자도 아담과 같이 창세기 3장 13절의 말씀처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핑계를 대면서 뱀의 꾀임에 넘어간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뱀에게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뱀을 가장 먼저 저주하셨습니다. 뱀은 창세기 3장 14절의 말씀처럼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만 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담의 죄에 대한 영향력은 어느 한 곳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에 퍼졌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인해 뱀만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짐승과 더불어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가 저주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의 말씀처럼 땅도 아담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게 되었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신 다음에 하와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는데 그 책임을 물으시기 전에 앞서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는 죄에 대한 대가로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운 복음이 먼저 주어졌기에 인류에게 다시금 새로운 소망의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을 가리켜 원시복음 또는 처음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이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진노아래 있어야 마땅한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 사건을 기록한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활동하신 사건을 기록한 신약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은 두 개의 복음의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복음이란 구약에 기록된 원시복음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과 신약에 기록된 작은 복음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원시 복음인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약속하셨습니다. 곧 동정녀 탄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가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며, 반면에 발꿈치를 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발꿈치를 상한다.’ 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다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러기에 아담의 죄인 원죄를 이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서 원죄의 영향을 입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씨를 뿌려 출생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우리 인생의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모든 자들은 전부 다 아담의 죄를 전가 받은 남자의 후손이기에 결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원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 원죄는 시편 51편 5절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처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는 고백처럼 어미 뱃속에서부터 유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정결하고 고귀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이 근본적인 원죄를 해결할 수가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원죄를 해결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 해결 방안으로 십자가에 자산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이 절대적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무마시키고자 음악을 악용하였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발작’ 이라는 외국의 그룹이 있습니다. 이 그룹이 부른 노래의 가사를 보면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지, 온전하지 못한 병신 수탉 한 마리가 그녀의 행위 상대라네, 그녀는 치마를 들어올리고 자신의 XX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겨 하고 있지.’ 이다. 이 가사의 주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원인을 마리아와 병신 수탉의 관계라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노래가 실린 앨범의 제목이 더욱더 걸작인데 그 제목은 ‘예수야! 엿먹어라.’ 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한 연고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아담에게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하여 땀을 흘려야만 식물을 먹을 수 있게 하셨고, 하와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을 더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아담을 통해서 태어난 인류에게는 사망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망이란 흔히 영과 육의 분리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사망의 의미는 죄를 통한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죄의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고, 죄를 통해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결코 자기의 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인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진정한 죄의 해결자이신 메시야를 바라볼 수밖에 달리 소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 율법을 지켜서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주시기도 했지만 진정한 의미는 그 율법을 통해서 자신들은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 시대에 약속하신 메시야가 신약 시대에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가득찬 어두운 이 세상은 그를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매일 구약 성경을 탐독하는 종교의 지도자들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를 저주의 십자가에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멸시와 천대를 홀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이 바로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라바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중에서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라는 본디오 빌라도의 질문에 그들은 서슴없이 바라바를 살려주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 예수라고 한 이유는 바라바와 예수를 구분 짓기 위함인데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바라바의 이름 또한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와 예수의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명확하게 구분을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사망을 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우둔해진 사람들은 구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부인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 우리의 무지로 인해 주님을 고통 가운데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지한 인생들의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하시고, 그 결과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도무지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구세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피로 지불하시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은혜를 가리켜 속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존귀한 자들인 것입니다. 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제 2의 아담이신 것입니다. 제 1의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를 범함으로 인해 온 세상이 저주 아래 있게 되었지만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세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제 1의 아담의 자손이 아니면 제 2의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 두 부류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아니하며,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제 1의 아담의 자손은 어미 뱃속에서부터 원죄를 유전 받아 죄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의 지옥으로 갈 것이며, 제 2의 아담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원죄를 정결함 받아 영원한 생명의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전 받은 원죄와 살면서 범하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범죄보다도 원죄의 결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죄는 유전 받는 죄이기 때문에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의 삶이 아무리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서 자범죄를 범하지 아니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원죄로 인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영죽을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성령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그 분의 보혈의 능력으로 원죄를 정결함 받아 영원한 천국을 믿음으로 소유한 제 2의 아담의 자손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에 뒤질세라 과거에 사탄은 음악에 민감한 청소년들을 죄악의 수렁으로 몰아 넣고자 문화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모방하여 아담이라는 사이버(Cyber) 가수를 등장시켰습니다. 이 사이버 가수인 아담은 실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실재하는 인물과도 같은 프로필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공간(http://www. adamsoft.com/adam)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프로필은 살펴보면, 본명은 아담(Adam)이며, 학명은 Homo Cybrus 이며, 잉태일은 1997년 2월 23일이고, 생일은 그 해 12월 12일이며, 20세의 성인으로 출생하였으며, 출생지는 공교롭게도 에덴(Eden)이며, 신장은 178㎝이며, 체중은 70㎏이며, 혈액형은 O형이며, 시력은 왼쪽이 0.4이고, 오른쪽이 0.5이며, 평소에는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고 합니다.또한 그의 성격은 밝고 구김살 없는 성격의 소유자이며, 물과 같이 투명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출렁이고 바위를 깰 정도로 단단하다고 하면서 그의 성격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잔한 물 밑으로 빠른 해류가 흐르듯 자신이 영원히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음 밑바닥에 감추고 있다고 소개하며,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깊은 인상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담은 제 3의 아담이라고 일컬을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홍수속에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진정으로 따를 자가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정하심으로 말미암아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은혜를 소유한 자들로써 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그 분의 사랑을 나타내며,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으며,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제 제 2의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권세를 가지시고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악인들은 그 분의 진노를 피하려고 요한계시록 6장 16절의 말씀처럼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고 목놓아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진노를 피하려고 자살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그 어떤 것도 악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가리울 수가 없을 것이며,  자살 또한 허용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아니한 사람들도 영원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만이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 불신자들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들도 지옥의 영원한 고통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바로 이러한 영원한 지옥의 고통 가운데 있어야 마땅한 자들을 영원한 생명과 복락과 안위와 평화가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제 2의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하늘로 승천하시고, 10일 후에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 께서 우리들을 마음속에 내주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아 누리는 우리들로써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맡은 바 사명을 충성 되이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 앞에서는 그 날에 생명의 면류관과 상급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Αμην -

출처 : CORAM DEO
글쓴이 : KIM YOUNG-JA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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